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독가(作讀家, Wreader)
: 작가도 독자이고 독자도 작가가 되는 작독가(作讀家)의 길이 여기에 있다. 작가의 마침표는 독자의 물음표다. 마침표에서 시작하는 물음표가 독자의 삶을 바꾼다.*
 
    흩날리는 벚꽃 잎을 책갈피 삼아 넘기는 책 한 장은 당신에게 어떤 상념을 불러일으키는가. 몇 개의 연, 줄, 그리고 문자에서 아득히 또 무엇을 보고 있는가. 
    수첩, 노트, 컴퓨터에 연필로, 펜으로, 타자로 끄적이는 글자, 단어, 행, 글은 필연적으로 당신의 내밀한 무언가를 반영한다. 대체로 흰 바탕에 검은 형태를 띤 그 은밀한 표식은 영원히 베일에 싸일 수도 있지만, 종종 나와 너, 우리를 넘나든다. 우리는 읽고 또 읽으며 쓰고 또 쓴다.
    그러나 인류 보편의 읽고 쓰는 행위에 깃드는 순간의 감정과 가치는 개별적이다. 더불어 서로는 서로의 마침표에 물음표를 던지는 작독가다. 다음 영화들을 통해 문자 속을 부유하는 이야기들을 따라가 보자. 영화관을 나온 후 여느 때와 같이 펼친 책과 쥔 연필에는 또 다른, 새로운 의미가 새겨져 있을지도.

화요일 2시

    영화는 철저한 관찰자의 시선에서 패터슨의 일상을 따른다. 6시 언저리에 눈을 떠 시계를 확인하고, 옆에 잠들어있는 아내 로라를 바라본 후, 아침으로 콘플레이크를 먹고 출근해 버스를 모는 일련의 과정과 퇴근 후 마빈을 산책시키고 바에 가서 맥주를 마시는, 이제는 패터슨의 선호조차 잘 모르겠는 그 반복들을 가만히 담는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주일과 그다음 월요일 하루가 이 영화를 이루는 모든 것이다. 그 안에서 단 하나 매일 달라지는 게 있다면, 패터슨의 비밀 노트에 적히는 내용들이다. 패터슨은 매일 시를 쓴다.

    아내 로라가 사랑해 마지않는 그의 시에는 반복되는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패터슨이 있다. 매일 보는 성냥갑을, 아내를, 맥주잔을 담아낸 새로운 시각은 언제나 작품이 된다. 관객은 그의 손에서 시로 치환되는 일상을 보며 지루한 줄만 알았던 일상 속 작은 변화들을 더 생생히 감각하고, 곧 깨닫는다. 우리의 일상은 무한한 반복과 다름이 없기에 그 안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담아내는가가 의미를 만든다는 것을. 결국 우리의 하루는 또 하나의 시가 된다는 것을.

    영화 속 가장 큰 사건이 발생한 날 패터슨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글에 담기는 것들을 생각한다. 기억, 감정, 시간, 그 모든 것들의 집합체가 곧 글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단순한 문자 그 이상의 존재로 남은 기록들을 떠올린다.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이 담긴 노트를 잃었어도, 깊이 침잠해야만 했어도, 패터슨은 다시 글을 쓸 것이다. 일요일에 받은 새 노트에 새로이 돌아올 월요일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일주일은 반복된다는 그 뻔한 사실이 위로가 되는 순간이다.

브라이언 퍼시벌 | 2013 | 131’

    리젤의 첫 책 도둑질은 남동생의 무덤에서부터 시작됐다. 마치 운명처럼 남동생의 관 위로 뚝 떨어진 시체를 묻는 방식에 대한 책.

    히틀러가 독일을 지배하던 2차 세계대전 후반, 독일은 혼란과 전쟁의 광기 속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치의 감독은 더 강해졌고 손속은 더욱 잔혹해졌다. 유대인과 공산당원은 살려면 자신을 숨겨야만 했다. 리젤의 어머니도 공산단원이었기에 리젤과 남동생을 독일인 부부에게 입양하려고 했지만, 남동생은 불의의 사고로 죽고 만다.

글을 읽지 못하는 리젤에게 학교는 냉담했고, 새어머니는 잔소리가 심했다. 그러나 새 친구가 생기고, 새아버지는 함께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지하실에 생긴 리젤만을 위한 사전은 리젤이 자신의 공간이라 여길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리젤의 책 도둑질은 단순히 한번이 아니다. 새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의 빨래를 대신 해 주는 일을 하는데, 이러한 빨랫감을 옮겨주는 심부름을 하던 중 시장의 아내에 눈에 들어 그곳에서 책을 읽고, 책을 계속해서 훔치기도 한다.

    글을 읽고 책을 훔치면서 리젤의 세상은 사전이 있던 지하실에서 점점 넓어진다. 이러한 넓은 세상을 제작하기를 도와준 것은 바로 유대인 청년 막스이다. 막스의 아버지가 한스의 목숨을 한번 구해준 적 있었기에, 막스도 집의 지하실에 몸을 숨긴다. 리젤과 지하실에서 같이 책을 읽고, 글 공부를 도와주던 막스는 리젤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하지만 가진 것이 없다. 그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은 바로 히틀러를 비판하는 책인 '나의 투쟁'. 막스는 그 위에 흰 페인트를 부어 노트로 만들어 리젤에게 선물한다. 그때부터 리젤은 단순한 책 도둑이 아닌, 노트를 가득 채우는 작가로 변화한다. 이는 그녀가 죽을 때까지 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첫 원동력이 된다.

    이 영화는 죽음의 나레이션을 배경으로 히틀러를 비판하는 것에 주 목적을 두고 있다. 평생을 독일인으로 살아왔지만 이름이 유대계라는 것 때문에 억지로 끌려가는 상점 주인, 막스를 쫓아낼 수도 쫓아내지 않을 수도 없는 새어머니, 결국 나치의 오발로 인해 리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사라져버린 작은 마을까지.

    그리고 이 영화에서 리젤은 이러한 참사를 모두 본 목격자이며 동시에 독자이자, 이 이야기를 증언하고 써내려갈 수 있는 작가의 역할을 동시에 가진다. 리젤이 죽음이 그녀를 데려가기 전까지, 90년이라는 인생을 살면서 써낸 수많은 작품과 사랑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인생을 퍼트려줄 것이다. 리젤은 자신의 이야기를 페인트가 덕지덕지 묻어버린 노트에 쓰면서, 이러한 선한 영향력을 분명 믿었을 것이라 감히 예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