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획안의 구상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023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4개 부문을 싹쓸이하며 한국 음악 씬을 뒤집어 놓은 한 사람, 250.
그는 ‘뽕짝’이라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지만 단 한 번도 조명받지 못했던 장르를 수 년간 탐구해 새로운 장르로서의 가능성을 발굴해냈다.
250은 자신의 동네와 동묘 거리, 고속도로 휴게소를 직접 찾아가며 뽕짝의 근원을 찾아 올라갔다. 동시에 이를 <뽕을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로 꾸준히 제작해오며 이박사, 김수일, 양인자, 이정식, 나운도 등,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아류’로 여겨지는 사람들의 진지한 음악 세계를, 그 속에 내재되어있던 한국 미감의 본질을 세상에 보여주었다.
‘뱅버스’의 경우 클럽과 고속버스는 같은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그냥 클럽이니까요. 이동 클럽이잖아요. 그 클럽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어떤 사람은 너무 슬퍼서 춤을 못 추고, 계속 꿀꿀해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놀러 오는 사람도 있고, 누구는 여자나 남자를 꼬시러 온 사람도 있고. 이런 엉망진창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가서 도착한 곳은 전곡 노래자랑 하는 곳이라 누군가 “딩동댕동” 하고 “전국~” 하면 모두가 “노래자랑~!”이라고 외치면서 갑자기 화합이 되는 순간을 생각했어요. 그런 식으로 뭔가 엉망진창이면서, 어영부영하는 그림을 조화롭게 할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어요. 그래서 칼 소리 같은 것도 넣고, 클락션 소리 같은 것도 넣고요.
-인디포스트 매거진, 앨범 <뽕>의 250 인터뷰 “난 어차피 유치하고 촌스러운 인간이니까” 中
250의 주장처럼, 미학자 최광진은 한국의 미학을 ‘접화주의’로 보았다.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구별 짓는 서양의 분화주의, 개별적 요소를 모두 하나의 중심으로 묶어버리는 중국의 동화주의와 다르게, 한국은 서로 다른 여러 존재들을 비빔밥처럼 조화롭게 섞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폄하하던 싸구려 감성 속에도 이런 한국적 접화주의를 엿볼 수 있다.
저렴한 가격, 화려하고 우스꽝스러운 외양으로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싸구려(A.K.A. 동묘감성)’는 서구를 향한 사대주의와 식민지배 역사 속에서 뿌리내려온 민족주의가 뒤섞여 낯선 풍경을 주조한다. 그들은 한민족의 영웅 홍길동과 할리우드의 터미네이터가 만나는 광경을 만들어내고, 대 히트를 쳤던 심형래의 영구가 소림사에 가게 했다. 서구에서 유행했던 양식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나름대로의 국산화를 거쳐 조금은 기이하고 코믹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뽕짝'이라는 음악 장르는 미국의 록음악, 일본의 엔카, 한국 전통 민요 등이 독특하게 융합되어, 산업화와 도시화 속 노동계급과 도시 서민의 정서적 피난처이자 문화적 코드로 기능하였다. 이는 서구 중심의 문화적 헤게모니 안에서 만들어진 이분법적 고급/저급의 틀을 해체하며, '삼류'라 여겨졌던 문화가 오히려 가장 보편적이고 진솔한 가치를 지녔음을 재발견하게 한다.
웃음은 눈물만큼 사람의 깊은 내면을 자극한다. 어쩌면 그 둘의 극치는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웃음을 유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영화적 장치들은 사회문화적, 역사적 뿌리가 작용한 결과이다. 뽕짝과 싸구려는 신나지 않는데도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허허’ 웃음이 나게 한다. 그 때문인지 그들은 유치하고 촌스럽지만 마냥 밉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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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와 땡칠이 III - 영구 람보
김주희 | 1990 | 72' | 목요일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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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
First Blood
테드 코체프 | 1982 | 97' | 목요일 5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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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The Terminator
제임스 카메론 | 1984 | 108' | 금요일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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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대 터미네이터
안재석 | 1993 | 56' | 금요일 5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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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겨냥한 코미디로 시작해 대성공을 거둔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의 세 번째 속편, 영구 람보. 역시나 전작의 타 시리즈와 같이 사연 있는 군인이 홀로 남아 적들을 물리친다는 람보의 상징성만 가져와 국산화한 작품이다. 그러나 람보 원작 시리즈의 오마주 또한 남아 있어 원작을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작품을 무난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가 보여 주는 ‘국산화’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바보 영구. 너무나도 바보인 나머지 이미 두 차례 징병 검사에서 탈락했으나, 어쩐 일인지 세 번째로 징병 검사에 응하라는 우편을 받게 되어 군대로 향한다. 결과는 당연히 탈락이었으나, 국군이 되고 싶은 마음에 고위 간부들에게 떡을 챙겨 주며 붙여 달라고 사정을 한다. 그런 영구의 노력이 가상했는지 영구는 육군에서 훈련을 받게 되는 것은 물론 특수부대로 배치되기까지 한다.
특수부대에서의 임무는 살인 로봇을 만드는 적군 기지를 찾아내어 해당 로봇을 파괴하는 것. 특수부대에 가서도 영구의 황당한 돌발행동은 끊이질 않지만, 고된 임무 속 하나의 낙인 듯 부대원들은 그런 영구를 귀엽게 보며 웃어넘겨준다. 그러다 모두가 잠든 새벽, 화장실을 찾은 영구를 제하고 부대의 전원이 적군에게 살해당한다. 소대장은 유언으로 영구에게 임무를 완수해 줄 것을 부탁하고, 상심한 영구는 바보답지 않은 진지한 모습으로 적군 기지로 향한다.
액션이 중요한 람보 시리즈가 원작이어서일까, ‘영구 람보’는 여타 영구 시리즈에 비해 어린이 영화같은 면모가 덜하다. 동고동락했던 친구들이 하룻밤만에 전사하고, 적군 기지에 접근해서는 기관총으로 전원을 살해하고 수류탄으로 건물을 폭파시키기까지 한다. 잔인함을 강조하는 액션 장면은 없다 하더라도, 마지막 불타는 기지를 등지고 ‘고향의 밤’을 부르며 전사한 부대원들과 지금까지의 기억을 회상하는 장면은 마냥 황당한 웃음을 선사하던 영구 시리즈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어린이 <영구 람보>에 <람보> 오리지널 시리즈처럼 당시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 준다거나 하는 메시지가 있는지는 미지수다. 어쩌면 영구 람보는 시리즈의 새로운 시도, 혹은 아쉬운 변화일지도 모르겠다.
글쓴이 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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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코체프 | 1982 | 97'
목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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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컴한 우주에 거대한 우주선이 출현한다. 양철 로봇 같은 코스튬을 입고 우주선을 조종하는 이들의 정체는 감마성 외계인이다. 감마인들이 지구를 침략 계획의 첫 단계를 실현하려는 한편, 이런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결혼을 기다리고 있는 오 소령과 안희가 있다. 한반도에는 큰 태풍이 올 것이라는 예보가 떨어지고, 레이더에 정체불명의 거대한 물체가 포착되자 공군 소속인 오 소령은 식을 하루 앞둔 새벽에 본부로 호출된다. 안희와 어머니는 서로 껴안으며 ‘이럴 때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스릴 있는 추억이 되지 않아요?’, ‘그런 추억 두 번만 찾았다간 지진이라도 나야겠구나.’ 라는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오 소령에게 아무 탈이 없기를 바라며 잠에 든다.
우주도 그들의 사랑을 축복하고 싶었던 것일까? 플래그에 응답하듯, 도심에는 감마인들이 보낸 우주 괴인 왕마귀가 출현하여 건물들을 무자비하게 부수며 시민들에게 피해를 가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모두 혼비백산하여 대피하는 와중, 안희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로 오 소령을 기다리다 왕마귀에게 잡히고 만다. 총도 화포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과연 영화 속 대한민국은 미지의 존재 왕마귀를 처치하고 다시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1933년 괴수 영화 장르의 초기 사례인 <킹콩>이 등장하면서, 미지의 괴수가 등장하는 것은 각국의 영화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우주 괴인 왕마귀> 또한 영화 내에서 킹콩의 언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순수 국내 SF영화라고 평가받는 <우주 괴인 왕마귀>는 거창한 특수효과나 그래픽 효과가 없더라도 공상과학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상상력은 때로 시대에 따라 그 범위가 제한되거나 넓어지고는 하는데, 현대의 정론과 과거의 상상을 비교해 보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가 SF를 즐길 수 있는 묘미라 할 수 있다. <우주 괴인 왕마귀> 에서는 대기권 밖에서 괴수가 어떤 장비도 없이 지구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크기가 200배 이상 팽창되고, <매트릭스> 에서는 첨단 과학 장비가 난무하는 와중 여전히 소통은 유선 전화기로 이루어진다.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보다 미지의 영역이 더 넓었을 그때의 대한민국으로 돌아가, 과학적 사실을 넘어서는 상상의 세계를 마주해 보자.
글쓴이 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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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주머니가 잔뜩 달린 죽은 녹색이나 갈색 옷을 찾을 때면, 특히나 더더욱 그게 구제 의류라면,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그 옷, 굉장히 소중한 것을 잃은 퇴역 군인 같네....’ 라는 말을 하고는 한다. 어쩌면 그 ‘소중한 것을 잃은 퇴역 군인’ 이미지의 원조는 이 영화의 주인공, 존 람보일지도 모른다. 베트남 전쟁에서의 특수부대 그렌베레 대위 출신인 존 람보는 전쟁 후 옛 전우를 만나기 위해 워싱턴의 작은 산골 마을로 향한다. 그러나 람보가 찾던 전우는 이미 전쟁의 후유증으로 암을 얻어 타계한 후였다. 또다시 완벽하게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의 태도로 마을을 방황하던 중, 부랑자들을 잡아들이던 마을의 보안관을 만나 상황은 악화된다. 람보는 식당을 찾으러 가던 길에 행색이 수상하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연행되고, 부랑자들을 무시하는 것이 일상인 경찰관들에게 강압적인 조사를 당하며 전시의 끔찍한 기억들을 떠올린다. 결국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람보는 충동적으로 경찰들을 따돌리고 산속으로 도망치지만 그 행동은 오히려 보안관의 승부욕을 자극하게 되고, 일은 점점 커져 영화의 마지막에는 200여명의 경찰들이 람보를 포위하기에 이른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쫓기며 살아야 하는가? 비록 도주 과정에서 몇 명의 경찰들이 사고로 죽거나 람보에 의해 다쳤지만, 먼저 고압적인 태도로 나오며 훈장까지 받은 전쟁 영웅을 공격한 것은 경찰 쪽이 아닌가? 그렌베레 부대를 지휘했던 트라우트만은 당신들은 람보를 이길 수 없으니 그만 그를 놔 주라고 이야기하고, 람보 자신도 더 이상의 불필요한 희생은 원하지 않는다며 마음만 먹는다면 죽일 수도 있었던 사람들을 풀어 주거나 순순히 항복하려고도 하지만, 경찰들은 그런 람보를 도무지 가만두지 않는다. 도대체 람보에게 어떤 원한이 있길래, 경찰들은 람보를 가만두지 않는 것일까?
1980년대 초반, 미국은 베트남 전쟁 이후 여러 사회적 문제에 직면했다. 군인들이 전쟁 PTSD와 같은 정서적 문제를 겪으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되는 반면, 많은 시민들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비판을 가하며 참전 군인 개인에게도 ‘살인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오갈 곳이 없으니 집도 직장도 없이 떠도는 자들은 민간인에게 자칫 해를 끼칠 수 있다며 ‘부랑죄’라는 명목으로 범죄자로 간주되었다. 람보와 트라우트만이 재회하는 장면에서, 줄곧 말이 없던 람보는 도대체 우리의 명예와 전우들은 어디로 갔냐며 트라우트만을 붙잡고 결국 무너지고 만다. 전장에서는 전차도, 수백만 달러가 나가는 장비도 만져 보며 조국을 위해 싸울 수 있었지만 돌아오니 온통 자신을 살인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뿐이고, 어느 곳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전쟁에 승리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두 사람은 경찰의 체포에 순순히 협조한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구급차에 실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람보의 모습은 전쟁 영웅이라기에는 쓸쓸하기만 하다.
글쓴이 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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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이랑 터미네이터랑 싸움하면 누가 이길까?"
흥미로운 질문에서 출발한 <홍길동 대 터미네이터>는 1993년 여름방학을 겨냥한 가족 오락 영화로 제작되었다. '조선의 의적 홍길동과 할리우드의 아이콘 터미네이터의 만남'이란 독특한 상상력은 얼핏 황당해 보이지만, 당시 한국 박스오피스를 장악했던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인기를 반영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영화는 박물관에 소장된 '율도 국왕의 국서'가 도둑 칼쿠리에게 도난당하면서 시작된다. 우연히 이 신비로운 서적을 손에 넣은 홍길동의 18대 후손 소년 길동은 전설의 영웅 홍길동과 마주치게 되고,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가 길동의 친구 소영을 노리면서 시대를 넘나드는 모험이 펼쳐진다.
가족 영화의 특성을 반영하듯, 초등학생 소영과 길동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며 악당들의 성격은 다소 희화화되어 있다. 갈고리 손을 가진 악당이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를 타거나, 납치한 아이에게 과자를 권하는 등 어설픈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 예다. 또한 당시 막 보급되기 시작한 컴퓨터에 대한 시대적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장면들도 흥미롭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전통 영웅 홍길동의 현대적 재해석이다. 조선시대 부패한 권력에 맞서 싸운 의적 홍길동은 1980~90년대에 들어 어린이용 영웅 캐릭터로 재조명되며 대중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변모해왔다. 이 영화 역시 그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탄생했으며, 박물관 유물에서 인물이 튀어나오는 설정이나 시대를 초월한 서사는 후일 제작된 <전우치>와도 유사한 면모를 보인다.
더 나아가, 영화는 <전우치>와 같은 후대 작품들이 차용한 연출 기법과 서사 구조를 선보이며 한국 판타지 영화의 한 흐름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두 영웅의 만남이라는 참신한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만듦새는 조악해 관객에게 충분한 몰입감을 제공하지 못한다. '홍길동 vs 터미네이터'라는 도발적 질문이 메타 내러티브와 패러디적 요소로 작용할 여지를 남겼으나, 기술적 완성도와 연출력의 부족은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문화적, 사회적 메시지의 효과를 크게 약화시킨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글쓴이 모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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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도 보고 뽕도 따고🤡
안녕하세요! <휴대-영화>입니다! 봄이 찾아오나 했더니 갑자기 찾아온 추위가 가시지 않고 있네요. 앞선 영화들은 재밌게 보셨나요? 시네마떼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아주 재밌고 강렬한 기획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에 걸맞는 강렬한 포스터까지!! 언제 또 다시 이런 기획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 지 모르니... 끝까지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그러면 다음 주에 새로운 이야기와 함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이화 시네마떼끄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3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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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시네마떼끄
ewhacinemathequ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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