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걸, 못된 걸
신여성의 등장 💃
두 번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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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모던걸, 못된걸 - 신여성의 등장>을 기획한 모리입니다😊
이번 기획안은 한국의 근현대 시대상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에서 시작되었어요. 저희 외할머니는 종종 제게 당신이 젊으셨을 적 생활상을 들려주시곤 하셨는데요, 전깃불도 없던 시절, 낮이면 농삿일하러 다니고, 나물 캐러 산으로 들로 나서고, 어느 집에 잔치가 열리면 한복을 입고 장구에 꽹과리를 치며 신나게 놀았다는 이야기는 마치 전래 동화에서나 나올 것 같아 신기했어요.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이렇게 많은 변화가 있으리라고는 상상이 안 갔지요. 그래서 더욱 빠르게 변했던 과도기의 한국 모습에 애착이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이 시대의 풍랑을 지나오신 거구나'하고 그리면서요.
당시 할머니는 안타깝게도 학교를 다니지 못하셨어요. 평생 한글도 배우지 못해 자식들에게 자신의 무지가 드러날까 노심초사하며 살아가시다, 일흔이 넘고 나서야 제게 처음으로 고백하셨던 게 생각납니다. 비록 시골에 살던 할머니는 '신여성'이 되지 못했지만, 모든 게 급변하던 동시대의 도시에선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춰, 새로운 인물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그 모습이 궁금해 찾아보다가 이번 기획안까지 이어지게 되었네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번 영화들은 신여성의 당대 모습을 알고자 했던 기획 의도와는 다르게, 모던걸은 남성 감독들의 렌즈를 거쳐 '못된 걸'로 평가되며 가부장제로 재편입되는 전개 구조가 드러납니다. 기획안 중 그나마 주목할 만한 작품은 신상옥 감독의 <어느 여대생의 고백>인데요, 핍박 받는 신여성의 삶에 연민의 시선을 건네는 당시의 유일한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이외에도, 비록 결말은 아쉽지만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과 <여사장>도 참 재밌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한창 사회가 황폐해졌을 시기였을텐데, 도시의 이지적인 모습을 세련되게 담은 장면들을 볼 수 있거든요. 새로운 욕망을 지닌 여성들의 모습도 엿볼 수 있고요!
어느덧 5월도 끝나가고, 햇볕은 한층 짙어져가네요.
점점 날이 더워지고 있단 사실은 기말고사가 가까워지고 있단 의미이겠죠?
바쁜 하루하루 보내고 계실 여러분, 언젠가 잠시 생각이 난다면 시네마떼끄를 찾아주세요. 시떼는 항상 열려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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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장
한형모 | 1959 | 105’
금요일 5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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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한복을 입은 대학 교수의 아내 오선영은 친구로부터 양품 가게 매장에서 일할 것을 제의받는다. 자존심이 상한다며 거절하는 남편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선영은 양품점에 출근을 나선다. 당시 여성이 직업을 가지는 일은 흔치 않은 일로, 남편이 아내를 방치한다며 사회적으로 비판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선영은 자신의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 직업인으로서의 가치를 확립해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선영의 옆집엔 미국물을 먹어 진보적으로 살고 있던 춘호가 있었다. 춘호는 사귀지 않는 여성과 스킨쉽도 마다하지 않는 급진적인 연애관을 지니고 있었고,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영과 춤을 추고 홀에 데려가는 등, 선영에게 ‘자유주의’를 알려준다.
어느 날부터 선영은 한복 대신 서양식 옷을 입고 자유롭게 연애하는 것에 당돌해진다. 남편 대신 다른 남자와 댄스를 추러 가고, 춘호에게 곧장 가 파티홀에서 춤을 출 수 있게 춤을 가르쳐달라 한다. 가게의 돈을 빼어 친구에게 쥐어주고, 남편이 가르치는 교습생에게도 질투를 서슴없이 내비친다. 어색하던 춤도 이제는 능숙하게 스텝을 밟는 선영.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선영의 발칙한 행보는 결국 외도하는 남자의 아내에게 발각되고, 아내는 선영의 남편에게도 ‘부인이 부도덕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며 편지를 보낸다.
자신의 부조리에 자괴감을 느끼는 선영은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지만, ‘허영에 빠져 가정을 저버리고 향락에 빠진 당신이 무슨 면목으로 돌아왔냐’라며 남편에게 박대받는다. 선영은 아들을 위해 떠나라며 버림받을 위기에 처하지만, 결국 아들을 보며 반성의 눈물을 흘리며 영화의 막은 내려간다.
당시 여성의 ‘자유’란 도덕을 무시하며 계산적인 태도와 향락을 추구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여겨졌다.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전근대적 여성상을 거부하는 모던걸은 집안일과 자녀 교육에는 신경쓰지 않고 문란하게 남자들을 만나는 ‘못된걸’로 여겨졌으며, 영화는 경수의 혼자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를 반복적으로 암시한다.
글쓴이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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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숙희는 지난 사랑이 있었다는 이유로 첫날밤에 연애결혼을 한 남편에게 소박을 맞은 뒤 4년째 혼자다. 둘째 문희는 가정교사와 사랑에 빠지지만 부모의 반대로 사랑의 도주를 감행한다. 셋째 명희는 결혼 같은 건 관심 없다며 자못 도도하다. 유일한 아들이자 막내인 광식은 한창 연애와 ‘키스’가 궁금하다. 유복한 집안에서 네 남매를 기른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고 또한 사뭇 다른데, 어머니는 숙희의 경우를 반면교사삼아 중매결혼을 주장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연애결혼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데, 한술 더 떠 ‘중매 연애 결혼’이라는 새로운 방법까지 제시한다.
남편에게 과거에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던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내에게 과거에 사랑했던 남자가 있었던 것은 죄악이 되었던 시대. 숙희의 남편이 연애결혼을 통해 바랐던 것은 숙희의 ‘순수성’. 연애결혼을 하면 남자는 에고이스트가 된다는 말은, 그렇다면 중매결혼을 한 남자는 ‘에고이스트’가 아니라는 말인가 하는 우스운 질문을 남긴다.
그럼에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은 태동하고, 한복과 양복을 반씩 섞은 옷을 입은 채 아버지의 ‘연애 중매’ 현장에 나타나는 명희에게서 우리는 그 당시에 유행처럼 번진 ‘자유 연애’와 ‘자유 결혼’ 사상을 본다. 아버지의 조수인 영수에게 큰 끌림을 느끼는 명희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영수에게 마음을 표현하며 결국 사랑을 쟁취한다. 문희의 자살 소동으로 문희 또한 ‘꽁생원’ 준철 씨와 맺어지며 갑자기 잘못을 뉘우쳤다며 미국에서 돌아온 남편을 보며 숙희는 감격한다. 여성의 죽음 위기, 남성의 용서와 같은 사건으로 모든 게 잘 풀리는 이러한 플롯은 여전히 당시의 구시대적 사고를 반영한다는 한계가 있지만, 이렇게 한국의 ‘신여성’이 점차 자라나고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글쓴이 연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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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은 주인공 최소영의 주된 욕망과 내러티브에 설득력을 부여하여 관객에게서 이해를 이끌어낸다. 법학대학에 재학 중인 소영은 유일한 보호자이던 할머니가 타계하자 냉혹한 사회에 내던져진다. 수많은 아르바이트 공고와 그녀를 단순히 여성으로 해체하는 남성들의 시선 아래에서 소영의 삶의 안녕이라는 욕망은 공고해진다. 그러나 이는 해방과 전쟁을 겪은 사대문 거리에 상이군인과 아프레걸, 고아와 과부가 넘쳐나면서 흔해진 이야기이다. 이때, 소영의 친구 희숙이 발견한 일기에서 출발한 '고백'의 시작점이 소영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추리 소설 작가를 희망하는 희숙의 창의적인 시나리오 아래에서 가난한 법대생 소영은 국회의원 최림의 가족으로 편입한다. 덕분에 궁핍한 삶에서 벗어난 최소영은 원하던 대로 학업에 집중하여 불행한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변호사가 된다. 그러나 단순한 신분 상승 이야기에서 가려지지 않는 '어머니'와의 이항 대립에 관객은 소영의 어긋난 욕망에 직면한다. 남편의 결혼 전 소생을 과거의 죄악으로 치부하던 어머니는 희숙과 소영이 몸을 의탁하던 하숙집 부인에게서 사실을 이끌어내 소영의 죄를 확인하지만, 침묵한다.
소영이 활약하는 법정은 개인의 죄를 파악하고, 고백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살인죄로 기속된 피고인 전순이는 변호인 최소영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했다. 그리고 변호가 이어지면서 전쟁과 가난으로 야기된 전순이의 개인적 성질은 여성으로 확대되고, 다시 주체 및 개인으로 축소되어 호명되었다. 이 사회에서 모든 여성은 각 개인으로 환원되고 집단으로 선언된다. 최소영은 그제야 자신을 해석-해체하여 가족들에게 이해시킨다. 그 결과로 부인과 소영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소영이 가정 내로 완전하게 편입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글쓴이 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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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사장은 1959년의 한국 영화로 한 여사장과 직원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50년대 최초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된 시기임에도 이 영화는 세련된 연출과 음악, 세트장, 의상 등 영화의 구성적인 측면에서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마치 영화를 보는 순간 잠시 옛 서울로 여행을 다녀온 것 처럼 생생한 장면들은 발랄한 영화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관객들의 흥미를 이끌어낸다.
이 작품은 상당히 밝은 분위기로 영화의 오프닝을 연다. 50년대의 서울의 길거리를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공중전화에서 통화를 하는 주인공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연결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여사장 요안나는 도도한 분위기를 풍기며 어딘가 까칠한 인물로 묘사되는데 언뜻 보면 남에 대한 배려는 적고 자신의 외관을 꾸미는데 상당히 신경 쓰는 그 시대의 ‘현대 여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와 반대되는 이미지의 남자 용호는 그런 ‘현대 여성’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실한 청년으로 묘사된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고분고분한 여성과는 거리가. 먼 여성들을 감독의 시선으로 계속해서 보여준다. 세련된 스타일의 옷과 틱틱대는 말투, 남을 살짝 무시하는 까칠한 성격, 애인이 있는 여성을 향한 시샘, 그리고 그 모습을 탐탁치 않아 하는 남자 등장인물들, 그런 장면들을 계속 보고 있으면 이 감독이 그 시대의 여성들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감이 잡히기도 한다. 또한 재미있는 장면은 한 남자가 그런 여성들을 ‘불여우’라는 표현을 통해 묘사하기도 한다. 그 단어를 들으면 대충 어떤 이미지로 여성들을 연상했는지는 감이 올 것 이다.
하지만 그렇게 반대되는 모습을 가진 두 남녀는 결국 마지막엔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용호의 남자다운 모습에 점점 매력을 느낀 요안나는 몇 번의 거절에도 용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결국 용호는 그녀의 마음을 받아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의 살짝 당황스러운 포인트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사장이었던 요안나는 사장의 자리를 용호에게 넘겨주고 전업주부로 살며 일을 그만둔다. 그리고 사장이 된 용호는 회사를 전보다 더 훌륭하게 이끌며 마지막엔 사무실에 붙은 남존여비 글자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영화는 은근하게, 마지막엔 적나라하게 가부장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결혼을 하지 않은 현대 여성들을 마지막엔 결국 남성에게 존속된 존재로 만들며 영화를 마무리한다. 여성을 사장으로 묘사했을 때는 능력 없고 업무 외에 다른 부분에만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나타냈지만 남성이 사장이 된 이후엔 안 팔리던 잡지가 10만부가 팔리며 사업이 대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감독의 의도는 과연 이게 진짜 의도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적나라해 마지막엔 헷갈리기 까지 했다. 하지만 시대를 생각하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갈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이 영화는 엔딩까지 보면 살짝 황당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영화에서 묘사된 완성도 높은 서울의 모습과, 공간의 깊이가 느껴지는 디테일한 세트장, 인물들의 의상 등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기에 거기서 이 시대의 예술적 사료로서는 좋은 기능을 하는 작품이다 평가하고 싶다.
글쓴이 융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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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明郞한 젊은 날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우리나라의 신여성들의 삶에 대해 알아봅니다. 과거의 말씨, 풍경, 관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가 버리고는 하는 작품들이에요. 결국 기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며 끝맺는 이야기들도 꽤 있지만, 그렇다고 영화 속 당차고 유능한 모던 걸의 모습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죠. 여러분들도 이 못된 걸들을 마음에 한번 품어보시겠어요? 👠
이화 시네마떼끄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343호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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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시네마떼끄
ewhacinemathequ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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