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 | 2002 | 109‘

    아처 애비뉴의 테넌바움 家는 매우 구조적이다. 이것은 비단 미관을 이르지 않는다. 테넌바움 가의 첫째 채스가 점유하는 2층 공간을 살펴볼까. 커피로 끼니를 때우는 방, 금융 잡지가 가득한 작업실, 그리고 화재예방용 금고. 10대 초에 부동산업의 거물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려나. ‘입양된’ 둘째, 아홉 살 때 상금 5만 달러를 받은 극작가 마고의 3층은 다음으로 구획되어 있다. 자신의 방과 희곡 도서관. 미니 주택도 소장하고 있으며, 사진 현상 암실 또한 자리한다. 테니스 영재 막내 리치의 다락방은 라디오와 드럼 세트, 수집용 미니카로 채워져 있다. 가깝고도 먼 누군가를 향한 은밀하고도 열렬한 사랑을 드러내는 4층 모퉁이의 화실 역시 리치의 공간이다. 그리고 천재 삼남매의 중심에는 에슬린 테넌바움과 로얄 테넌바움이 있다. 에슬린의 훈육 및 교육은 퍽 체계적이다. 정확히 187달러짜리 가계수표를 끊어주고, 삼남매의 태권도, 이탈리아어, 발레 수업 시간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에슬린의 맞은편에 구조의 파괴자 로얄 테넌바움이 위치한다. 수십만 달러의 지폐를 계획대로 주무르는 손에 영원히 빼내지 못할 총알을 박아 넣는다. 마고가 올린 연극을 혹평해 둘째 딸의 극작가로서의 자존심에 흠집을 낸다. 막내아들만을 알뜰살뜰히 챙김으로써 삼남매라는 완벽한 대칭을 무너뜨린다.

    그리하여 22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에슬린과 채스, 마고, 리치는 직선적이고 목적이 명확하게 배분된 공간에서 비대칭적이고 불분명한 삶을 영위한다. 일분일초를 계산하며 화재대피훈련을 거듭하는 채스와 두 아들을 잡아내는 앤더슨의 샷은, 그들이 걸친 동일한 옷으로 인한 시각 효과까지 더해져 유독 강렬하고 깔끔하다. 욕조 끝엔 TV, 한 손엔 담배, 누군가 들어올 땐 환풍기를 돌린 뒤 발가락으로 문고리를 열 수 있게끔 설계된 욕실은 마고만의 완벽히 통제된 공간이다. 테니스 선수를 은퇴한 뒤 배를 타고 떠도는 리치의 모습은 형과 누나의 삶과는 사뭇 대비되는데, 삼남매 중 어린 시절 로얄의 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영향일까. 구조와 공간이 온전히 건축된 그들의 물리적인 삶 뒤편엔 어딘가 부실한 공사가 끝난 듯한 구멍이 여럿 나 있다. 아들들에 대한 과잉 통제, 22년 세월 담배를 피워 왔고 다양한 결혼을 거듭했다는 사실을 가족 중 그 누구도 모른다는 점, 피가 섞이지 않은 누나에 대한 애정으로부터의 자기파괴는 모두 비구조적·비대칭적·비선형적인 형이상성이다.

    다시, 파괴자가 개입한다. 하지 말라는 표지판 앞에서 최선을 다해 행하고, 지나가는 택시에 물풍선을 던진 뒤 도주한 뒤 슈퍼마켓을 터는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빨간 소년들을 포착하는 샷에, 이전의 화면에서 보이던 직선과 사선, 그리고 네모반듯한 창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유난히 분할적이고 대칭적인 구조에 균열이 일어나고, 그 균열은 더이상 22년 전과 같은 미관의 해침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다시 한 집에 모인 삼남매 사이에서는 아버지가 일으키는 균열로 기존의 분할이 분할되어 비로소 통합이 일어난다.

    웨스 앤더슨의 초기작에 속하는 <로얄 테넌바움>은 최근 앤더슨이 보여주고 있는 색채와 공간 미학의 유구함을 짐작케 하되, 구조와 공간이 건축되고 해체되는 낱낱의 과정이 유쾌히 서사에 녹아든다는 점에서 조금 더 날것의 작품이다. 파괴가 파괴되면, 균열에 또 하나의 균열이 일면 결국 소멸한다는 생각은 어떤가. 그 이후에 건축되는 구조물은 어떤 모양을 띨지 예측해 보라.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 인류의 진화 (주제)

    1968년 개봉한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이 20세기가 상상한 미래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전망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 큰 틀에서 ‘인류의 진화’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두 가지 중 어느 한 가지에 대한 답을 명확히 주지는 않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진화로 말미암은 인류 미래의 결말은 어디에 도달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찰을 이끌어 내며 시대의 고전으로 남게 되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인류의 진화’와 그것이 도달하게 될 결말은 어디인가에 대한 질문을 주제로 한다. 영화속 등장하는 검은 비석인 ‘모노리스’는 인류에게 깨달음을 줘 한 차원 도약해 진화하게 하는 초월적 존재다. 무력하게 표범에게 사냥당하고, 깊은 밤에는 바위 아래서 잠도 못자고 숨죽이고 숨어있어야 했던 인류는 ‘모노리스’를 만나고 도구를 사용할 줄 알게 된다. 이제 인류는 뼈를 사용해 사냥을 할 수 있고 밤에도 더 이상 숨어 지내지 않아도 된다. 두 번째로 달에서 등장한 모노리스는 인류에게 ‘목성 너머 또 다른 생명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세 번째로 등장했을 때는 보우먼을 목성 너머 ‘미지의 저편’으로 보내준다. 마지막으로는 침상에서 늙어 죽어가는 보우먼의 앞에 등장해 그를 태아로 만든다. 태아로 변한 보우먼은 현 인류의 단계를 넘어 새로운 차원의 인류로 진화했음을 뜻한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 구조 공간 건축 (표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유독 건축계에서 주목한 이유 중 하나는 영화 배경의 공간들이 오늘날 현실로 재탄생하고, 다수의 영화나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스탠리 큐브릭이 만들어낸 기준은 이후 엄청나게 많은 추종자들을 탄생시켰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다양한 디자인을 보여준다. 영화 중심으로 나오는 우주선의 공간을 살펴보면, 60년대를 풍미했던 사이키델릭한 기하학의 구성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디자인은 피에르 가르뎅이나 파코라반 등의 유니크하고 기하학적인 이미지와도 연관된다. 올리비에 모그의 붉은색 소파들은 유기적이고, 기하학적 형태들을 모티브로 디자인되었다.

    화면 가득 채우고 있는 공간의 디자인들은 기계적이고, 섬세한 디테일의 풍부한 구성을 보여주기 보다는 감추어진, 간결함을 중심으로 디자인되었다. 이러한 단순성은 20세기의 시작부터 시작된 모더니즘의 영향이라고 추측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60년대에 꿈꾸던 다양한 디자인 문화 트렌드를 집약해서 보여준 영화 같다. 공간, 패션, 가구나 소품 디자인, 조명 구성 등 어느 하나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또한 단순하면서도, 원초적인 도형의 구성, 사각형과 원을 기본으로 전개되는 영화 전체의 시각적 흐름은 이 영화가 얼마나 디자인과 의미의 간극에서 움직이는지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부드럽지만 다양하게 적용되는 색, 카메라의 움직임 역시 리듬감 있게 전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