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부탁해>는 인천에서 함께 여고를 다닌 다섯 명의 이야기다. 영화는 티 없는 얼굴로 웃는 여자아이들의 화면으로 시작한다. 아이들은 함께 사진을 찍고 웃는다.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듯이. 화면은 곧 바뀌어서, 인천을 떠나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 스무 살 혜주를 비춘다. 갓 성인이 된 친구들은 매일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가끔 연락이 닿으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모여서 웃고 떠든다. 그러나 학교라는 동일성의 공간에서 벗어나 마주한 얼굴들은 알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그렇게 말로 하기 구차한 것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른 체를 하다가 허름한 막차를 타고 헤어진다.

    혜주는 인천을 떠난다. 서울에서 사무 보조 일을 하더니 급기야 서울로 이사를 나간다. 자취방은 액자 하나로 벽이 꽉 차고, 좁은 창문으로 바람이 드나든다. 태희는 가족의 찜질방을 도우며 인천을 쏘다닌다. 소녀는 언제나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 한다. 그중 하나가 지영의 삶이다. 지영의 집은 인천 가장 끝자락, 가장 복잡하게 얽힌 동네에 위치했다. 이가 없어 잘 씹지 못하는 할머니,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할아버지와 함께 지붕이 푹 꺼져가는 판잣집에 산다. 텍스타일 디자이너가 하고 싶다는 꿈도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유학을 가고 싶다고도 하지만 지영은 사실 안다. 누구도 무너져가는 이 집을 책임져주지 못한다는 걸. 지영은 이제 경리든, 공장이든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닌다. 비류와 온조 역시 노점에서 액세서리를 팔며 생계를 이어나간다. 이들은 조부모에게 딱히 환영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는 틀림없이 이 다섯 친구가 집을 잃을 것이라고 예견한다. 자꾸만 부두, 공항, 터미널을 맴도는 태희가 그렇듯이. 주인공들은 이미 떠났거나, 떠나게 될 것이며, 인천에 머물 확률은 희박하게 남는다.

    인천은 복잡한 공간이다. 사이좋던 시절의 회상은 영화 초반에만 반짝 등장할 뿐. 현재의 친구들은 구체적인 기억을 불러내지 않는다. 인물들 사이에서 동질하다는 감각은 옅어져서, 실은 구체성이란 그런 방식으로 잃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 개인을 공간에 묶어두는 것들은 다 사라지고 없는데, 다섯은 스스로 있을 공간을 고를 만큼 강하지 않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할 수 없다. 다섯은 인천이라는 공간과 계속해서 미끄러진다. 떠나고 싶지만 은근히 속박되어있다거나, 책임질 가족이 있어서라거나... 극단적으로는 인천에서 벗어났는데 새로운 도시 공간에 완전히 편입될 수 없는 상황에서 미끄러진다.

    지영이 혜주에게 막무가내로 선물한 고양이는 그 사이를 떠돈다. 집 없는 아이들처럼, 처음에 지영에게서 혜주에게로, 혜주에게서 지영에게로. 지영의 판잣집 천장을 한참 거닐던 고양이는 지영과 동시에 집을 잃는다. 지영과 태희는 인천을 완전히 떠난다. 어디로 가는지는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에 가장 가시적으로 환영받지 못하던 비류와 온조가 인천에 남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게 우리 눈에 남는다. 그리고 고양이는 (‘마침내’일지도 모른다) 집을 찾는다. 지영의 집은 완전히 무너졌고, 먹다 만 음식이 말라붙은 그릇만이 남아있다. 그러나 물리적 실체만이 나를 안전하고 따뜻하게 해줄 수는 없다는 것을 이제 이들은 안다. 떠나는 것만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순간들이 있다. 어디로 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남자가 파리의 카페에 앉아있다.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지만 그는 조용히 커피를 홀짝일 뿐이다. 문이 열리고 남자의 친구인 기자가 들어온다. 모두가 동시에 시끄러운 창밖의 경찰차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주인공 게오르그는 기자인 친구에게 작가 바이델에게 편지 두 통을 전달하라는 의뢰를 받는다. 아내와 멕시코 영사관에게서 각각 발송된 편지를 들고 그는 호텔로 향해보지만 작가는 이미 자살하고 없다. 의뢰한 친구는 이미 독일군에 잡혔고, 게오르그도 위험을 피할 수 없다. 파리는 안전하지 않다. 이제 그는 떠나야 한다. 영화에는 총 네 장의 편지가 등장하는데, 게오르그가 전달하지 못한 편지 두 통과 작가가 자살한 방에서 발견된 편지 두 통이 그것이다. 바이델은 후자의 편지 두 통에서 각각 소설의 출간 거절, 아내의 이혼 통보를 받았고 그걸 코트 주머니에 넣은 채 자살했다. 그러나 전자의 편지에는 상반된 내용이 담겨 있다. 첫 번째로 마르세유의 영사관에서 멕시코 입국을 허가하겠다는 편지와, 두 번째로 마르세유에서 기다리겠다는 아내의 편지다. 게오르그는 독일군을 피해 마르세유로 향하는 길에 전자의 이 두 통을 읽게 된다.

    마르세유에 도착한 그는 바이델의 유품을 전달하기 위해 영사관으로 향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기표를 받고 번호가 불리기를 기다린다. 그들은 불안해하며 누군가가 이야기 들어주기를 끝없이 원한다. 통행 비자가 나와 어떤 땅에 받아들여지기를, 그래서 제 몸이 허가받지 못한 땅을 떠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작가 본인으로 오해를 받은 게오르그는 바이델이 되어 영사관을 들락거리며 멕시코로 떠날 준비를 한다. 호텔의 난민 가족이 끌려가는, 누구든 좋다는 듯 이야기를 늘어놓던 지휘자가 쓰러져 죽어가는, 동물 검역서만을 기다리던 여자가 동물들을 따라 몸을 던지는 거리 한복판에서.

    마르세유에 도착한 첫날 그는 어떤 여자의 두드림으로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 후로도 여러 번, 그는 뒤돌아보고 여자는 떠나간다. 여자는 시내에서, 카페의 창밖에서, 영사관에서 게오르그와 스치며 걸어간다. 그녀 이름은 마리, 죽은 작가 바이델의 아내로 남편을 찾아 헤매고 있다. 얼굴을 마주한 둘은 사랑에 빠진다. 마리는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마르세유를 떠날 생각이 없고, 남편의 죽음을 아는 게오르그는 그녀가 떠나기를 바란다. 이제 둘은 마르세유행 승선표를 두고 배에 오르락내리락한다.

    공간은 모호하다. 파리에서 시민들을 검열하는 독일군, 그들의 현대적 군복과 자동차, 오늘날의 옷을 걸친 인물들. 삶을 위협하는 파시스트와 현대적 건물들은 기묘한 시공간을 직조한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영화적 현실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20세기에 유럽을 떠나고자 마르세유에 모여들었던 이들과 21세기 아프리카를 떠나 마르세유에 도착한 난민들. 시간대를 훌렁 넘은 망명자들은 떠나오고 떠나갈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 교차한다.* 다시 공간은 끝없이 열리고 닫힌다. 여러 층의 시간과 공간은 한 곳에 쌓여 전혀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이 이상 강렬히 존재할 수 없는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구체성은 의도적으로 지워지나 결코 탈정치화되기 위함은 아니다. 영화는 지역적이거나 국가적이지 않지만, 그럼으로써 강력하게 현재적이다. 각각 다른 시대에서 차용한 상황은 문의 여닫음으로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독일군의 받는 파리의 카페, 아프리카 난민들이 모여 사는 마르세유의 거주 구역, 아프리카 난민 출신의 모자가 사는 방, 불법 체류자들을 신고하는 주인이 빌려준 호텔 방, 누군가를 만나고 기다리는 카페. 문은 열리고, 세계는 섞여든다.

    영사관 직원은 바이델에게 이렇게 묻는다.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 누가 먼저 잊을까요? 처음에 게오르그는 담담히 대답한다. 전 아내가 거의 기억나지 않아요. 인물들은 통행증(transit, 트랜짓)을 두고 떠남과 남겨짐 사이를 오간다. 바이델을 떠난 마리, 떠나기 위해 비자를 발급받는 바이델(게오르그)과 마주치지 못하며 남겨진 마리, 그리고 침몰한 배에 탄 마리를 기다리는 게오르그. 그는 입국 비자도, 승선표도 없이 마리를 기다릴 것이다. 떠나는 것도, 머무르는 것도 허가받지 못한 몸이 여기 존재한다. 구두 소리가 울리면 남자는 고개를 돌린다.

* 이노은(2021), ‘안나 제거스의 소설 <통과비자>와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영화 <트랜짓> 비교 연구 - 문학의 자기 성찰과 영화적 서술 실험’, 독일어문학, p.161 인용

참고한 글

김기만(2021), ‘<트랜짓>:문 앞에서‘, 크리틱b

신원경(2021),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영화 <트랜짓> 연구 - 안나 제거스의 소설 통과비자의 영화화 양상 고찰과 영화 이미지 분석’, 독일언어문학

    영화는 같은 도시에 누군가를 찾으러 온 두 남녀의 이야기를 꺼낸다. 산밍은 16년 전 연락이 두절된 아내를 찾기 위해 마을에 찾아온다. 산밍은 가난한 집안 출신의 아내를 사 불법으로 결혼했다. 그러나 그 사실이 경찰에 발각되고 임신한 아내와 이별하게 된다. 16년이 흐르고, 그는 아내가 살고 있는 주소를 들고 배를 탄다. 그러나 아내가 살던 곳은 이미 물에 잠기고 없다. 산밍은 도시 철거를 돕는 일용직을 구하고 머물면서 아내의 거취를 찾아 거리에 나선다. 같은 시각, 셴홍은 2년 전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두절된 남편을 찾아 산샤에 내린다. 백방으로 남편을 찾아다니던 셴홍은 남편 친구를 찾아가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러나 남편에게 다가갈수록 남편이 숨겨왔던 것들과 눈 마주친다.

    카메라는 주인공 없이 떠돈다. 불량배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젊은이나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우는 어린아이, 집이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여인. 떠날 사람들이 떠나가고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 도시를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람을 찾으러 샨사에 온 두 인물의 이야기는 이들의 삶과 교차한다. 뉴스에서는 산샤댐 건설이 중국 정부의 숙원사업이었다며 자랑스레 떠들지만, 이야기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산밍은 안개에 잠긴 도시를 보며 지폐 속의 모습과 비교해 본다. 그러나 이곳에서 건물은 일상적으로 무너진다. 남은 사람들은 이제 제 손으로 도시를 부수며 삶을 영위해야 한다. 곧 물에 잠길 도시에 남은 사람들, 그날을 촉구하는 일로 돈을 벌고 먹고 마시는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리는가.

    산밍과 셴홍 두 인물은 결국 찾던 이들과 마주한다. 산밍의 아내는 오빠의 빚을 갚기 위해 다른 남자와 살고 있었다. 산밍은 돈을 주면 아내를 놓아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원래 일터로 돌아간다. 한편 셴홍은 남편을 마주한다. 그녀는 남편의 일터에 찾아가 보고 연락을 시도해 보지만 여지없이 실패한다.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것을 확신할 즈음 자가용을 타고 나타난 남편에게 그녀는 이혼을 요구한다. 이들은 잠시 머물렀던 샨사를 떠날 것이다. 어떤 이는 일상으로, 어떤 이는 새로운 곳으로. 관객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이다. 도시민들이 도시를 상실하는 한편 산밍은 아내와 함께 살기 위해, 셴홍은 남편과 헤어지기 위해 샨사라는 장소에 닿았다 떠나간다. 두 인물의 앞에 새로운 길이 지금 펼쳐지고 있는 것이라면, 언젠가 댐이 도시를 완전히 집어삼키더라도 이들은 돌아오지 않으리라.

    결국 인물들은 이곳을 떠난다. 긴 시간 인물은 사라져가는 것들을 응시한다. 어떤 선택을 하고는 도시를 떠날 결심을 한다. 함께 존재하나 결코 서로를 눈치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러나 산밍과 셴홍이 출항하는 배를 타더라도, 영화는 샨사를 떠나지 않는다. 영화에서 만났다 헤어지는 많은 이들의 터전은 물에 잠기리라. 그러나 먼 발치의 능선과 뿌연 안개를 보았던 이들은 잊지 못할 것이다. 깊은 댐의 수면을 보며 그 밑에 도시가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영원히 떠올릴 것이다. 터전을 제 손으로 철거한 것은 분명 모욕적이거나 수치스러운 경험일지 모른다. 동시에 먼지를 뒤집어쓰며 내 집의 살과 뼈를 부순 이들이 사라진 무엇에 대해 잊을 수 있을 리 없다. 결국 공간이 사라지고 장소를 잃어버리더라도 어떤 것들은 어렵사리 자리를 지킨다. 눈을 형형히 뜨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