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화만사성💬

  어린 코끼리의 다리에 사슬을 건 채로 말뚝에 묶어 길들이면, 성체가 되었을 때 사슬을 약간의 힘만 주어도 충분히 끊을 수 있는 새끼줄로 바꿔 주어도 익숙해진 나머지 탈출하지 않는다. 어떤 관계는 누군가에게는 이와 같이 사슬이 되어 보이지 않는 감옥이 된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주인공 보의 경우에, 그 사슬은 어머니일 것이다.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오랜만에 집에 돌아가기로 한 보. 심리상담사는 최근에 집에 잘 못 가서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는지, 어머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지 등 어머니와 관련한 사항들을 집요하게 캐묻는다. 안 그래도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어머니의 전화와 음성 메시지로 휴대폰은 계속 울려대고, 보는 상담사의 질문을 불안한 침묵으로 무마하며 그 자리를 나온다. 
   

  어머니의 과도한 통제 아래서 살아온 보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극도의 불안을 겪는다. 그 심리가 무의식중에 반영된 것인지, 어머니를 뵈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지각하고서부터는 난데없이 도둑질을 당한다거나, 노숙자와 싸움이 붙는다거나, 카드 결제가 거부되거나 하는 등 온갖 방해물들이 - 하지만 사실은 보의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반영된 핑계 혹은 자작극이었을지도 모르는 - 계획을 가로막는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시면서, 영화는 점점 따라가기 어려워진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오고, 배경이 차원을 가리지 않고 바뀐다거나, 갑자기 보를 위협하는 남근 형상의 괴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는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억압당했던 보의 편집증을 시각적으로 대변한다. 아들을 너무나도 사랑해 그를 파괴 수준으로 통제하려 들었던 모성은 감옥이 되어 중년에 이른 현재까지도 그를 불안하고 미성숙한 어린아이로 만들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가족애에 의한 도 넘은 통제가 자식을 어떻게 망쳐 놓는지에 대해서만 서술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자식이 각각 서로에게 가지는 양가감정에 대해서도 다루었다는 것이다. 어쩔 때는 나의 가족이 너무 밉고 싫지만 결국은 내게 필요하고, 또 사랑하는 존재라는 것은 현실에서도 변치 않는 사실이 아닌가? 그러니 이 황당하고 섬뜩한 전개 안에서도 우리는 현실을 찾아볼 수 있다.

폴 토머스 앤더슨 | 1999 | 188'

  영화는 어머니의 묘비를 치우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산 사람들이 무덤의 자리를 미리 봐 두고 주기적으로 찾아와 관리하고, 떠난 자들의 묘비를 청소해 주는 것은 마치 우리나라의 관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여기서 이 영화의 제목이자,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인 ‘귀향’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로 돌아가는가? 우리 모두의 고향은 어디인가? 어쩌면 모든 인류의 고향은 어머니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소원했던 어머니를 여의고 딸과 남편을 책임지고 있는 라스문다의 이름이 ‘현명한 양육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라스문다의 마을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남성들이 일찍 떠난다. 라스문다의 아버지도 화재로 인해 타계하고, 라스문다의 남편도 자신의 딸을 성폭행하려다 살해되고 만다. 살해된 남편의 시체를 숨기고자 라스문다와 딸 파울라는 레스토랑에 시체를 숨기고, 아무렇지도 않게 마을 사람들과 교류하며 태연한 척 평온한 일상을 이어나간다. 영화는 자칫 언제쯤 남편의 시체가 발견될지 마음을 졸이게 되는 서스펜스 스릴러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감독은 관객과 추리 게임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문법을 따르는, 여성의 모성애로의 귀향을 다룬다. 결론적으로, 남편의 시체는 영영 발견되지 않은 채 마을의 여성들은 서로 알고 있지만 모른 체를 하며 서로의 존재와 비밀을 숨겨주고 일상을 이어나간다. 

  중요한 것은 남편의 시체를 어떻게 숨겼는지가 아닌, 모성애라는 주제이다. 라스문다가 왜 파울라에게 친아빠에 대한 비밀을 숨겨왔는지, 라스문다의 어머니는 왜 숨었는지, 모녀는 왜 소원해져야만 했는지에 대한 내막을 감독은 어쩌면 허무할 정도로 담백하게 풀어낸다. 그것이 밝혀지기 전까지의 모든 서사는 추리물에서의 단서를 하나하나 조합해 완성물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모녀간의 소통의 부재가 얼마나 길었는지를 의미한다. 

  혈연가족과의 문제는 대부분 소통의 부재로부터 기인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의 힘이 되어 주어야 할 가족이 그러지 못해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병을 앓을 때, 사소한 문제들이 쌓여 갈등을 빚는다. 우리 이제 서로의 방에서 나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어떨까. 이해를 바라지 않더라도 털어놓는 것은 어떨까. 그래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가야하는 가족이고, 같은 여성이니까. <귀향>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모녀간의 벽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대화 앞에서 어떻게 허물어지는지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