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기 셰익스피어🎞️

프랑코 제피렐리 | 1968 | 124'

   평화롭고 아름다운 도시 베로나. 두 명망 높은 가문 ‘몬태규’가와 ‘캐플릿‘가는 서로에 대한 증오로 수차례 대립하며 평화로운 베로나 거리에 소란을 일으킨다.  

   캐플릿가의 연회가 있던 날, 몬태규가의 외아들 로미오는 몰래 가면을 쓰고 연회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아름다운 줄리엣을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줄리엣 역시 진실한 모습의 로미오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이내 두 사람은 서로가 원수의 집안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그러나 운명적인 사랑의 끌림을 막을 수 없었던 로미오는 그날 밤 담장을 넘어 줄리엣에게 향하고, 잔인한 사랑의 운명에 탄식하던 줄리엣과 만나 서로의 마음을 고백한다. 아름다운 달빛 아래 두 연인은 입맞춤과 서약으로 변치 않는 사랑을 맹세한다.  

   다음 날 아침 로미오는 로렌스 신부에게 결혼 주례를 부탁해 몰래 줄리엣과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친구인 머큐시오가 줄리엣의 사촌인 티볼트와 결투 중 사망하자 이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를 살해하게 되면서 로미오는 베로나에서 추방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패리스 백작과 줄리엣의 결혼이 확정되며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또 한 번 큰 역경을 만난다.  

   상심에 빠진 줄리엣은 로렌스 신부의 도움을 받아 가사(假死)상태에 빠지게 되는 물약으로 가짜 죽음을 꾸민다. 덕분에 패리스 백작과의 결혼은 피할 수 있게 되었지만, 뒤늦게 베로나에 돌아온 로미오는 하인으로부터 줄리엣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에 빠진다. 줄리엣이 안장된 무덤을 찾아간 로미오는 마지막 입맞춤과 함께 독약을 마시고 그녀의 곁에서 목숨을 끊고 만다. 그러나 잠시 후 가사 상태에서 깨어난 줄리엣은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로미오를 발견하고, 간악한 운명의 장난에 슬퍼하며 단검으로 스스로를 찔러 다시 한번 죽음을 선택한다. 이 두 젊은 연인의 죽음을 통해 두 가문은 증오와 앙심으로 다투어왔던 과거를 참회하고 화해를 약속한다. 영화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장례식에서 두 가문이 화해하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너무나 잘 알려져 익숙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영화는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우리는 단기간에 불타오르듯 사랑에 빠졌다가 끝내 비극적인 사랑을 맞이하고 마는 이 어린 여인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지켜보며 한편으로는 마음 아파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들의 어리석음에 탄식한다. 그러나 누가 이 젊은이들을 죽였는지 그 진정한 원인이 밝혀졌을 때 관객들의 마음에 남는 것은 두 집안의 원한이나 연인을 파멸로 인도했던 운명, 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미숙하고 성급했던 행동이 아니라 두 젊은 연인이 서로를 갈망하며 나누기를 원했던 순수한 사랑이다. 그것은 짙어지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한 줄기 빛처럼 관객들의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준다. 그 기쁨은 슬픔과 비극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더 아름다워 보인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최종철 옮김, 민음사, 2008.

   어떤 이야기들은 책장을 덮는 순간으로 끝이 난다. 정석대로 잘 쓰인 이야기. 더없이 정의롭고 착한 주인공들. 첫눈에 사랑에 빠진 사이. 신분 차이, 성격 차이, 가문 차이... 갈등의 사유는 다양하나, 그런 고난들은 주인공들의 엔딩을 빛내기 위한 지나가는 시련일 뿐. 독자는 안다. 이 이야기의 끝은 ‘그렇게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것을.  

   반면 완결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작품들도 있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그러하다. 그래서 케이트의 삶은 어떻게 되는지, 페트루키오와의 관계는 앞으로 어떤 형태를 이루고 있을지, 비앙카의 결혼 생활은 ‘정석’대로 잘 흘러갈지, 케이트는 길들여진 것인지, 아니면 길들어진 척을 하는 것인지.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케이트와 비앙카 자매는 유명 인사다. 전자는 감당할 수 없는 망아지 같은 성격과 악행으로, 후자는 정숙하고 아름다운 미모로 말이다. 언니와 달리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비앙카는 하루에도 수많은 남자들에게 구혼을 받지만, 아버지는 케이트보다 먼저 동생을 결혼시킬 수는 없다며 들어오는 구혼들을 거절하기에 바쁘다. 이에 비앙카를 사모하는 남자들은 케이트의 짝을 찾고자 하고, 그 자리는 베로나의 페트루키오가 차지하게 된다.  

   페트루키오 역시 첫 등장부터 만만찮은 성격을 보여 준다. 식탁에 거만하게 발을 올려두는 것은 물론, 통성명조차 하지 않은 카트리나에게 다짜고짜 ‘케이트’라는 애칭을 사용한다. 불 앞에 맞불 두듯, 성격으로 악명을 떨치던 케이트는 페트루키오의 더한 당근과 채찍 조합에 그야말로 남편에게 순종하는, ‘그 시대의 완벽한 아내’가 된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렇게 읽힌다면 어떨까. 사실은 케이트가 길들여진 게 아니라 페트루키오의 장단에 지능적으로 적당히 맞춰 주고 있는 거라면. 혹은 케이트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한 페트루키오가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전개는 유쾌하고 빠르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행간은 독자들에게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다르게 읽어 볼 여지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