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걸, 못된 걸
신여성의 등장 💃
첫 번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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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0년대 경성에는 미츠코시 백화점을 필두로 새로운 근대적 소비 공간이 유행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경성의 젊은 세대들은 이전과 다른 의상과 두발, 언어, 의식 등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었으며, 1925년 잡지 『신여성』 6월호에 처음으로 ‘모던걸’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새로운 여성상의 등장은 한국 전통 사회에 큰 파장으로 다가왔다. 이들은 ‘신여성’, ‘모던걸’, ‘단발랑’, ‘여학생’ 등으로 이름 붙여졌으며, 기존 젠더 구조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못된걸’, 즉 도덕적으로 ‘나쁜여자’로 재현되기도 했다. 이들은 서구적 외양과 취미, 도시의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며 사회 지배 계층 구조에 도전했고, 고등 교육을 받으며 주체적인 삶을 만들어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견고한 가부장제 구조에 뭇매를 맞고 좌절되는 일도 허다했다.)
이러한 근대적인 풍경은 대부분 서구의 근대성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넘어온 것으로, 주입과 자주적 의지가 뒤섞여 세 국가마다 근대를 묘사하는 방식과 시대가 조금씩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적 질서가 뒤바뀌고 각종 이데올로기가 판을 치던 격동의 시대, 한국의 ‘모던 걸’은 어떻게 등장했는가? 시나리오와 필름으로 그린 모던 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각 시대와 국가를 넘나들며 한국의 전통적 질서에 변화를 불러온 여성상을 살펴보자.
”우리 조선 여자도 인제는 그만 사람같이 좀 되바야만 할 것이 아니오? 여자다운 여자가 되어야만 할 것 아니오? 미국 여자는 이성과 철학으로 여자다운 여자요. 프랑스 여자는 과학과 예술로 여자다운 여자요. 그런데 우리는 인제서야 겨우 여자다운 여자의 제일보를 밟는다 하면 이 너무 늦지 않소?
우리의 비운은 너무 참혹하오 그래“
-‘학지광’ 12호, 나혜석 ‘잡감(雜感)’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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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모든 것
All About Eve
조셉.L. 맨키위즈 | 1950 |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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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녀는 무엇을 잊었는가
淑女は何を忘れたか
오즈 야스지로 | 1937 | 71’
수요일 5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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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가 만들어 놓은 근대적 공간 안에서 수많은 사람과 연락은 각지를 여행하기도, 그저 일상을 왕복하기도 한다. 이때 승강장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로 우리의 내면에 권태가 드나들고 우리는 황홀 속에 빠진다. 이런 장소의 구석에서 저녁이면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제슨 부인과 새로운 일상을 위해 떠나야 하는 하비 박사가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로라가 고하는 고해성사의 시각화요, 결국 처음의 이별이다.
제슨 부인은 수다쟁이 친구와의 달갑지 않은 만남을 뒤로하고 집에 돌아온다. 편안했고 따뜻했던 가정은 온몸이 죄이는 고해소가 되었고, 그녀는 축음기와 남편이 낱말 퀴즈를 푸는 소리에 잠겨 고해성사를 시작한다. 그동안 지은 죄를 사실대로 고백하십시오.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제야 로라와 알렉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로라는 매주 목요일 교외를 벗어나 도심으로 향한다. 이는 반복적인 가정생활에서의 일탈이 되기도 하고, 연장이기도 하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일상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로라에게 여러 우연이 겹친다. 기차역에서 티끌을 빼준 의사 선생을 그다음 주 목요일 시내에서 맞닥뜨리고, 함께 식사한 것이다. 그렇게 로라는 죄악감에 휩싸이면서도 그와 만남을 이어 나간다.
하지만 둘의 만남은 아내와 남편이 있는 두 성인남녀의 만남이오,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행위이다. 그들은 기차역 찻집의 주인과 기관사와 달리 밖에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지 못하고, 레스토랑에서 친구를 만나면 거짓말을 꾸며내야 한다.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들어간 방에서도 뒷문으로 도망쳐 나와 비를 맞으며 방황하며, 자신을 이해한다는 친구에게서 경멸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알렉이 소년처럼 자신이 연구하는 병을 소개할 때 사랑에 빠진 순간을, 배를 타다 쫄딱 젖어 깔깔거리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순간을 뒤로하고 둘은 작별을 고한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일상에서 떠난다.
다시 영화의 처음. 우리는 로라의 어깨에 닿는 알렉의 손을, 뛰쳐나간 로라와 그녀의 속마음을, 돌아와달라고 속삭이는 마음을 눈치챈다.
글쓴이 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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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L. 맨키위즈 | 1950 | 138’
화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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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현재를 결정하고, 현재는 미래를 결정한다.
그녀의 과거는 언제나 마고를 향해 있다. 그녀는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 마고의 공연 일정, 연기, 드레스, 일상, 친구, 애인, 습관까지. 그녀의 과거엔 또한 사별한 남편이 있다. 나라를 위해 헌신했으며 그녀의 인생에 적당한 연민을 유발해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을 누그러뜨릴 남편이 있다.
그녀의 현재는 언제나 더 높은 곳을 향해 있다. 매일 밤 극장을 드나들어 마고의 지인인 카렌에게 눈도장을 찍고, 마고의 분장실에 발을 들이고, 마침내 마고의 집에 자취를 남기고, 마고의 배역을 따내기까지. 거울 앞에서 마침내 그녀의 것이 되고야 말 드레스를 조심스레 대어 보는 그녀의 눈은 더 높은 곳을 향한 욕망으로 반짝인다. 마고의 모든 것을 가져야 마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녀의 미래는 언제나 그녀를 향해 있다. 그녀는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 더 높은 곳을 향한 곳으로. 따라서 그녀의 미래는 예측 가능하다. 그녀의 계획은 답습될 것이다. 그녀는, 우리는 계획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계획은 매우 뻔하며 투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막을 수 없다. 저지할 수 없다. 계획은 오래도록 답습되어 실행될 것이다. 마고에서, 이브로, 이브에서 피비로. 그녀는 거울 앞에서 거트루드의 가운을 입어 본다. 거울은 무수히 많은 피비를 비춘다. 거울은 무수히 많은 이브를 비춘다.
그래서 우리는 ‘이브’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그 누구도 그녀의 이름을 ‘이브’로 정한 적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를 ‘Eve’로 부르기로 했다
글쓴이 연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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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피스트로 일하는 모던걸, 토키코는 한때 잘나가는 권투 선수였지만 야쿠자에 발을 담근 죠지와 연인 사이이다. 죠지는 매서운 눈빛만큼이나 강한 자존심의 소유자로, 야쿠자 세계에서 발을 빼길 바라는 토키코의 바람을 매번 무시하며 계속해서 폭력을 일삼는다. 어느 날, 조지를 동경하는 한 비루한 청년이 찾아오고, 죠지는 그를 돌려보낸다. 그러자 그의 누나 가즈코가 죠지를 찾아와 동생을 거두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가즈코에게 마음이 여려진 죠지의 모습을 본 토키코는 불량스럽고 독단적인-모던걸의 모습을 한-자신에 비해 조숙하고 다소곳한 전통적 여인상에 가까운 가즈코를 보며 질투심을 품는다. 토키코는 도발하며 두 사람을 떨어뜨리려 하지만, 결국 죠지에게 잘 보이고 싶어 자신도 전통적 여인상으로 회귀하기를 택한다.
제국주의 열풍으로 부푼 기대와 문화적 혼란이 소용돌이치던 30년대의 일본. 그 속에서 모던걸의 모습또한 위태롭지만 굳세게 자라나고 있었다. “집안일 같은 건 못해요”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사장 아들에게 당돌하게 이야기하는 토키코의 모습은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모던걸의 표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전통적 여성상에 부합하는 가즈코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그에 귀화하기를 선택하는 토키코의 모습은 여전히 가부장적 질서에 부응하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이길 수 없었다는 반증이자 아쉬움으로 남는다.
글쓴이 모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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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 | 1937 | 71’
수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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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시대의 숙녀들은 긴자 거리에, 가정 내에, 학교에 등장하였다. 모단 가루モダン ガ―ル, 일명 신여성은 기존 사회의 가치관을 답습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집단이었다. 그렇다면 여러 사회문화적 레토릭들이 오가는 신여성 담론장은 영화로 어떻게 확산하였을까.
숙모 수기코는 이웃 주부들과 수다를 떨거나 가부키 공연을 보러 가고 긴자에 쇼핑을 가는 등 권태로운 삶을 지속한다. 반면, 질녀인 세츠코는 남성들과 다정스레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한다. 그리고 그녀는 양주를 마시고 남성들의 공간인 게이샤 술집에 아무렇지도 않게 침범하기도 한다. 다른 세대의 숙녀를 대변하는 둘은 외양에서도 차이가 난다. 대학 교수를 남편으로 둔 부르주아 여성 수기코는 기모노를 정갈하게 입고 다다미방에서 주로 생활한다. 반대로 질녀인 세츠코는 양복을 입고 주로 소파나 침실에 앉아 있다.
이렇게 다른 세대와 위치를 대표하는 두 여성은 미묘한 대립 관계를 형성한다. 수기코가 전통적인 일본 여성의 외양과 달리 현모양처보다는 신경질적인 처의 모습을 한 것과 반대로, 세츠코는 숙부의 일탈을 도우면서 가정 내에서 남편은 위엄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가부장과 가정주부 사이의 위계질서를 세우고자 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두 여성은 의견의 합일을 이루어 내 가정 내에서 가부장의 위치는 회복한 것처럼 보인다. 이때, 양복을 입고 숙부의 제자인 오카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신여성인 세츠코가 가정 내에서는 가부장을 옹호하는 모습은 언뜻 괴리감을 선사한다. 결국 숙녀들이 잊은 것은 중년 여성에게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모습이며, 젊은 여성에게는 자신의 역할이 가부장의 위치를 회복하도록 돕는 것인가?
그러나 이 당시의 사회상을 살펴보면 영화의 주제는 한층 더 심오해지고 이해의 영역으로 넘어온다. 영화가 제작된 1937년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해로, 전체주의 국가의 체제가 요구하는 주체로서의 여성이 등장한 것이다. 전시 상황에서 국가는 여성의 출산을 통해 전쟁에 동원될 군인의 생산을 도모하고자 하였고, 대체로 영화와 같은 문화가 자주 사용되었다. 따라서 영화에서의 모던걸은 더 이상 쾌락과 욕망을 마음껏 드러내며 거리를 산책하던, 구 체계와 신 체계의 질서를 교란하던 정체성으로서의 여성이 아닌, 전체주의 국가가 요구하는 총후부인銃後婦人의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마침내 이는 당대의 관객에게로 넘어와 관객은 이상적인 가족적 질서를 세우도록 요구받는다.
글쓴이 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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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明郞한 젊은 날
여러분은 '신여성' 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자유로운 연애, 지적인 면모, 세련된 스타일? 여러분이 떠올리는 '모던 걸'은, 어디서 온 여성일까요? 이번 기획에서는 근대로 접어들며 이전과는 다른 생활을 맞이하게 된 여성들의 삶을 국가별로 비교하며 알아봅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서구와 일본의 신여성을,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우리나라의 신여성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어떠신가요? 작은 극장에 오셔서 그때의 못된 걸, 모던 걸들을 만나보시겠어요? 💃
이화 시네마떼끄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343호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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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시네마떼끄
ewhacinemathequ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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