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늪😶‍🌫️

   거짓은 복잡하다. 거짓의 무게추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자기 보호의 수단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로, 때론 사회적 분위기에 의한 압박 등 여러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다양한 목적을 지닌 거짓말에는 하나의 불변하는 진실이 존재한다. 거짓이 드러나는 순간, 어떠한 형태로든 균열이 생긴다는 것. 그러나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인간은 수많은 거짓말을 내뱉고 살아간다.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만과 순간의 충동에 이끌려서. 
   그렇다면 인간이 거짓말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과 타인 사이의 주관적 경험의 괴리에서 온다. 그 괴리를 메우는 과정 속에서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모호해지며, 인간은 자신이 지향하는 현실을 구성하기 위해 타인이 주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해석하고 수용하게 된다. 그 사이에 크고 작은 빈틈이 생기게 되고, 그곳에서 바로 거짓이 자라난다. 결국 거짓말이란 건 단순히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의도가 아닌, 불완전한 세상을 견디기 위한 인간의 방어기제 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거짓말이라는 주제를 두고 일차원적으로 인물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감상은 무의미하다. 연약한 동정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은 내일이면 휘발한다. 거짓으로 점철된 영화와 닮은 우리 세상을 직시해보는 경험, 거짓말 앞에 비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마이크 리 | 1996 | 136'

   배우 지망생 은희는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와 우연히 길에서 만난다. 둘은 어색한 영어로 짧지만,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이날은 은희에게 최악의 하루가 된다. 은희는 남자 친구 현오가 자신을 다른 여자의 이름으로 부르는 걸 듣게 되고, 현오와 헤어졌던 동안 만났던 운철과 만나 그가 전 아내와 재결합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현오와 이야기하던 중에 운칠이 은희를 찾아와 셋은 삼자대면하게 된다. 영화 내내 은희는 난처해지기만 한다. 은희는 하루의 마지막, 료헤이와 다시 만난다. 료헤이와 은희는 밤길을 거닐며 서툰 영어로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긴 하루를 마무리하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다. 

   

   영화는 크고 작은 거짓말로 가득하다. 배우와 소설가라는 직업도, 자신이 부른 이름은 극 중 상대역의 이름이었다는 변명도, 친구가 있다는 말도, 몸이 안 좋다는 말도, 상대에 따라 바뀌는 모습도, 그리고 이 영화도 하나의 거짓(픽션)이다. 바야흐로 거짓에 둘러싸인 시대, 현대인들에게 솔직한 사랑이란 너무나 어렵고 막연한 것이다. 극 중 거짓은 수많은 거짓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거짓을 통한 회피가 상황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은희는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히고 나서야 거짓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낯선 영어를 더듬어가며 진심에 가장 가깝게 표현할 말을 찾다 보면 그 사이에 거짓말이 들어갈 틈은 사라진다. 영화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관객들은 어느새 은희가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을 찾기를 바라게 된다. 2016년, 가까운 듯 먼 그 해의 싱그러운 남산과 평화로운 서촌 길을 따라 은희의 하루에 함께해보자.  

 

   영화 제목으로 쓰인 '립반윙클'은 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이 쓴 단편 소설 '립 반 윙클'의 주인공에서 따온 이름이자 극중에서 아무로가 나나미에서 소개시켜주는 마시로의 온라인 닉네임이다. 소설 '립 반 윙클'은 잠에서 깨어나자 20년 뒤의 세상과 마주하게 된 한 남자의 기이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립반윙클의 신부' 또한 나나미가 겪는 이야기를 기이한 분위기 속에서 쉼 없이 펼쳐나간다. 일상적인 분위기에서 출발하는 영화는 어느 순간 한편의 우화처럼 몽환적인 분위기를 띤다.

 

   영화는 SNS를 비롯한 현대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클릭 몇 번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인터넷 쇼핑처럼 SNS를 통해 이뤄지는 가벼운 만남, 결혼식을 가득 채운 가짜 하객들, 누구 하나 사라져도 이상할 것 없을 것 없을 붐비는 도시, 그리고 부끄러움에도 남들 앞에서 헐벗으며 돈을 버는 AV 배우들의 이야기가 러닝타임을 빼곡히 채운다. 6K의 고화질 카메라, 그리고 자연광을 활용해 담아낸 영상은 이 낯선 이야기를 일상적이면서도 동시에 신비롭게 담아낸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립반윙클의 신부'가 말하려는 주제는 명확하다. 진심과 진실이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행복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영화 후반부 마시로는 나나미에게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하지만 행복에는 한계가 있다’며 ‘진심과 진실이 드러나면 그 행복이 무너지기 때문에 돈을 주고 그것을 산다’고 말한다. 이 복잡한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행복은 존재한다는 것, 이와이 슌지 감독은 '립반윙클의 신부'를 통해 누구나 알고 있지만 너무 쉽게 잊고 지내는 '진실'을 넌지시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