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독가(作讀家, Wreader)
: 작가도 독자이고 독자도 작가가 되는 작독가(作讀家)의 길이 여기에 있다. 작가의 마침표는 독자의 물음표다. 마침표에서 시작하는 물음표가 독자의 삶을 바꾼다.*
 
    흩날리는 벚꽃 잎을 책갈피 삼아 넘기는 책 한 장은 당신에게 어떤 상념을 불러일으키는가. 몇 개의 연, 줄, 그리고 문자에서 아득히 또 무엇을 보고 있는가. 
    수첩, 노트, 컴퓨터에 연필로, 펜으로, 타자로 끄적이는 글자, 단어, 행, 글은 필연적으로 당신의 내밀한 무언가를 반영한다. 대체로 흰 바탕에 검은 형태를 띤 그 은밀한 표식은 영원히 베일에 싸일 수도 있지만, 종종 나와 너, 우리를 넘나든다. 우리는 읽고 또 읽으며 쓰고 또 쓴다.
    그러나 인류 보편의 읽고 쓰는 행위에 깃드는 순간의 감정과 가치는 개별적이다. 더불어 서로는 서로의 마침표에 물음표를 던지는 작독가다. 다음 영화들을 통해 문자 속을 부유하는 이야기들을 따라가 보자. 영화관을 나온 후 여느 때와 같이 펼친 책과 쥔 연필에는 또 다른, 새로운 의미가 새겨져 있을지도.

목요일 2시

    편지는 구시대의 유물이지만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아니다. 행복을 전해 주는 편지는 수화기 너머로 닿는 목소리랑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이 영화 속에서는 이를 '행복'을 배달한다고 설명한다.

    주인공인 바이올렛은 수기 인형이다. -실은 전투 인형이었지만, 그 이야기는 차차하고- 그러나 왕의 명령에 따라서 이사벨라의 가정교사로 일하게 된다. 목적은 이사벨라의 성공적인 데뷔탕트 데뷔. 이사벨라는 처음에는 바이올렛을 밀어냈지만, 서로에 대해 오해를 풀고 같은 침대에서 잘 만큼 가까워진다. 약속했던 삼 개월이 지나고, 이사벨라는 자신의 헤어진 동생인 테일러에게 편지를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한 장은 무슨 일이 있다면 우편국을 찾아오라는 바이올렛의 쪽지, 그리고 한 장은 자신의 원래 이름인 '에이미'를 부르면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언니의 사려 깊은 쪽지까지.

    시점은 3년 후로 돌아간다. 그 사이에 쑥쑥 큰 테일러는 바이올렛이 말했던 우편사로 가 일자리를 주라고 요청한다. 집배원인 베네딕트를 스승님으로 모시며 일을 배운다. 동시에 읽지 못했던 글을 읽고 쓸 수 있게끔 우편사의 수기인형들에게서 가르침을 받기도 한다. 그렇게 배운 글씨로 자신의 언니인 에이미에게 편지를 써 주고, 이를 배달하기도 한다. 결국, 자신의 첫 목적이었던 편지로 행복을 전달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편지'와 '호명'이다. 전화가 있고 이를 사용하는 장면도 나오지만 편지는 아직 이 사회에서의 유구한 물품이다. 테일러는 편지로 행복을 전달하고, 바이올렛은 사랑을 전달한다고 칭한다. 사람들은 편지를 받으면 우편함으로 달려와 편지를 읽고 답장을 써서 건넨다. 편지는 먼 곳에 있는 사람과의 소통 창구이자 사람들끼리의 감정 공유를 하는 수단도 될 수 있다.

    또한, 이름을 호명하는 행위는 에이미와 테일러 자매를 묶어 기억하게끔 하는 유일한 수단이며, 서로를 외로움의 진창에서 꺼내게 만드는 행위이다. 이 영화의 소제목 역시 '외로워질 때 이름을 불러' / '너의 이름을 부른다. 그것만으로도 우리 둘의 인연은 영원할 거야.' 인 만큼, 영화에서의 호명의 가치와 이러한 이름을 부를 수 있게 연락이 닿게 만든 편지의 역할은 중요해진다.

    결국, 언젠간 이 사회에서의 편지도 우리의 편지처럼 몰락할지도 모른다. 테일러와 에이미도 지금처럼 편지를 주고받는 게 아닌 잘 깔린 전화망으로 영상 통화를 하면서 지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편지를 쓰고, 전달하고, 받는 행위가 단순히 소통의 목적이 아닌 행복을 전하는 목적에 이르기에 편지가 이 사회에서 의미 없는 것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콘도 요시후미 | 1995 | 111’

    담백하고 소박하며 맑다. 이 영화와 주인공들인 시즈쿠와 세이지를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건전하고 깨끗하게 묘사되며, 서로가 서로의 자극제이자 성장 기폭제 역할을 하는 첫사랑이 된다.

    시즈쿠는 그려낸 듯한 청소년이다. 하고 싶은 게 있는 듯 없고,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청소년. 그녀 앞에 나타난 세이지의 할아버지는 그녀를 원석이라고 칭한다. 반대로 세이지는 이미 잘 가공된 보석이다. 원하는 진로가 이미 확실하며, 그를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 세이지는 이런 자신을 보고 불안한 시즈쿠에게 귀를 기울여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 컨트리 로드를 부르는 것, 불안함, 그렇지만 쓰고 싶은 그녀의 소설 같은 것들. 결국 처음에는 뒤틀려있고 틱틱대던 서로가 서로를 채워가며 나아가기에 사람들은 이 영화를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성장 로맨스 영화라 일컫는다.

    시즈쿠는 결국 계속 글을 쓴다. 유튜브 lo-fi 플레이리스트 배경으로도 유명해 공부를 잘할 것 같던 그녀의 성적은 백 등이 폭락하고, 소설보다는 공부를 하길 바라는 주위의 염려도 그녀를 짓누른다. 그러나 결국 세이지의 할아버지와 세이지에게도 재능에 대한 칭찬을 받고, 소설뿐만 아니라 공부 역시 몰입하기로 결정한다. 이 역시 단순히 재능만을 믿는 게 아닌,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을 적절히 선택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성장이니까. 이 영화는 잘 꿰어진 성장 이야기와 담백하지만 맑은 배경과 사랑을 섞고, 몽글몽글한 고양이 세 스푼을 넣어 주면 나오는 결과물과 같다. 조금은 지루할 수 있으나, 어쩌면 가장 따뜻할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