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있나요?
끝이 없을 것 같던 매서운 겨울이 한 풀 꺾이고, 언제나처럼 봄은 우리 곁에 찾아왔네요.
세상은 한없이 복잡하게만 흘러가고, 추운 겨울날 나아가야 할 길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꽃망울이 피어나고, 땅 위로 새싹이 올라오는 것은, 우리에게 다시 살아갈 작은 희망을 안겨주곤 합니다.
시네마떼끄도 봄 기운과 함께 문을 엽니다. 발칙하고 도발적인 영화들과 함께 말이지요. 당신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영화들 속에서 방학이 끝났다는 아쉬움도, 마음 한 구석 묵혀둔 걱정도 모두 훌훌 털어버리세요.
시네마떼끄는 여러분과 함께할 봄날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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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킬링 문 Killers of the Flower Moon
화요일 5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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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운 것들
Poor Things
요르고스 란티모스 | 2023 |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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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悪は存在しない
목요일 5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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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튼 아카데미
The Holdovers
알렉산더 페 | 2024 | 133’
금요일 5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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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킬링 문 Killers of the Flower M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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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은 1920년대 오클라호마를 배경으로 한다. 석유가 발견되어 갑자기 부자가 된 오세이지 부족 원주민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미국 역사의 잘 알려지지 않은 어두운 장을 스코세이지 특유의 스타일로 풀어낸다.
스코세이지의 카메라는 마치 우리를 그 시대로 직접 데려다 놓는 듯하다. 카메라가 인물들 사이를 부드럽게 움직이며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담아내고,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갑작스럽게 전환되는 장면들이 이야기의 긴장감을 더한다. 화려한 액션이나 시끄러운 효과 없이도, 단지 카메라의 움직임과 프레임 구성만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스콜세지의 실력이 빛나는 순간들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로버트 드 니로라는 헐리우드의 두 거장이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었지만, 실제로 이 영화의 숨겨진 보석은 릴리 글래드스톤이다. 오세이지 부족 여성 몰리 역을 맡은 그녀는 말보다 눈빛으로, 침묵으로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욕심 많은 백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부족과 가족을 지키려는 그녀의 모습은 영화의 정서적 중심축이 된다.
'3시간이 넘는 영화라니...' 처음 러닝타임을 들었을 때 걱정했다면, 그건 기우에 불과하다. 영화는 의외로 빠르게 전개되며, 스콜세지는 역사 수업처럼 딱딱하게 사건을 나열하는 대신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와 감정에 초점을 맞춰 관객을 끝까지 붙들어 둔다.
누군가 총을 쏘고 폭발이 일어나는 화려한 장면보다,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어니스트의 갈등하는 눈빛 한 번, 드 니로가 연기하는 윌리엄 킹의 소름 돋는 미소 한 번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스콜세지는 그렇게 폭력의 본질을 파헤친다.
이 영화는 단순한 역사물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탐욕, 배신, 그리고 인종 차별에 관한 이야기다. 배우진의 숨막히는 연기, 탁월한 영상미, 그리고 단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는 치밀한 연출까지. 영화를 좋아한다면, 그리고 미국 역사의 숨겨진 이면에 관심이 있다면, <플라워 킬링 문>은 꼭 봐야 할 작품이다.
글쓴이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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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고스 란티모스 | 2023 | 141’
수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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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청했습니까, 창조주여, 흙으로 나를 인간으로 빚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다, 어둠에서 끌어올려달라고? *
존 밀턴의 '실낙원' 에서 발췌한 이 문장은 문학동네 출판 <프랑켄슈타인>에서 인용되는 구절로도 유명하다. <프랑켄슈타인>과 이를 재해석한 <가여운 것들> 모두 오만한 인간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지성체가 주인공이라는 것은 동일하나, 캐릭터의 삶의 궤적은 상이하다. 창조주에게 버림받고 동족은커녕 이름 하나 없이 비극을 맞이한 '크리쳐'와는 다르게, <가여운 것들>의 주인공은 아름답다는 뜻의 '벨라'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창조주에게도 끔찍이 예쁨받는다.
벨라의 세계는 창조주이자 아버지인 갓윈의 집이 전부이다. 작은 세계에 균열이 일기 시작한 것은 외부인인 변호사 덩컨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벨라에게 한눈에 반한 덩컨의 제안으로 둘은 집 밖으로 나서 여행을 떠나게 되고, 벨라의 세계는 점차 넓어지게 된다. 폐쇄적인 대인관계의 틀을 깨고 나와 다른 사람들과 성적으로 어울리고,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다가도 가끔 도덕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평생 욕망에 충실해 왔던 벨라의 여행기는 화려한 영상미와 음악과 더불어 한껏 기이함을 자아낸다.
<프랑켄슈타인>의 '크리쳐'는 사랑하고 사랑받을 동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욕망을 가지고 살아왔으나, 창조주의 배신으로 인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반면 '크리쳐'를 모티프로 삼은 '벨라'의 욕망은 분명 그보다 더 파괴적이고 원색적이나, 벨라의 무엇이 그를 꺾이지 않게 만드는 것일까? 그의 욕망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그 욕망은 어떻게 학습되었는가? 그 욕망은 어떻게 다시 살아나는가?
글쓴이 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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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와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 눈 덮인 숲은 바람에 흔들리고, 강물은 조용히 흐른다. 계절이 지나가도 이곳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타쿠미도 마찬가지다. 그는 나무를 베고 장작을 패며, 딸 하나와 함께 조용한 일상을 살아간다. 마을 사람들은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살아가고, 삶의 방식은 오랜 시간 동안 크게 달라진 적이 없다. 그러나 그 질서는 곧 외부의 논리에 의해 흔들리기 시작한다.
도쿄의 한 연예기획사가 마을에 글램핑장을 세우겠다고 나선다. 개발업자들이 찾아와 경제적 성장과 편리한 시설을 이야기하며, 자연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 설득한다. 논리는 꽤 타당해 보이고, 계획은 체계적이며, 그들의 태도 역시 점잖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물의 흐름이 바뀌면, 숲의 질서도 함께 흔들린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설득과 반대가 부딪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갈등은 크지 않다. 하지만 마을을 감싸는 공기는 물속의 바위처럼 묵직하게 가라앉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불안이 서서히 퍼져나간다. 타쿠미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 변화를 감각적으로 알아차린다. 아주 작은 균열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가 사라진다. 타쿠미는 숲을 헤매며 딸을 찾는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를 발견한다. 죽어가는 사슴이 헐떡이며 바닥에 쓰러져 있고, 하나는 그 사슴과 마주한 채 서 있다.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무엇을 느끼고 있는 걸까. 순간, 타쿠미의 얼굴이 변한다. 영화는 그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다음, 그는 개발업자인 타카하시의 목을 조른다. 저항하는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결국 타카하시는 힘없이 쓰러진다. 타쿠미는 아무 말 없이 딸을 안고 숲속으로 사라진다.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단순한 분노였을까? 타쿠미는 처음부터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서서히 무너지는 균형을 지켜보면서 그는 점점 더 궁지로 몰리는 듯한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끝내 감당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을 때 그는 가장 본능적인 방식으로 반응한다. 그렇게 영화는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는 대신에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왔던 질서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이 악의 평범성 아닐까. 악은 특정한 순간, 특정한 인물에 의해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소한 타협과 선택들이 조용히 쌓이며 균열을 만들고, 그 균열이 점점 깊어질 때 비로소 형태를 드러낸다. 숲으로 사라지는 타쿠미와 하나. 그러나 그들이 어디로 향하든, 그들이 벗어나려는 ‘악’은 이미 그들 안에 자리하고 있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묻는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정말 악으로부터 자유로운가?
글쓴이 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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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페인 | 2023 | 133’
금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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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겨울, 미국의 기숙 사립학교 ‘바튼 아카데미’ 구성원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저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생각에 모두들 들떠 있다. 그러나 모두가 학교를 떠날 때 각자 모종의 이유로 그곳에 남은 이들이 있다. 영화의 원제는 <The Holdovers>, 번역하자면 ‘남겨진 이들’이다. 영화는 저마다 상처를 가지고 ‘바튼’에 남겨진 인물들을 조명하며, 나아갈 용기가 없어 머물러 있던 이들이 서로의 결핍을 보살피는 연대를 통해 아픔을 딛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폴’의 말을 빌리자면, 영화 속 세 사람에게 세상은 잔혹하고 불가해한 곳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인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세상은 너무나 차갑고 또 삶은 어렵다. 결핍은 아무리 애써도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고, 그 누구도 내 상처를 이해하지 못할 것만 같고, 세상에 버팀목 없이 나 혼자 남겨진 것만 같을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키케로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를 통해 위로받고 또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알지 못하는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고자 하는 한편 자신의 아픔을 나누는 마음. 그 용기를 불씨 삼아 결핍으로 맺어진 연대는 커다란 불빛이 되고, 그들의 세상은 그 빛 덕분에 더 이상 홀로 분투하던 어둡고 외로운 곳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그 빛은 곧 스크린에 투사되는 빛(카메라 옵스큐라 Camera Obscura), 즉 영화 그 자체가 되어 관객에게까지 전해진다. 만물이 얼어붙었던 긴 겨울을 지나 다시 생명이 피어나는 봄을 기다리는 이 시기, 새 학기 새 시작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바튼 아카데미>를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엔딩 크레딧을 뒤로하고 영화관을 나설 때쯤이면 냉혹하고 알 수 없는 곳이기만 했던 세상이 어쩌면 조금은 따뜻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글쓴이 옹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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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어진 봄기운과 함께🌿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 다들 지난 겨울과 방학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개강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시네마떼끄에서도 개관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다시금 관객분들을 맞이하고, 어두운 상영관 안에 하나둘 관객분들이 들어서는 모습을 상상하면 괜스레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각자 방학동안 어떤 시간을 보내셨든, 이렇게 다시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반갑고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 학기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화 시네마떼끄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343호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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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시네마떼끄
ewhacinemathequ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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