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편지로 돌아왔어요
오늘은 수요일! 금요일이 공휴일이니 한 주의 끝이 목전에 있네요. 평소보다 조금 짧은 한 주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지난 편지에 이어 <산책자 열병> 이야기를 들고 왔어요, 편지 맨 바닥에는 철야상영회 공지와 신청 폼도 있으니 꼭 스크롤을 끝까지 내려봐 주세요. |
|
|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 111′ | 1966
|
|
|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Medianeras
|
|
|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Cléo de 5 à 7
|
|
|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 111′ | 1966 |
|
|
사진가는 새로운 이미지를 얻고자 공원에 갔다가 두 남녀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는다. 여자가 따라와 필름을 달라고 하자 그는 가짜 필름을 넘겨주고 사진을 인화한다. 인화한 사진 속에서 그는 총을 든 남자와, 숲 한쪽 있는 시신과 같은 이미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다시 그 장소에 가니 시신이 누워있다. 스튜디오로 돌아오니 누군가 침입해서 모든 필름과 확대한 사진을 훔친다.
<욕망>이 주는 이미지의 충격은 시작과 끝에 있는 광대의 출현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마임으로 공 없는 테니스 시합을 하는 장면이 있다. 사진가인 토마스는 이것을 보다가 자신 쪽으로 날아온 공은 주워달라고 하는 광대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있지도 않은 공을 던진다. 그리고 광대들은 다시 마임으로 시합을 계속한다. 이 장면은 사진가로서 토마스의 성향과 사진 자체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마련해 준다. 토마스는 쾌락적인 태도와 솔직하면서 자연스러운 사진을 추구한다. 여기에서 사진 자체에 관한 질문이 발생한다. 있는 그대로를 찍어야 하는가? 피사체의 내부를 드러내야 하는가? 연출하고 조합해서 어떤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는가? 사진가로서 토마스는 새로운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찍기 위해 피사체에게 알리지 않고 은밀하게 촬영하는 방식을 택한다.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지는 그의 일상적 작업은 연출된 패션 사진이지만, 그가 가진 사진 촬영의 근본적 욕망은 '있는 사물 그 자체'를 찍는 것이다.
이처럼 아무도 모르게 사진을 찍고 그것을 홀로 보는 일은 일종의 관음적 행위이며 권력 행위를 상징한다. 이는 곧 타인의 행위를 엿보는 모든 행위를 총칭하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타인의 사적 영역을 엿보는 것이 넓은 의미의 관음이다. 물론 좁은 의미로는 성도착적인 정신적 문제로 바라보기도 한다. 타인의 정사 장면을 보고 홀로 자위를 한다던가 하는 그런 행위 말이다. 심각한 과음증 중 연인이나 부부관계에서 다른 이성과 정사를 하는 장면을 몰래 보면서 성적 만족에 이른다는 사례도 있다. 몰래 본다는 건 권력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행위다. 건축가 유현준에 의하면 공간 내에서 앉아있는 사람이 높은 서열을 가진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관찰 할 수 있는 책상의 위치가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더불어 권력의 높이와 거주지역의 높이가 비례한다는 거다. 높은 곳에서 조망하는 행위가 그 권력 행위라는 거다.
어쩌면 영화를 보는 행위 그 자체도 이런 관음의 일종이고 사진을 보는 행위도 그런 속성을 가질지도 모른다. 예컨대 알프레드 히치콕은 1957년작 <이창>에서, 다리를 다친 주인공이 창문을 통해 이웃의 일상을 지켜보다가 사건에 연루된다는 이야기를 통해 관음과 이미지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영화 만드는 이들이 분명히 인식하듯이, 어느 순간 영화 보기는 단순히 스펙터클한 이미지를 보는 일을 넘어 일종의 권력이 행사되는 순간이 될 수 있다. 비밀리에 하건 그렇지 않건 사진을 찍는 행위가 토마스의 경우처럼 한 순간 피사체에 비해 높은 자리에 오르는 수단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영화는 토마스의 스튜디오 내부를 찍는 숏들에서 상승과 하강의 이동을 통해 이러한 이미지의 권력을 은유하기도 한다.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이전 직업이 건축가였다는 사실은 영화 내의 공간과 사진이라는 상징, 그를 통한 서사를 설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글쓴이 오리 |
|
|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Medianeras
|
|
|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사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로 영화는 시작한다. 마틴과 마리아나는 같은 도시에 사는 30대 싱글이다. 이 도시에서 건물의 이름, 층, 알파벳은 계급이나 마찬가지. 건물의 목적이나 건축 양식이 분별없이 뒤섞인 실패한 도시계획의 산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들은 살아간다. 마틴은 도시에 나갈 때면 5.8kg의 생존 배낭을 맨다. 웹 디자이너로 일하는 그는 인터넷 속에 제 세상을 두고 그곳을 활보한다. 그는 이 때문에 도시에서의 삶을 잃어버렸고,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마틴은 사진으로 제 공포를 극복하고자 한다. 창이 번쩍이고 각지고, 높은 건물들과 그에 응하지 못하는 국적 불명의 낡고 빛을 잃은 건물들. 마틴이 찍은 사진을 보는 관객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사는 군중의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게 된다.
마리아나 역시 도시가 두렵다. 마리아나에게 ‘월리를 찾아라’를 시작으로 군중공포증을 앓게 됐다. 도시 그림 어디를 봐도 월리를 찾을 수 없었으니까. 마리아나는 지금까지도 군중을 두려워하며 도시 곳곳에서 월리를 찾거나, 직접 월리를 숨겨두려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실패하기 일쑤다. 두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이 도시의 인물들은 모두 일종의 단절을 겪고 있다. 다른 나라의 언어로만 말하고 신경과민을 겪는 여자나, 상담사지만 자기 병에 내린 처방이라고는 수영뿐인 남자가 그렇다. 이들은 서로 나름의 관계를 이루려고 시도하지만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도시에 적응하지 못한다.
영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의 원제는‘Medianeras’로, 측벽(側壁)을 뜻한다. 주인공 마리아나의 말을 나열하자면 이렇다. 측벽: 쓸모없음, 이유 없음, 정면도, 후면도 아님, 변덕, 균열, 임기응변. 부정적인 서술이 줄을 잇지만, 영화에서 측벽은 무엇보다도 큰 힘을 가진 존재로 묘사된다. 가상공간에서 함께하지만 고독하고, 전깃줄이 우리를 이어지는 동시에 갈라놓으며, 아름다운 언어 대신 거친 문자를 주고받는 이 시대에 유일히 소통의 가능성을 품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측벽이다.
두 주인공은 도시 공간에서 몇 번이나 스쳐 지나간다. 단순히 스쳐 지나가기만 하던가? 마틴은 마리아나가 디자인한 쇼윈도를 응시한다. 쇼윈도를 바라보는 행위는 마리아나에게는 자신을 바라보는 행위나 다름없으니 그들은 이미 눈을 마주친 적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서로를 눈치채는 일 없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변화는 측벽에 창을 낸 후 시작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측벽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고립된 공간에 한 줄기 빛을 내리는 것 역시 측벽에 낸 창문이다. (비록 불법이긴 해도) 두 주인공은 마침내 도시공간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측벽에 낸 창은 작고 불규칙하고 무책임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이 도시에 사는 군중의 모습이 아닐까. 누군가 ‘모든 것에는 금이 가 있고, 빛은 그곳으로 들어온다*’고 했던가. 도시를 길게 가로지르는 균열이나 다름없던 측벽 덕에 세상과 이어진 두 사람은 도시로 나온다. 그리고 마침내, 마리아나는 월리를 찾은 듯하다.
*Leonard Cohen <Anthem> 가사 중.
글쓴이 견지 |
|
|
영화의 형태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영화의 형태는 감독이 의도하는 바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부분 영화가 비치는 스크린의 직사각형 모양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화 <콜럼버스>는 그렇게 단순한 스크린 모양이 아닌 하나의 건축물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영화는 제목이 되는 미국 오하이오의 작은 도시인 콜럼버스를 배경으로 한다. 건축학 교수인 아버지의 건강상 문제로 콜럼버스에 오게 된 진과 마약 중독에서 재활 중인 어머니를 지키기 위하여 콜럼버스를 떠나지 못하는 케이시는 모더니즘 건축물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서로 소통하고 이해한다. 단순히 가이드처럼 건축물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 건축물에 엮인 그들의 이야기 역시 서로에게 들려준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것을 완전히 듣지는 못한다. 대신, 공백과 음악만이 대사가 들어갈 자리를 메운다. 그러나 이것이 이야기에서 관객을 격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건축물과 얽혀 있는 추억, 상처들이 관객을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고정한다.
건축물은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영화를 보면, 건축물에 초점이 담긴 채로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이 다수 있다. 이 장면은 영상보다는 잘 정립된 정물화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건축물에 대한 제각각의 애정을 가지고 있고, 그 결과로 등장인물들과 건축물은 상호작용한다. 타 영화에서 드러나는 건축물의 용도인 '등장인물의 기억과 추억을 건축물에 덧씌우기'가 아닌, 건축물은 인간에게, 인간은 건축물에 제 추억을 덮어씌운다. 이 건축물들이 모더니즘 건축물의 메카인 콜럼버스에 있는 것도 흥미롭다.
결국 이러한 점을 종합하면 관객들이 왜 이 영화를 건축물로 느끼는가에 대한 해답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영화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갔을 때 우리는 진과 케이시를 만나고, 다시 한 걸음 들어갔을 때 건축물에 쌓인 추억을 보고, 마지막으로 건물 밖으로 나오면서 우리는 우리의 추억이 쌓인 건축물들을 조금 다른 방법으로 마주할 수 있다. <콜럼버스>는 "건물을 통해서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이 건축가들의 역할이다"라고 말한 진의 말을 그대로 따른다. 관객들 역시도 개인이 추억이 쌓여 있는 건축물 사이를 산책하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건축물과 같은 영화의 역할을 착실히 수행한다.
글쓴이 푸들 |
|
|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Cléo de 5 à 7
|
|
|
이 영화는 꽉 차 있다. 5시부터 7시라는 시간을 부분별로 쪼개 클레오를 좇는 카메라는 한시도 쉬지 않는다.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브이로그에 가깝지 않나, 라는 생각을 우리에게 쥐여 준다. 오로지 클레오만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닌, 도시의 배경과 클레오가 움직이는 주변 역시도 빠트리지 않고 응시하면서 관객에게 소란을 선물한다. 그러나 클레오는 역설적으로 가장 '죽음'에 가깝다. 타로카드에서도 죽음, 화요일에는 새 옷을 입으면 안 되고, 클레오가 선택한 건 검은색 털모자. 이러한 오늘의 사소한 사항에도 클레오는 집중한다. 죽음에 대한 클레오의 두려움과 모순되는 소란스러움이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삐걱이며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클레오의 불안은 지속된다.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면서도, 함께 일하는 음악 파트너들과 만나면서도 감정은 진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편안함을 줘야 하는 집에서조차 그녀는 불안해하며 관객의 감정까지 움직이게 만든다. 그렇기에 그녀는 다시 외출한다. 불행을 상징하는 새로 산 모자와 까만 옷까지 입은 상태다. 그녀는 친구를 만나고, 무성 영화를 보고,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한다. 복잡한 그녀의 머릿속은 그녀가 본 무성 영화 속에서도 은유로 쓰이며, 우연히 만난 군인과의 대조적인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클레오는 변화한다. 시간에 따라서 주위 환경이 달라지는 만큼 클레오의 감정도 변화한다. 불안해하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던 클레오는 산책을 하며 시선을 자신에게서 주변으로 돌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 클레오는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 된다. 남에게 보이는 나 자신이 아닌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인식하는 방식을 알게 되는 것이다.
복잡하고 불안한 두 시간을 견뎌내며 많이 변한 클레오에게는 포상처럼 7시에 이루어지는 암 검사에서 지금처럼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이 돌아온다. 클레오를 괴롭히던 불안은 이제 사라지고,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던 동요는 결국 '불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도록 이끌게 된다. 확실히 매력적인 영화임이 분명하다.
글쓴이 푸들 |
|
|
📮오늘은 무슨 날?
이화 시네마떼끄 철야상영회 신청하는 날! 오늘밤 ✨9시💥 철야상영회 신청이 시작됩니다. 9시 정각에 맞추어 신청폼을 제출해주시면 신청 완료! 9시 이전에 제출된 폼은 인정되지 않아요. 간식 구매 수요조사도 겸하고 있는데요. 맛있는 간식과 시원한 음료 준비해둘게요. 옛날과자 뷔페라니 생소하시지요? 마카로니, 앵두콘 등 인기 옛날과자를 여러 종류 구비해둘 예정입니다. 용기 하나를 배부해드리며 쉬는 시간마다 원하는 만큼 리필해 드려요. 홍콩 영화에 걸맞는 밀크티도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관련 공지는 오늘 뉴스레터 밑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다음 주부터는 정기상영이 재개됩니다. 다가온 여름을 맞아, 시네마떼끄 상영관도 단장하고 관객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스승의 날을 <교육현장의이해(35918)>과 함께 하는 것은 어떠신가요? 관객분들을 위한 이벤트도 준비되어 있어요. 인스타그램 등에 관람 인증을 올린 후 구글 폼을 제출해주시면, 추첨을 통해 아트하우스 모모 예매권을 드려요.
한편 전주에서는 영화제가 한창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전주에 들르시나요? 운영위원 몇몇은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몇 편과 폐막식을 함께 보게 되어서 기대에 차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영화제 방문기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함께해요. 사설이 길었네요.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할까 합니다. 오늘도 편지와 함께 좋은 하루 보내세요!
|
|
|
2023 대동제 철야상영회
-눈에는 눈: 교차하는 시선과 홍콩 로망스 |
|
|
🔗2023 이화시네마떼끄 대동제 철야상영회 신청폼 |
|
|
⏰일시: 2023년 5월 11일 (목) 오후 10시 40분 ~ 5월 12일 (금) 오전 4시 33분
[*추가상영: 4시 45분 ~ 6시 15분]
**정식 상영 종료 후 교통편이 여의치 않은 분들을 위해 추가 상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정식 상영 종료 후 추가 상영 전까지 자유롭게 퇴장 가능합니다.
🎬장소: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문화관 343호 이화 시네마떼끄
🍿본 프로그램 상영작 첨밀밀 1996 | 진가신 | 118' 10:40-12:38 휴식 (17분) 금지옥엽 1994 | 진가신 | 107' 12:55-2:42 휴식 (18분) 연지구 1987 | 관금붕 | 93' 3:00-4:33
추가 상영작 친니친니 안나마덕련나 1997 | 해중문 1시간 30분 4:45-6:15
✔️신청 폼의 간식 수요조사는 실 판매와 다를 수 있습니다. 가격 및 품목은 소폭 변동될 수 있으며 간식 구매는 현장에서 계좌이체로 이루어집니다.
✔️본 행사는 이화여자대학교 재(휴)학생을 대상으로 합니다.
✔️철야상영회에 관해 문의 사항이 있으신 경우 인스타그램으로 문의해주세요.
이화 시네마떼끄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343호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
|
|
이화 시네마떼끄
ewhacinematheque@gmail.com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