👀UNDER THE SKIN

화요일 2시

  작품은 스탈링이 렉터의 도움을 받아 ‘버팔로 빌’에게 납치되어 끔찍한 말로를 맞이할 뻔한 캐서린을 위한 구출기를 필두로 흐른다. 포스터 위 스탈링의 입을 가린 탈박각시의 모양새는, 살바도르 달리의 ‘해골누드 Skull of Nudes/죽음의 욕망 In Voluptas Mors’의 오마주로 알려져 있다. 이 해골 문양이 일곱 여성의 나체로 이루어진 것, 그것이 하필 ‘나방’의 등에 얹힌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쩌면 양들의 침묵 속에서 한니발의 인육보다도 더욱 충격적인 악인 캐릭터 버팔로 빌은 덩치가 큰 여성들을 골라 납치 및 살해하고, 피해자의 가죽을 제 몸에 걸친다.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행위의 목적에 대해 렉터가 내놓는 의견은 상술한 ‘달리의 탈박각시’와 연결된다.

  "번데기는 '변화'를 뜻해. 벌레가 나비 혹은 나방이 되는 거지. 빌리는 변화를 원해. 그래서 그는 진짜 여자들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고 있는 거야. (······) 그동안 납치한 여자들을 보면 그가 '탈피'를 꿈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버팔로 빌, 즉 제임 검을 범행으로 이끈 성격과 과거사는 어떤 점에서 주인공 클라리스 스탈링의 삶과도 비교된다. 〈양들의 침묵〉은 합동 수사 일지이자 스탈링의 트라우마 인정기이기도 한데, 그녀의 기억을 파고들 때 우리는 다소 이해되지 않던 영화의 제목을 곱씹을 수 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걸작으로 불리는 소설 속에서, 사건을 해결한 스탈링이 받는 한 장의 편지는 다음과 같은 물음으로 시작한다. 클라리스, 양들은 울음을 그쳤나? 어릴 적 마주한, 도살되는 새끼 양들의 비명 소리는 성인이 되어서까지 버겁게 그녀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렉터는 그 울음소리가 스탈링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기에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까지 간파해 낸다. 여성이 여성을 구하는 역할에 매혹되었다고 밝힌 배우 조디 포스터의 인터뷰는 양으로 은유되는 약자들의 편에 서고자 수사관이 된 스탈링의 신념과도 상통하는 셈이다.

  〈양들의 침묵〉에 등장해 관객을 놀라게 한 소재들은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때로는 가벼운 자극으로, 때로는 결정적 반전의 비밀로 재생산되었다. 그렇기에 2025년의 당신에게는 렉터나 빌리 역시 시시한 악당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허나 1991년의 관객들보다 유리하다고 정신 승리를 도모할 수 있는 한 가지 포인트라면, 당신은 이미 한니발의 얼굴이 커다랗게 찍힌 후속작의 존재를 안다는 점. 단 십오 분 남짓의 출연으로 관객을 압도한 한니발 렉터를 한 겹 더 벗겨낼 기회도 마다하지 않기를 바란다.

*토머스 해리스의 원작 소설 『양들의 침묵』 일부 인용

  우리는 매일 스크린 앞에서 살아간다. 뉴스를 읽고, 영화를 보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짧은 이미지들에 몰두한다. 그런데 가끔은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갈 때가 있다.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화면 너머엔 정보와 자극 이상의 무언가가 숨어있지 않을까? 영화 <비디오드롬>은 바로 이 찝찝한 의심에서 출발한다. 미디어가 우리의 감각을 어떻게 사로잡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정신과 신체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그리고 그 흔적이 결국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지에 대해 말이다.
 

  맥스 렌은 소규모 방송국 시빅 TV의 사장이다. 그는 폭력과 관능으로 가득 찬 자극적인 콘텐츠를 방송하며, 시청자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데 몰두한다. 그러나 그는 늘 끝없는 갈증을 느낀다. 더 충격적이고, 더 강렬한 콘텐츠를 찾아야만 한다는 강박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불법 위성 신호로 포착된 의문의 영상, ‘비디오드롬’을 발견한다. 화면 속엔 붉은 진흙벽, 고문당하는 여성, 잔혹함으로 가득 찬 장면들이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맥스는 바로 이 영상이 자신의 채널을 바꿔 놓을 돌파구라 믿으며 집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머지않아 곧 깨닫는다. 비디오드롬은 그저 자극적인 콘텐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신과 신체를 침투하고 재구성하려 드는 파괴적 신호라는 것을.
 

  비디오드롬을 접한 이후 맥스의 세계는 조금씩 뒤틀려간다. 현실과 환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그의 몸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변형되기 시작한다. 복부엔 비디오 테이프를 삽입할 수 있는 기괴한 구멍이 생기고, 손은 총과 융합된다. 맥스는 더 이상 현실에 속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가는 거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되기에,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 즉, 그의 정신과 육체는 비디오드롬의 신호에 의해 새로운 방향으로 프로그래밍되고 있는 것이다.

   맥스의 변화를 지켜보며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매일같이 소비하는 스크린 속 이미지들은 정말로 즐거움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그것들이 의식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우리를 조금씩 변형시키기 위함일까? 맥스는 자신을 덮친 이 음모와 싸우려 하지만, 이미 그의 내부에 뿌리내린 비디오드롬의 영향은 쉽게 떨쳐낼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황량한 공간에서 텅 빈 TV와 마주한다. 화면 속 환영처럼 나타난 니키는 그에게 속삭인다. “당신은 이제 나아가야 해요, 완전한 변신으로. 준비됐나요?”
 

  맥스는 마침내 스스로를 향해 총을 겨누며 말한다. “새 육체에 영원한 삶을” 방아쇠를 당긴 그의 행위는 지금까지 그를 얽매어온 자극과 미디어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고, 그 속에서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하려는 의식적 선택일 수도 있다. 해방인지 굴복인지 알 수 없는 이 모호한 결말은 관객으로 하여금 스크린 속 세계와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든다.
 

  결국 비디오드롬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조금씩 경험하고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다. 무엇을 잃었는지 깨닫기도 전에, 그 빈자리는 새로운 형태의 욕망과 자극으로 채워진다. 그리하여 영화는 묻는다. 나는 스크린 앞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으로 변해가고 있는가?
 

글쓴이 초코

조르주 프랑주 | 1960 | 90'

페드로 알모도바르 | 2011 | 117'

수요일 5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칠까?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하고 또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과 접촉하는 우리는 때때로, 혹은 자주 겉모습으로 타인을 판단한다. 성별, 외모, 옷차림 등은 한 사람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우리는 눈에 비친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외모가 내면, 즉 한 사람의 인격에 끼치는 영향은 어떨까?  외모와 신체가 변한다고 해서 과연 그 안의 인격까지 변할 수 있을까? 영화 <내가 사는 피부>는 파격적인 전개와 소재를 통해 피부 외부와 내부의 분열, 그리고 겉모습에 쉽게 현혹되어버리곤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저명한 성형외과의 ‘로베르트’는 수 년 전 아내가 교통사고로 인한 심한 화상을 입고 숨진 후, 인공 피부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묘령의 여성 ’베라‘를 자신의 대저택에 감금해둔 채 24시간 카메라로 감시한다. 늘 피부와 유사한 모습의 전신 바디수트를 입은 채 생활하는 베라는 로베르트가 고안한 인공피부 이식 수술의 실험체다. 그녀는 로베르트가 만들어낸 일종의 피조물로, 그가 사랑했던 아내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다. 로베르트는 베라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지만 아내를 닮은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몰래 지켜보며 욕망하고, 끝내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품고 만다. 

 

  하지만 영화는 12년 전 과거로 돌아가며 두 사람 사이의 숨겨진 비밀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로베르트는 교통사고로 심한 화상을 입은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지만, 아내는 화상 흉터로 인해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비관해 창 밖으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다. 그로부터 6년 후, 로베르트는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뒤로 극심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딸 ‘노르마’와 함께 환자 중 한 사람의 결혼식장에 방문한다. 그는 오랜만에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거워하는 딸의 모습에 기뻐하지만, 그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사라진 딸은 숲 속에서 강간당한 채 발견되고, 이전보다 더 심각한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다가 끝내 창밖에 몸을 던지고 만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모두 잃은 로베르트의 광기는 극에 달한다. 그는 딸을 강간한 남자 ‘비센테’를 납치해 강제로 성전환 수술을 진행하고, 그의 얼굴과 모든 피부마저 바꿔놓는다. 그리고 완전히 달라진 모습의 그에게 ‘베라’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영화는 줄곧 피부를 ‘옷’에 비유하고 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양한 옷을 필요에 따라 입고 벗는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옷을 갈아입는다고 해서 옷을 입은 사람의 인격이 바뀌지는 않는다. 옷은 입은 사람의 자신감, 태도, 체감 온도나 활동성 등에 영향을 끼치긴 하지만 그 아래 존재하는 정신이나 영혼을 바꾸어 놓지는 못한다. 영화 속 이전과 너무나 달라진 몸을 가지게 된 비센테가 갈기갈기 찢어버린 옷조각들은 조각나고 뒤바뀐 자신의 피부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타의로 여성의 몸을 가지게 된 비센테는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지만, 점점 새로운 몸으로 살아가는 것에 순응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에게서 아내의 모습을 보는 로베르트의 마음을 사려고 노력하면서 ‘베라’로서의 삶과 타협해보려고도 시도한다. 그러나 신문에 실린 단 한장의 흑백 사진, 자신의 원래 모습이 담긴 그 작고 희미한 사진을 마주한 순간 그는 자신이 '비센테'임을 다시 상기해낼 수밖에 없다. 비록 이전과는 너무나 다른 피부일지언정 그 아래 존재하는 '비센테'가 '베라'로 바뀔 수는 없는 것이다. 

 

  다양한 색과 모양, 무늬를 가진 옷들만큼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 역시 제각각 다양한 외형과 인격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음대로 입고 벗기가 가능한 옷과, 바꾸기 위해서는 외과적인 수술이 요구되는 피부는 다르다. 피부는 반半영구적인 것이기에 우리는 더 눈에 보이는 그 모습을 그대로 믿으려 들고 그것에 집착한다. 영화를 통해 이러한 피부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너, 나, 우리가 사는 피부는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