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원작의 대중성 및 특성을 이용하거나, 원작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제작되는 ‘새로운 버전의 영화’
당신이 좋아하는 그 작품은, 과연 하나의 시간선에만 놓여 있는가? 당신과 희로애락을 공유한 주인공들은 오직 한 가지 결말만을 맞이하는가? 아니, 애초에 사건을 겪는 인물은 당신이 아는 그들로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것은, 당신이 사랑하는 영화를 최소 하나에서 어쩌면 서너 개까지 더 수집할 기회가 왔다는 뜻이다.
소설, 그래픽 노블, 웹툰, 게임 등 다양한 매체가 영화의 ‘원작’이되는 시대. 어떤 작품은 또 다른 ‘영화’를 원작으로 삼는다. 이러한 리메이크는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고 흥행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방편으로서 작용한다.
그렇게 제작된 리메이크는 원작과의 벤 다이어그램을 이룬다. 배경 및 일부 설정에 변화를 주면서도 익히 알려진 아우라를 보존하려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무게 중심을 옮긴 파격적 각색으로 원작의 애호가, 더 나아가서는 온 세상을 술렁이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둘은 피가 섞인 작품으로서의 교집합을 갖는다.
물론 원작이 리메이크작의 완성도에 대한 완벽한 근거일 수는 없는 법. 오히려 작품 간의 비교로 서로에 대한 비난만 가중시키는 험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개중에는 부모를 이기는 자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도 자식 못지않은 명성을 자랑하며 회자되는 조상님(!) 역시 계신다.
그럼 이제, 짧게는 4년에서 길게는 81년의 간격을 두고 재탄생한 영화들─그 사이에 이미 몇 대를 더 걸친 작품도 있다!─과 함께 시공간을 넘나들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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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이야기
東京物語
오즈 야스지로 | 1953 | 136' | 목요일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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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가족
東京家族
야마다 요지 | 2013 | 146' | 목요일 5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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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도
無間道
유위강, 맥조휘 | 2002 | 101' | 금요일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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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파티드
The Departed
마틴 스콜세지 | 2006 | 151' | 금요일 5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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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경 이야기>는 고향을 떠나 동경으로 향하는 노부부 슈키치와 도미의 이야기다. 이들은 도쿄에 살고 있는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도쿄에 가지만, 정작 자식들은 이런저런 바쁘다는 핑계로 함께하지 못한다. 이들은 둘에게 이타미 온천에 가볼 것을 권한다. 온천에서 바라본 바다는 익숙한 바다지만 도쿄는 소란스러운 젊은이들의 도시였다. 슈키치와 도미는 도쿄의 이곳저곳에서 이방인이 된 듯 소외감을 느낀다. 하지만 아들의 아내인 노리코만이 이들과 함께한다.
영화는 한 인물의 편을 들기보다는, 잔잔하게 보여지는 시내의 풍경과, 계속해서 흘러가는 일상처럼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비춘다. 그래서일까, 화려하지 않고 정돈된 장면들 안에서 과하게 보여지지 않는 두 인물의 심리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
도쿄를 떠나며 다시 오노미치로 돌아가는 중에 어머니가 급작스레 쓰러진다. 뿔뿔이 흩어졌던 자식들은 한 자리에 모여 어머니가 빨리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상황은 뜻대로 되지 않고 결국 어머니는 끝내 돌아가시게 된다. 장례를 치른 뒤 홀로 고향으로 내려간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묵묵히 회상한다.
1935년 작인 <동경 이야기>는 당시 일본 사회상을 담은 영화다. 패전 이후 개정된 헌법에 따라 가족법은 큰 변화를 겪는다. 이후로는 쭉 고도경제성장기를 거치게 되며 가족의 역할에도 변화가 생겼다. <동경 이야기>는 그 시기를 허심탄회하게 그린 영화이지만, 영화 속 인물들의 삶에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비쳐 보이기도 한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가 이후 야마다 요지의 <동경 가족>으로 리메이크된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가족의 형태와 관습이 변화했던 오래전 일본 사회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고향으로 돌아간 슈키치는 노리코에게 시계를 건넨 후 이제 자신의 삶을 살라고 말한다. 영화는 개인화된 사회와 가족 간의 단절에 의한 회의감을 넘어 사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개인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도록 한다.
글쓴이 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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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요지 | 2013 | 146'
목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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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여기로 몰려드는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오고 나서부터 그 문장을 자주 생각했다. 작은 동네에서 반평생 함께 살았던 가족들도, 친구들 자신도 성인이 되면 서울로 갈 수 있기를 바랐는데, 정작 서울에 올라오고 나니 바라던 삶을 사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기보다는 터무니없이 작아진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더 많은 듯하다. 평생을 고향에서 살다 자식들의 안부를 확인하고자 동경으로 올라온 <동경 가족> 속 노부부의 감상은 어떨까. 역시 도시는 비정할 뿐인가?
장남은 의사, 장녀는 미용실 운영, 차남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입에 풀칠은 하고 사는 듯하다. 주변에서는 다들 노부부에게 자식들이 모두 잘됐으니 부럽다며 칭찬한다. 부부도 잘 살고 있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며 안심하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세한 근황을 나누며 함께 느긋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도시의 시간이 너무나 빠르다. 부모님을 모시고 드라이브를 가려다가도 병원에서 호출이 와 약속을 취소하고, 부모님께 효도를 목적으로 멀리 온천 여행도 보내 드리지만 실상은 집안에서 외부 행사를 주최하기 위함이었다. 영화 초중반까지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것은 인물들에게 은혜를 갚는 일이라기보다는 생활에 방해되는 짐이나 부담처럼 보인다. 마음 편히 기댈 곳이 없어 어쩐지 부랑자 신세가 된 것 같다며 작게 웃음을 짓는 노부부의 모습은 어쩐지 씁쓸함을 남긴다.
그러던 중 연로한 어머니는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기릴 틈도 없이 장례식은 어디서 할 것이며, 상복은 어떻게 맞출 것이며 등 자식들은 결정할 일들로 정신이 없다. 결국 모든 가족들이 함께 어머니의 고향인 이노미치로 함께 내려가게 되는데,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일컬어지는 장남과 장녀에게보다 아버지는 늘 못마땅해했던 막내 아들에게 더 큰 위로를 받는다.
결국 이 도시에 사랑이란 없는 것일까? 라고 생각하던 중, 마지막 쇼지와 노리코, 그리고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는 삭막한 삶 속에서도 얼마든지 사랑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얻는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며 시간과 투쟁하고, 소중한 사람의 경조사를 놓친다거나,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 둘 잃은 채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간다거나... 그러다 도달한 곳에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다짐했던 마음을 보여줄 이는 누가 있을까? 잔잔한 화면은 우리에게 전쟁같은 삶 속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리지는 아닌지 넌지시 묻는다.
글쓴이 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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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과 2003년에 걸쳐 총 세 편으로 완결된 무간도 시리즈. 유위강과 맥조휘가 탄생시키고 유덕화와 양조위가 한층 입맛을 돋운 이 트릴로지는 홍콩 누아르 영화의 표제작이라 할 수 있다.
흔히들 ‘남자들의 영화’로 일컬어지던 홍콩 영화를 향한 대중들의 관심은, 비슷비슷한 작품들 사이 1997년 홍콩 반환을 기점으로 크게 사그라든다. 이를 다시 부활시킨 것이 바로 〈무간도〉(2002)였다.
조직원과 경찰이라는 직업적 속성 및 그에 따르는 범죄 및 폭력의 소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누아르의 의미와 맞닿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무간도가 선보이는 느와르는, 사람들이 그 이전까지 알고 있던 것과 다소 차별화된다. 덕분에 무간도는 홍콩 영화의 마지막 불꽃이자 새로운 터닝 포인트라는 수식어를 추가로 획득한다.
주인공 유건명은 경찰 소속의 스파이로 키워진다. 경찰에 의해 소탕되었던 폭력 조직 삼합회가 소년인 그를 경찰 학교에 보낸 것이다. 동시기 경찰 학교 측은 출중하였던 학생 진영인에게 퇴학이라는 명분을 씌워 삼합회의 첩자로 투입한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둘은 각자의 자리에서 지위를 공고히 한다. 이는 스파이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경찰과 조직원이라는 직업에도 해당되는 이야기. 때마침 경찰 학교의 교장이 사망하며 진영인의 본래 소속을 아는 사람은 황지성이 유일해진다. 이후 태국 마약 거래 사건을 계기로 상대 진영이 스파이를 보유했음을 깨달은 황지성과 한침은, 각기 이를 찾아낼 인물로 두 남주인공을 임명한다. 영화는 이토록 아이러니하게 시작된다.
인물들은 누아르가 흔히들 품은 의리, 소위 브로맨스보다 혼란스러운 관계와 감정선을 스크린에 띄운다. 진영인이 택한 의리를 유건명은 손에서 놓아 버리고 든든히 이들을 지켜야 할 이들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어릴 적 읽은 명작동화 『왕자와 거지』를 연상시키는 둘의 상황 역시 개인의 정체성에 있어 혼란을 불러온다. 영화의 제목이 ‘무간도’인 것 역시 이러한 점에서 우러났는지 모른다. 불교의 여덟 지옥 중 하나인 ‘무간지옥(無間地獄)’은 간극이 없는 고통으로 채워진 지옥의 존재를 설명한다. 스파이의 사명을 가지고 적진에서 10년을 보낸, 데칼코마니 같은 두 삶이 영원한 지옥에 비견되는 셈이다.
그저 또 하나의 ‘홍콩 누아르’ 이상으로 등극한 〈무간도〉는 마틴 스콜세이지에 의해 〈디파티드〉라는 타이틀로 각색되고, 한국의 〈신세계〉 등 이후의 다양한 작품에 영향으로 작용한다. 그저 잔향을 남기고 떠났다는 말 대신 현재형의 문장을 사용하는 것은 〈무간도〉가 여전히 굳건한 전설임을 암시하려는 주장을 띠기 위함이다.
글쓴이 몽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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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 | 2006 | 151'
금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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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간도>의 리메이크작인 <디파티드>는 같은 첩보물이지만 꽤나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주인공들 사이에서 단연 집중해서 보아야 할 두 인물은 바로 빌리와 콜린이다. 잔뜩 얽히고설켜 있는 이야기 속, 둘은 완전히 반대되는 포지션을 담당한다. 경찰학교에 다니던 학생이었던 빌리는 코스텔로라는 이의 범죄 조직에 잠입하게 된다. 범죄 조직 안에서의 삶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경찰로서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그가 코스텔로를 따르는 태도와 눈빛에는 늘 불안함이 서려 있다. 반면 콜린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코스텔로 조직에서 보내진 간첩이다. 유능했던 그는 경찰 학교에 보내져 경찰이 된다. 마찬가지로 경찰로서의 삶은 속해 있던 조직에서의 삶과 딴판이다. 곧장 새로운 삶에 적응할 수 있었던 콜린은 애인을 사귀고 안정적인 미래를 꿈꾸게 된다.
영화는 둘의 심리 묘사나 개인적인 삶을 보여주다가도 숨 가쁘게 총을 들고 뛰는 두 조직원들의 추격전을 빠르게 좇으며 쉴 틈 없이 흘러간다. 코스텔로와 다른 조직원들을 대하는 빌리의 태도에서 조급함이나 불안함이 느껴졌던 것인지, 그의 행동에서 하나둘 단서를 찾아낸 이들은 그가 간첩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콜린 쪽 역시 마찬가지다. 경찰들도 첩자가 끼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서로를 의심한다.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긴박함 속에서 빌리와 콜린은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마주칠 듯 말 듯, 서서히 존재를 의식한다.
영화를 보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얼른 이 임무를 끝내고 싶어 하는 빌리의 편에 섰다가, 경찰이라는 새로운 삶에 만족해 자신의 자리를 잃고 싶지 않은 콜린의 편에 서기를 반복하게 된다. 서스펜스 액션 영화였다가 개인의 드라마가 되기도 하는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어느 편에 서야 할까? 그럴 만한 조직은 있기나 한 걸까? 과연 결말은 어떻게 될까. 어떤 엔딩을 상상하든 영화는 그 이상을 보여준다. 시작부터 머릿속으로 계산했던 것은 아무 의미도 없어지고, 우리는 그저 넋을 놓고 총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주인공들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글쓴이 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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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여러 방법🎞️
안녕하세요! <영화는 두 번 태어난다>의 두 번째 이야기와 함께 찾아온 <휴대-영화>입니다. 앞선 영화들은 어떻게 보셨나요? 같은 이야기를 다른 시선으로 풀어낸 리메이크 작품들은, 때로는 원작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줄 때도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보고나서 역시 원작은 못 이긴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요.
어떤 영화가 더 마음에 들고, 좋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러한 다양한 감상이 오가는 것 자체가 영화의 큰 즐거움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저는 항상 기획안과 영화들을 여러분께 소개하면서, 여러분들은 영화를 어떻게 보셨을지,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가 정말 궁금하답니다 ㅎㅎ!! 아무튼 이번 기획안에 끝까지 많은 관심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리며, 다음 주에 새로운 이야기와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이화 시네마떼끄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3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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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시네마떼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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