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영화 속 인물들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신체가 이질적으로 변화한다. 이들은 점차 알 수 없는 본능과 충동에 휘말리며 기존의 정체성으로부터 멀어지고 재구성된다. 이러한 인물들은 원래 속해 있던 정상성으로부터 빠르게 이탈하며 변화 전후의 상황이 더욱 부각되고, 이로 인해 타자화되는 경험이 극대화된다. 이때 이 변화가 진화인지, 퇴화인지, 이들이 ‘진정한’ 인간인지, 과연 인간성이라는 것이 가장 추악한 것인지 혹은 마지막으로 남은 도덕성인지 - 질문하기에 앞서, 왜 우리는 그러한 구별에 얽매여있는가? 왜 우열을 따지고 차이를 식별하려고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다름에, 구분 짓기에 집착하도록 하는가?
“20세기 후반에 이른 우리의 시대, 이 신화적 시대에 우리 모두는 키메라이자, 기계와 유기체가 이론화되고 가공된 혼합물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사이보그이다.” -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 中
전파를 통해 볼 수 없는 타인과 연결되고, 뇌로는 감당하지 못하는 셀 수 없는 기억들이 렌즈로 포착되고 무수한 기록물로 남는 시대. 더 이상 ‘나’라고 하는 존재의 범위를 인간의 육체라는 물리적 실체로만 한정할 수 없게 된 시대. 우리는 정말 이전과 다름없는 순수한 인간인가?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미지라는 근본적인 공포와 마주한다. 인간와 비인간이라는 이분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현시대 우리들 안의 혼종성과 조우하기 위하여, 이러한 공포 한가운데에 스스로를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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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표
5월 23일 (화) 오후 2시: 티탄 | 쥘리아 뒤쿠르노 | 2021 | 108‘ 오후 5시: 진저 스냅 | 존 포셋 | 2000 | 104’
5월 24일 (수) 오후 2시: 죽여줘! 제니퍼 | 캐린 쿠사마 | 2009 | 102‘ 오후 5시: 플라이 | 데이빗 크로넨버그 | 1986 | 100’
5월 25일 (목) 오후 2시: 티스 | 미첼 리히텐슈타인 | 2007 | 93‘
오후 5시: 컨트랙티드 | 에릭 잉글랜드 | 2013 | 84’
5월 26일 (금) 오후 2시: 헬레이저 | 클라이브 바커 | 1987 | 94‘ 오후 5시: 블루 마이 마인드 | 리사 브륄만 | 2017 | 97’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343호, 모든 상영은 무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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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탄
쥘리아 뒤쿠르노 | 2021 | 108‘
화요일 2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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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저 스냅
존 포셋 | 2000 | 104’
화요일 5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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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줘! 제니퍼
캐린 쿠사마 | 2009 | 102‘
수요일 2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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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데이빗 크로넨버그 | 1986 | 100’
수요일 5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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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리아 뒤쿠르노 | 2021 | 108‘
화요일 2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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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아는 늘 기이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자동차를 향한 성적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해하려는 욕망이다. 그는 자동차에게만 욕정하고, 자동차와 관계한다. 이는 모터쇼 댄서로 일하는 그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드러난다. 알렉시아는 차 위에서 관능적인 춤을 추며 차를 훑는다. 남성 관객들은 이를 바라본다. 알렉시아의 몸은 ‘섹시’하고 ‘여성적’이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알렉시아는 온전히 여성이거나 남성이 아니고 심지어는 기계도 인간도 아니다. 알렉시아의 몸은 영화가 흐를수록 점점 더 망가지고 엉망이 되며 성적 매력을 잃는다. 영화는 이 신체를 대상화된 여성의 것에서 정체가 불분명한 덩어리, 몸뚱어리로 평가절하해 나간다. 알렉시아의 신체는 모든 경계를 넘나든다. 그것이 폭력적이고 불쾌한 방식이더라도.
알렉시아의 두 번째 욕망은 그를 강간하려던 남성 팬을 살해하는 장면에서부터 가시화된다. 이후에도 알렉시아는 동료 댄서와 그 친구들을 살해하고, 아버지를 가두고 불을 지른다. 그는 때로 아무 이유 없이, 무분별하게 사람을 죽인다. 이런 행위들 때문에 살해 용의선상에 오른 그는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실종아동 행세를 시작한다. 17세 소년이어야 했을 아드리앵의 행세를 하기 위해 32세 여성인 알렉시아는 코뼈를 부러뜨리고 압박붕대를 한다. 그렇게 아들인 척 앉아있는 알렉시아를 본 아드리앵의 아버지 뱅상은, 별다른 의심 없이 그를 돌아온 아들로 받아들이는 듯 보인다. 그러나 알렉시아는 갈수록 정체를 숨기기 힘들어진다. 알렉시아의 배가 점점 불러오고, 가슴에서는 분비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황당하게도 알렉시아는 자동차와의 관계를 통해 임신했다. 시간이 갈수록 알렉시아의 몸이 뚜렷이 임신한 여성의 것이 되어감에도 뱅상은 그를 아들로 받아들인다. 이제 그에게 아들이 누구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 듯하다.
<티탄>은 괴팍하고 기이하며 황당하다. 머리에 티타늄이 박힌 여성과, 자동차를 향한 욕망, 서슴없는 살인행위가 온 장면에서 뒤엉킨다. 어린 소년인 척 가장하는 여성과 이를 받아들이는 늙은 남성, 이들이 전하는 애정이 영화를 두 부분으로 분절하며 관객을 당황시킨다. 엉킨 사건들이 마지막까지 시원스레 풀리는 일도, 사건의 명확한 원인도 결과도 없이 영화는 종반을 맞이한다. 복잡하고 혼란한 이 영화에서 인물의 정체성은 유동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혼잡함을 관객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남성과 여성을, 기계와 인간을 결합하고, 쪼개고, 다시 섞고 있는 이 영화의 혼종성을 말이다.
서구의 이분법적인 세계관 안에서 여성은 과학과 문명의 대척점에 있는 자연과 동치되며 그렇기 때문에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사이보그는 흔히 여성성과 결합하며, 기계와 여성이 결합할 때 이들은 재생산성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자연, 여성, 기계가 공유하는 재생산성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파괴적 힘을 가졌으며, 때문에 남성의 권위와 통제를 위협하는 타자로 여겨진다. * 이처럼 여성과 기계가 동일한 위치에 놓이면 기계는 흔히 놓이는 여성-남성과 자연-문명의 동치에서 벗어나고 공통점을 갖는다.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이 말하듯, 사이보그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흐리고 자연과 문명, 비이성과 이성,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대립으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이분법을 해체한다. 영화 <티탄> 역시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임신한 여성은 마초적인 집단에서 가슴을 가리고 남성의 옷을 입는다. 그는 소방관들 사이에서, 그들과 같은 차림으로 모터쇼에서 추던 관능적인 춤을 춘다. 소방관 뱅상은 나이듦에 따라 남성성을 잃어가고 있다. 때문에 자신의 남성됨을 잃지 않고자 매일 스테로이드를 맞는다. 분홍색 타일이 붙은 화장실에서 말이다. 뱅상은 여성인 알렉시아를 아들의 대신으로 삼으면서도 거리낌이 없다. 기계-여성을 결합하는 모습은 어떠한가? 어릴 적부터 티타늄을 머리에 심고 기계와 여성의 결합체로 살아가는 알렉시아는 이미 이분법의 경계에 서 있다. 그리고 이런 기계-여성의 결합은 알렉시아가 자동차와 결합된 태아를 임신하며 극대화된다.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은 알렉시아가 결말부에서 출산한 아이가 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기계-여성의 결합으로 나타나는 영화의 혼종성을 완성시키는 장치이다. 영화는 고정된 여성성에 질문을 던지고, 젠더의 경계를 넘나들거나 강조하고,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구분을 끝내 흐리고 만다. 기계도 인간도 아닌 괴물. 그 존재로 인해 정상성은 희미해지고, 경계는 사라지며, 단일한 정체성으로 규명될 수 없는 무엇만이 화면에 남는다.
*이송이, 「트랜스 장르와 포스트 젠더-<티탄(Titane)>에 나타난 기계성과 여성성」 110쪽 인용 및 참고
글쓴이 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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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포셋 | 2000 | 104’
화요일 5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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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죽음으로 시작하는 <진저 스냅>은 서서히 변화하는 몸과 일상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그린다. 피가 낭자한 세계에 빠져있는 진저와 브리짓 자매는 엄마가 축하하는 ‘여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끔찍하게 여긴다. 이때 진저의 초경이 시작하면서 괴물에게 물리게 되어 변화가 중첩되어 나타난다. 주변 어른들은 이러한 변화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저 조심하라고만 말한다. 하지만 척추가 도드라지고 꼬리뼈가 연장되는 것은 교과서에 실린 생리의 증상이 아니다. 진저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털을 뽑고 꼬리를 잘라내고자 하였지만 변화는 일방향이다. 그렇게 변화와 함께 주변에선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자매는 혼란해 한다.
이렇게 이 영화는 전형적인 인간-괴물(로 불리는 생명체) 변화 패턴을 따라간다. 기존 괴물로부터의 습격, 이로 인한 신체적 변화와 이어지는 주변과 내적 갈등.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갈등은 진저가 ‘늑대인간’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진저가-혹은 브리짓이-그들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왔기 때문에 시작되었다. 자매는 비슷하게 자라났고 어긋나지 않을 것처럼 서로를 생각했다. 그러나 초경과 함께 시작된 신체의 변화는 자신의 몸을 생경하게 바라보게 만들고 접점이 없어진 자매가 서로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 막대기를 들고 공격 태세를 취할 정도로 사이를 바꿨다. 하지만 브리짓이 여전히 하나임을 강조하며 자발적으로 감염‘하고’ 동족처럼 피를 먹을 때 진저의 공격은 브리짓을 응시할 수 있을 정도로 느려진다. 영화 초반의 자기 예언적 문장은 마지막 장면에서 실현된다. 브리짓은 언니와의 추억이 사진으로 가득한 방에서 언니를 끌어안는다. 16살 전에 죽거나 현장에서 죽거나, 그러나 영원히 함께할 것.
<진저 스냅>은 캐나다 B급 호러 무비라고들 하지만, 초경 이후 동반된 변화를 생각하면 청소년기의 혼란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주기적으로 몸에선 고통과 함께 피가 나오고, 온몸엔 털이 자라나고…. 호러 영화에서 괴물로 변하는 인간들은 대개 이러한 형상을 띄기도 했다. 즉, 인간에서 비인간으로의 변화를 육체적 성숙과 연결 지은 것이다.
글쓴이 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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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린 쿠사마 | 2009 | 102‘
수요일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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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주의 한 고등학생 제니퍼는 어느 날 인간의 태를 한 채 다른 무언가로 바뀌었다. 그는 여전히 학교에 다니고 예전처럼 대화를 하고 아름다웠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밤에 갑자기 피범벅으로 오더니 냉장고 속 음식을 다 거덜 내서도 아니고 석유 같은 걸 토해내서도 아니다. 물론 이것도 이상하다. 그러니까, 제니퍼는 근원적으로 어딘가 ‘평범’과 달라졌다.
제니퍼는 인디밴드 로우 쇼울더가 인기를 얻기 위한 희생 제물로 쓰였다. 제니퍼가 보통과 달라진 것은 희생 의식을 통해 유명 밴드가 되었지만 제니퍼는 조건 중 하나였던 처녀가 아니었기에 악마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칼에 찔려도 혀를 불에 그슬려도 다치지 않고 평범한 제니퍼로 돌아온다. 돌아온다? 제니퍼처럼 구성된다. 제니퍼는 여타 다른 사람들처럼 배가 고프면 힘을 잃지만 이제 그는 그 허기를 다른 방식으로 채운다. 그는 우발적으로, 그리고 계획적으로 남자들을 끌어들이고 끝내 잡아먹는다. 사람을 잡아먹어야 아름다워지고 조금 더 평범해지는 그 모습을 우리는 인간이라 정의할 수 있는가?
니디는 그러한 제니퍼로부터 남자친구인 칩을 지키기 위해-끝내는 제니퍼를 막기 위해 오컬트 책에서 제시한 대로 심장을 찔러 죽인다. 제니퍼가 순순히 죽어준 것 같다는 생각은 우리의 착각일까. 악마에게서 살아남은 니디는 악마가 되었다. 새로운 인간의 계보는 제니퍼에서 니디로 이어졌다. 제니퍼를 제물로 삼아버리고 악마로 만들어 버린 로우 쇼울더의 멤버들을 죽이고 니디는 유유히 사라진다.
극 초반의 제물 의식 과정은 성폭력의 은유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은유에서, 제니퍼의 식사 행위는 섹슈얼 관계의 전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장면들의 연속에서 우리는 이 영화가 단순히 과장되고 키치한 틴에이어저 B급 호러 무비에서 관계의 미묘함을 잘 드러낸, 현실적인 영화로 의미를 전환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의 인간관계는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이다. 영화에서 제니퍼와 니디는 서로를 좋아한다는 걸 알지만 그 관계는 어쩌면 모욕감을 줄 수도 있고 건강하지 않은 관계임을 안다. 또 이러한 친밀함이 새로운 형태로 변할 수 있었으나 ”너랑은 이제 절교야.”라는 대사에서 볼 수 있듯이 실패하였다. 하지만 니디는, 마지막에는 제니퍼의 복수를 해주었다.
본능적으로 피아를 구분하고 몇 가지 범주로 묶어 보는 우리는 <죽여줘! 제니퍼>를 보면서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구별하고 차이점을 찾아보는 것.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인간과 비인간의 차이를 강조하고자 하는 영화가 아니다. 복잡한 관계를 생각하다 보면 인간과 비인간의 차이를 살펴보는 것은 악마를 퇴치하는 일 만큼이나 무의미해 보인다.
글쓴이 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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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크로넨버그 | 1986 | 100’
수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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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 브런들은 물질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물질 전송기를 발명한 과학자이다. 그는 박람회에서 만난 기자 베로니카에게 자신의 물질 전송기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 물질 전송기는 무생물만 전송할 수 있는 미완성품이기에 물질 전송기를 기사로 작성하는 베로니카에게 자신의 연구를 책으로 써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한다. 그리고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어느 날 스테이크를 전송한 후 맛을 본 브런들은 생물을 전송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게 되고, 원숭이로 살아있는 생명체를 전송하는 실험에 성공한다. 그는 성공 기념으로 기쁨의 시간을 보내려 하지만, 전 남친인 기자 스타티스가 브런들의 실험을 이용하려는 것을 알게 된 베로니카가 그를 만나러 가자 질투심에 술을 마시다가 사고로 물질 전송기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전송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 중에 전송기 안으로 파리가 따라 들어가게 되면서 브런들과 파리의 유전자가 섞이게 된다.
이후 몸에 굵은 털이 생기고, 기분이 좋아지거나 갑자기 운동능력이 상승하고, 달달한 음식을 좋아하게 되는 등 브런들의 신체에는 파리의 특성이 나타나게 된다. 점점 손톱, 치아, 귀,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사람의 신체 특징들이 사라져가는 브런들은 컴퓨터를 통한 조사 끝에 자신이 파리 유전자와 섞이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한편 베로니카는 임신을 하게 되고, 브런들이 점점 더 흉측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고 낙태를 결정한다. 이를 알게 된 브런들은 낙태를 하지 말아 달라며 베로니카를 납치하고, 브런들은 베로니카에게 아이와 함께 셋이서 융합하자고 하면서 베로니카를 억지로 전송기에 넣는다. 전송기로 융합하려고 할 때 스타티스가 전송기 연결 부분에 총을 쏘아 베로니카를 구하게 되고, 브런들은 장치 부품들과 융합되어 끔찍한 모습으로 나온다. 브런들은 베로니카에게 자신을 총으로 쏘아달라고 하고, 베로니카는 슬퍼하며 그를 총으로 쏘아 죽인다.
음성 인식을 통해 컴퓨터를 조작하고, 실험에서 답을 내려주는 인공지능(혹은 이와 같은 기술)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 영화는 “발전된 과학의 끝은 어떨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영화는 과학을 발전시키는 인간의 모습을 다루면서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던 과학과 인간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실수도 용납해서는 안 되는 과학 영역에서 감정으로 인해 한 순간에 인간이 곤충과 융합한다. 파리의 유전자로 인해 벗겨지는 피부, 떨어져 나간 귀, 빠진 치아와 손톱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부위 중 하나이다. 실험 이후로 점점 인간의 모습이 사라져가면서 한 생물은 외적(외형), 내적(본능)으로 인간도, 곤충도 아닌 괴물과도 같아지면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잃는다.
글쓴이 후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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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에 왔던 뉴스레터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안녕하세요, 여러분! 주말 잘 보내셨나요? 이번 주 기획은 알 수 없는 몸의 변화를 인지하는 인물들과 인간과 비인간이 혼재되는 영화들을 담은 <변종인간>입니다. 우리는 얼만큼 정상적인 인간들일까요? 본 영화들에는 더 이상 인간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영화 내에서 인물의 정체성은 유동하고, 재구성되며, 때문에 그들은 타자화됩니다. 이때 그 과정은 주로 끔찍하고 괴기하게 그려지고는 합니다. 나의 존재가 유동한다는 근원적인 공포를 마주하는 것은 울렁거리는 경험이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런 공포 속에서 스스로의 혼종성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편집자인 저도 본 기획의 세미나에 참여했는데요. 이 기획의 영화 12편을 보며 8편을 고르는 것은 다양한 변이와 공포를 마주하는, 즐겁고도 힘겨운 경험이었습니다. 여러분께도 비슷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본 기획을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새 관객인 우리도 무언가로 변하거나, 적어도 변했고 변하고 있는 나의 일면을 발견할지도 모르니까요. 😉 (참고로 뉴스레터를 담당한 저는 <티탄>과, 수요일에 발송될 <티스>, <헬레이저>의 페이퍼를 맡았답니다. ^/////^) 앗! 말이 길어졌네요.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할게요. 오늘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막간을 이용한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 저번 주 뉴스레터 시간표에 날짜가 오기입 되었어요. 5월 16~19일 대신 그 전주 날짜인 9~12일로 발송된 것을 뒤늦게 확인하여 정정합니다. 죄송합니다.
수요일에 올게요!
이화 시네마떼끄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343호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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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시네마떼끄
ewhacinemathequ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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