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의이해 과목을 수강 신청하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 ‘학교’라는 곳에 단 한 순간이라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던 분은 거의 없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지금도 ‘학교’에 다니고 계실지도 모르죠. 학교만큼 배움과 일, 사랑, 하물며 갈등과 혐오, 폭력까지 만연하게 존재하는 곳이 또 있을까요. 지금도 기억나는 감사한 선생님, 지나고 보니 부당했던 시스템, 여전히 생각나 나를 괴롭게 하는 동창. 공간의 특수성이 그 어디보다 짙게 드러나는 곳이 학교, 곧 교육 현장입니다. 교사의 덕목, 학생의 덕목, 학교에서 지켜야 할 것들 같은 무수히 많은 명시적인 원칙과 규칙, 그리고 ‘그래도 학교에선 이러면 안 되지.’, ‘그래도 학굔데 이래야 하지 않겠어?’와 같은 암묵적인 지침까지. 그런데 학교는 세상을 살아가며 굉장히 어릴 때부터 꼭 한 번은 거치는 곳이라는 점에서 그 보편성 또한 남다릅니다. 학교는 청소년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되기도 하고,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에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매체에서 다루는 학교 그 자체에 독자적인 관심을 가져본 적은 드물 것입니다. 우리에게 숨 쉬듯 당연한 소재이기 때문이겠죠. 꼭 고리타분한 ‘교육 영화’라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교육’의 대표적인 정의 중 한 가지는 ‘모종의 가치 있는 것이 도덕적으로 온당한 방식으로 의도적으로 전달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만 ‘교육’의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죠. 교육의 주체는 크게 학교, 교사, 학생인데요. 여러분은 어느 때라도 교사가 될 수도, 학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꼭 교과목 지식을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더라도, 오늘도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귀감이 될 수도, 뜻하지 않게 배움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작은 고민에서 시작했던 기획이, 뜻을 같이 해준 다른 위원들의 도움을 얻어,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은 영화들과 함께 여러분께 소개될 수 있어 기쁩니다. 이화의 작은 영화관에서 또 다른 ‘가치 있는 것’을 얻어가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본 기획 상영의 제목은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교직 과목명 ‘교육현장의이해(학수번호: 35918)’를 인용하였음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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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표
5월 9일 (화) 오후 2시: 죽은 시인의 사회 │ 피터 위어 │ 1989 │ 128' │ 미국 오후 5시: 세 얼간이 │ 라지쿠마르 히라니 │ 2009 | 141'│ 인도
5월 10일 (수) 오후 2시: 위플래쉬 │ 데이미언 셔젤 │ 2014 │106'│ 미국 오후 5시: 4등 │ 정지우 │ 2015 │116'│ 대한민국
5월 11일 (목) 오후 2시: 코러스 │ 크리스토퍼 파라티에 │ 2004 │ 97' │ 프랑스, 스위스, 독일 오후 5시: 클래스 │ 로랑 캉테 │ 2008 │ 129'│ 프랑스
5월 12일 (금) 오후 2시: 책상 서랍 속의 동화 │ 장예모 │ 1999 │106' │ 중국 오후 5시: 학교 가는 길 │ 김정인 │ 2020 │ 101' │ 대한민국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343호, 모든 상영은 무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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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얼간이
라지쿠마르 히라니 │ 2009 │ 141'│ 인도
화요일 5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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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
정지우 │ 2015 │116'│ 대한민국
수요일 5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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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위어 │ 1989 │ 128' │ 미국
화요일 2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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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튼 고등학교에서 시인은 살아남을 수 없다. 이 영화가 펼쳐지는 배경인 웰튼 고등학교는 아이비리그에 많은 학생들을 보내는 명문고이지만, 교장 놀란을 필두로 매우 엄격하고 보수적이다. 영어 수업 시간에 시를 '읽는' 방법 대신 시를 '평가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으로 우리는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곳에 등장한 키팅 선생은 이러한 영어 수업의 분위기를 바꾼다. 시를 평가하는 방법이 적혀 있는 서론을 찢고, 카르페 디엠을 외치며 자유분방한 수업을 한다. 획일화된 수업을 비판하고, 아이들의 자유 의지를 존중한다. 키팅 선생이 속해 있었던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클럽은 키팅의 제자들에 의해 그대로 재결성되게 된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공부에 지친 아이들이 즐겁게 쉴 수 있는 자리였지만, 그 존재가 학교에 알려지게 되면서 각종 위기를 맞는다. 찰리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알리기 위해 불건전한 애인 구함식의 광고를 만들어 엉덩이를 맞게 된다. 또한, 닐은 강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몰래 연극 연습을 하다가 들킨 후 크게 혼이 나게 된다. 결국 닐은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 자신의 미래를 강요하는 부모 때문에 자살을 하게 된다. 이 자살의 기원은 어디인가? 닐의 부모와 교장은 이 자살을 묻기 위해 희생양으로 키팅을 지목한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닐에게 쓸데없는 관심을 불어넣은 탓,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불량 클럽을 만들고 이끈 탓. 수없이 많은 탓을 키팅에게 넘기며 학생들에게 키팅의 해고를 강요하는 서류에 싸인을 하게 만든다. 결국 그는 키팅을 이 학교에서 몰아내지만, 키팅의 가르침을 기억하는 학생들은 외친다. 오 캡틴, 마이 캡틴! 이라고. 수없이 많은 영화들에서 오마주되었고, 아이들의 '성장 영화' 하면 단연코 가장 유명한 영화로 지목되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이 죽은 시인의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떤 교육이 학생들을 위한 교육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교육을 원하는 키팅을 통하여 권위주의적이고 획일화된 교육을 원하는 교장을 강하게 비판한다. 또한, 교장 측에 힘을 실어주고 아이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교육하려고 하는 부모 역시도 이 영화에서 비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큰 축이다. 또한 이 영화는 비록 1990년에 개봉된 영화이지만, 2023년 우리나라 교육 사회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대학이라는 한 목표만을 위해서 달려가는 획일화된 우리나라 교육 역시도 수많은 시인들을 죽이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겪어본 적 없는 교육을 보여 준 키팅 선생님께 영화가 끝날 때 함께 인사하게 된다. 다시, 오 캡틴, 마이 캡틴! 이라고.
글쓴이 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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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지쿠마르 히라니 │ 2009 │ 141'│ 인도
화요일 5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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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우드에서의 성공 법칙 1. 신명 나는 음악이 있을 것 2. 군무가 있을 것. <세 얼간이>는 ‘모든 것이 잘될 거다’라는 익숙하고 쉬운 노래, 대사와 신나는 노래들에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 전반에 깔려있고 란초가 경계하는 경쟁사회와 이를 장려하는 교육 현장은 우리를 씁쓸하게 만든다. 임페리얼 공과 대학(ICE)은 인도 최고의 대학이다. 이 대학에서 32년간 총장을 역임해온 비루 교수는 신입생들에게 인생은 레이스라며 일장 연설을 한다. 레이스. 즉, ICE에 입학한 학생들은 대개 비슷한 인생의 목표가 있고(다른 걸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더라도 공학자로 재설정해야만 하고), 이들은 출발선이 다를 때도 있으나(총장이 숫자 0을 지워가며 경제적 차이를 얘기한 것을 생각해 보라) 이미 흰 선으로 경로가 정해진 빨간 트랙 위를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대기업 고위직, 단풍나무 마룻바닥, 수영장 딸린 집, 람보르기니. 만세!). 하지만 얼간이 란초의 생각은 다르다. 란초는 현 교육 체계에 순응하지 않고 늘 물음표를 던진다. 정의를 달달 외우는 것이 중요한가요? A 대신 B를 사용하면 안 되는 건가요? 왜 그렇게까지 학생을 몰아넣죠? 학생의 결점을 극대화하고 까내려야 하나요? 이미 레이스의 중반까지 온 상황에서, 그 트랙을 만든 사람에게 이러한 질문들은 이상하다. 혼란스럽고 적절하지 않다. 어떠한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압박을 받은 학생들은 트랙에서 이탈한다. 달리기 경주에서는 탈락에 불과하지만, 인생이라는 레이스에서는 죽음이다. 인도에서 자살하는 학생의 절대적 수는 압도적이고 비율 또한 증가한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관객인 우리는 영화 속 교육자들을 생경하게 바라본다.
대학 시절부터 줄곧, 란초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열정을 좇으라 일장 연설을 해왔다. 공학자보다는 야생 동물을 찍고 싶었던 파르한은 카메라를 들었고, 다수의 신에게 의존했던 라주는 자신의 노력과 변화를 믿고 독립적인 삶을 살게 된다. 란초 또한 경쟁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되었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발명하고 그림을 그리고 뛰어다닌다. 교육자로서 비루 교수와 란초는 대비될 것이다. 물론 교육자는 정의를 가르쳐야 하고 B보다는 A를 고집하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결국 학생은 과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 교육자는 학생이 이를 할 수 있도록 충분한 도움을 제공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글쓴이 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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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최고의 예술가를 만드는가? 타고난 재능? 아니면 끊임없는 노력? 물론 이 둘도 필요하겠지만,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주인공은 플레쳐로, 아무리 밟아도 꺾이지 않는 근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앤드류가 나타난다.
재즈 음악으로는 최고 명문인 뉴욕 셰이퍼 음악학교의 신입생 앤드류는 열망으로 가득했다. 드럼 연주자 중 최고가 되어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겠다는 야망이 넘쳐흘렀다. 수업이 끝난 후 몇 시간이고 드럼 연습을 했고, 친구들이 뭐라고 해도 당당했다. 나는 꼭 최고가 될 거니까. 언제나 단단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래서 플레쳐의 눈에 띄었다. 손에 꼽히는 지휘자 겸 교수인 플레쳐는 교내 스튜디오 밴드를 이끌고 있었고, 이 밴드는 학생들에게 꿈의 자리였다. 스튜디오 밴드에 들어가서 플레쳐에게 교육을 받으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앤드류의 마음도 들떴다. 하지만 플레쳐의 교육방식은 뭔가 이상했다.
하나, 둘, 셋, 넷, 네가 지금 서둘렀어, 아니면 질질 끌었어? 다시. 하나, 둘, 셋, 넷, 이번에는? 앤드류가 자신의 박자에 맞춰 드럼을 연주하지 못하자 플레쳐는 자신의 박자에 맞춰 앤드류의 뺨을 때린다. 하나, 둘, 셋, 넷, 내가 지금 서둘렀어, 아니면 질질 끌었어? 생각도 못한 광경에 앤드류는 당황했지만, 이는 서막에 불과했다.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막말은 숨 쉬듯 자연스러웠고 자신의 마음에 들게 연주할 때까지 몇 시간이고 다그쳐 드럼이 피로 물드는 것도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가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플레쳐는 원래 그래, 어쨌든 최고잖아. 다들 이상한 교육자의 이상한 교육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앤드류도 마찬가지였다.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자신이 최고의 드럼 연주자가 되는 데 방해가 될 거라는 막말을 하며 여자친구를 차버렸고,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 앞에서는 경멸 가득한 말만 내뱉었으며, 자신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플레쳐에 대한 반항심으로 가득찼다. 그래서,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무대에 올랐다. 드럼 스틱을 잡고, 손과 얼굴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도 드럼 연주를 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끝을 모르고 달렸다.
영화는 서로에게 적대감을 잔뜩 품고 같은 무대에 오른 플레쳐와 앤드류를 비추며 끝난다. 적대감을 양분 삼아 악으로 깡으로 무대를 장악한 앤드류와 초반엔 무대를 마음대로 휘젓는 앤드류에 화를 내다 점차 자신이 꿈꿔왔던 학생을 찾았다는 흥분감으로 물든 플레쳐의 얼굴을 비추며 끝이 난다. 어쩌면 해피엔딩일지도 모르겠다. 앤드류는 그 대단한 지도자의 눈에 띄었고, 플레쳐는 그렇게 찾고 싶던 학생을 찾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존재한다. 무엇이 최고의 예술가를 만드는가? 어떤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인가? 플레쳐는 훌륭한 지도자인가? 앤드류의 최고 기량을 끌어내는 데 플레쳐가 기여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데도 그의 방식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건강이 다 망가져도 연주만을 생각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과 단절하게 하며 설렘이 아니라 오기로 무대에 서게 만드는 것, 자신의 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학생이 분명 존재함에도 외면하는 것, 무엇보다 언제나 지도자에게 반항하도록 이끄는 것이 올바른 교육은 아닐 테니 말이다.
글쓴이 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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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 2015 │116'│ 대한민국
수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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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 수영 선수 두 명이 있습니다. 두 선수 모두 수영에 재질이 있습니다. 한 명은 매 대회에서 기록을 경신하고 다른 한 명은 만년 4등이지만요. 하지만 두 선수에게는 그를 때려서라도 가르치려는 코치가 있습니다. 이때 두 선수의 영법은, 수영은 어떻게 될까요?
광수는 전도유망한 수영 선수였다. 대회만 나가면 신기록을 세우고 1등을 거머쥐었다. 1등을 당연시하는 자만심에 그는 훈련 전날에도 술을 마시고 노름에 빠져 합숙에도 빠져버린다. ‘맞을 짓을 했으니’ 코치에게 허벅지가 시퍼런 멍으로 가득할 때까지 맞고 기자에게도 외면당한다. 그렇게 수영 선수를 그만둔 광수는 어느날 자신처럼 수영에 재질이 있지만 만년 4등인 준호를 만난다.
준호의 엄마 정애는 대회만 나가면 4등에만 위치하는 아들이 꼴도 보기 싫다. 수영을 좋아하는 준호보다도 더 수영하는 준호를 위하고 코치를 찾아 교회에도 나갔다. 그러니까 준호는 엄마인 자신의 노력만큼 성적을 내야만 했다. 그렇기에 엄마는 준호가 맞아도 코치 앞으로 차를 태워 보냈다. 일단은 효과가 있는 것 같으니까. 어떻게든 1등으로 만들어준다고 했으니까.
아동을 향한 교육자의 이러한 폭력은 재생산될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효과를 내지도 못한다. “맞아야 정신 차린다.”라는 말을 싫어했던 광수는 똑같은 말을 읊으며 선수들을 가르치고 때린다. 이러한 폭력은 광수에서 준호에게, 다시 준호에서 기호에게 이어진다. 또, 준호가 수영을 관둔 후에 엄마의 집착은 동생 기호에게로 이어졌고, 준호는 양육자의 무시 앞에 놓인다. <4등>은 두 시간 내내 폭력은 어떠한 이유 앞에서도, 목표 앞에서도 정당화되지 않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전히 준호는 수영을 좋아한다. 수경 너머로 보이는 물 밑의 풍경은 아름답고 자유롭다. 레인의 모두가 앞을 향해 쏘아가는 것도 아름답지만, 빛을 향해 헤엄치고 레인을 넘나드는 준호의 모습은 더욱 아름답다. 물 가장 깊숙한 곳에서 빛을 어루만지는 준호는 자신이 수영을 좋아한다는 것을, 자유로운 수영과 자신이 정한 목표를 깨닫는다. 준호는 대회에서 더 자유롭게 수영한다. 준호는 드디어 1등이다.
1등 하면 어떠냐는 준호의 질문에 1등을 하던 형의 “좋지.”라는 간단한 대답. 준호의 목표는 이 대답에서 시작되었다고 봐도 좋다. 열망이 없어 1등 하기 글러 먹었다는 광수의 평과 다르게 준호가 열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열망은 준호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 어린이에게로 이어진다. 어른의 간섭과 강요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어린이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열망이, 바로 1등을 하는 방법이다.
글쓴이 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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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떼 정상영업 합니다🚧
시네마떼끄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휴관을 끝내고 다시 문을 엽니다. 잘 지내셨나요? 다시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어 기뻐요. 오늘은 5월 8일! 벌써 대동제를 눈앞에 두고 있네요.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축제에 마음이 붕 뜨지는 않으셨는지요. 왠지 강의실 밖이 더 밝고 아름다워 보이고, 메모장에는 어느 부스에 들릴지 세운 계획이, 속으론 현금을 좀 뽑아놔야 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축제만큼이나, 축제가 오기를 기대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지요. 이번 주 정기 상영에 오실 관객분들의 얼굴이 벌써 궁금합니다. 철야상영회와 별개로 대동제 기간에도 시떼는 문을 열고 관객을 맞이하니, 잊지 말고 들러주세요! 😉
수요일에 두 번째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이화 시네마떼끄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343호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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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시네마떼끄
ewhacinemathequ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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