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2시

   오랫동안 앓아온 신장 결석으로 죽음을 앞둔 분미. 여생을 보내기 위해 고향을 찾은 분미는 그곳에서 오래전 죽은 부인과 종적을 감춰버린 아들을 유령의 모습으로 마주한다. 그리고 이들은 무성한 숲을 지나 동굴을 향한 여정을 떠난다. 그 여정의 끝에서 분미는 자신의 전생을 떠올리며 또 다른 삶이 펼쳐질 죽음을 맞이하고, 남겨진 사람들은 다시 그들의 삶으로 돌아간다.
   영화 <엉클 분미>(2010)는 불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전생’과 ‘기억’을 주제로 삼고 있다. 원제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는 이러한 주제 의식을 더욱 공고히 한다. 영화는 진행되는 내내 관객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만든다. 가령 영화 속 살아있는 현실의 인물들이 고개를 돌리면 이들 옆자리에 앉아 있는 이가 유령인 상황임에도(심지어 아들은 원숭이의 모습으로 나타남에도)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메기가 말을 걸면 사람 목소리가 들리지만 아무도 신기해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긴다. 환상과 신화, 상상과 현실이 섞인 이 영화는 보는 동안에는 당혹스럽지만 보고 난 뒤엔 영혼과 전생과 만물에 불성(佛性)이 있음을 논리적 이해보다는 직관적으로 느끼도록 한다.
   이렇듯, 영혼의 존재를 당연시하는 영화 속 세계관엔 범신론적 및 윤회론적 사상이 깃들어 있다. 영화에서 전생은 단순히 태어나기 이전의 삶을 뜻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의 반복 중 일부이며, 인간은 물론 동물과 식물을 아우르는 생명의 의미이자, 보편적이면서 우주적인 범위의 삶을 뜻한다. 대부분의 인간이 그러하듯, 이러한 전생을 기억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심지어 전생을 기억하는 분미도 전생의 구체적인 내용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 흔적만을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을 뿐, 우리는 분미의 전생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여전히 가진 채 영화는 끝이 난다. 그렇다면 도대체 분미의 전생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위라세타쿤 감독은 말한다. 

   “중요한 것은 전생 자체가 아니라 전생을 어떻게 기억하는가이다. 애초에 어떻게 전생을 기억하는가를 테마로 삼았으며 전생은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다. 공주나 물고기일 수도, 군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사운드로만 등장하고 보이지 않은 벌레가 그의 전생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화 자체가 엉클 분미의 전생이었을 수도 있다.”
 감독의 이러한 대답은 우리가 적어도 이 영화를 다룰 때만큼은, 내러티브 속 당위성을 찾아내려고 하거나 개연성이라는 잣대 위에서 난도질하려는 태도 자체가 난센스일지도 모른다는 걸 암시한다. 중첩되는 시간의 모호함 속 존재하는 모든 것이 생(生)과 사(死)의 경계와 인간과 동물의 구분을 지운 채 ‘영혼’이라는 평등한 관계에서 재정립되는 과정. 이를 찬찬히 바라보고 영화가 주는 감각을 온전히 느껴보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 1993 | 101’

   동양과 서양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흑백논리 위에 성립하는 오리엔탈리즘. 이는 분명한 지리적 폭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쪽’, ‘우리’와 ‘저쪽’, ‘그들’ 사이에 인식론적이자 존재론적인 지리학상의 경계를 설정하고 전자의 특권적인 장으로부터 후자를 일정한 담론 질서 속에 가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오리엔탈리즘은 제국주의적 심상 지리를 토대로 형성된다.*
   그럼, 반대로 오리엔탈리즘은 어떤 방식으로 해체되는가? 영화는 바로 그 해체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법하다. 넓게 보면 오리엔탈리즘의 해체를 넘어 여성과 남성, 가해자와 피해자 등의 이분법적 사고 자체에 반기를 드는 것으로도 보이는 영화 <M. 버터플라이>(1993). 나비로 지칭되는 자를 확정적으로 표기하지 않은 M. 의 의미는 상당히 중의적이며 영화를 관통하는 제목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르네가 아닌 송에 자신을 투영시켜 혹은 감정이입 해 영화를 보지만, M. 이 마담(madame)인지 무슈(monsieur)인지 하나로 결정짓고 싶어 하는 우리의 무의식적인 이분법적 사고는 르네와 닮아보기도 한다. 매 순간 르네와 송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가는 인간이자 우리. 당신들은 어느 경계선에 서 있는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에 파생되는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1964년 베이징, 프랑스 대사관 회계사로 일하는 르네 갈리마드는 중극 경극 ‘나비 부인’을 보러 갔다가 송 릴링을 만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연인 사이가 된다. 그러나, 송은 자신이 여자인 줄 아는 르네와의 관계를 이용하여 그에게서 국가 기밀을 빼내고 중국 공산당의 스파이 활동을 한다. 결국, 르네는 송과 함께 간첩 혐의로 발각되어 체포되고 법정에 등장한 송을 보고 나서야 그가 줄곧 남자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끝내 르네는 감옥에서 나비부인 분장을 한 채 자결을 택하며 영화는 막이 내린다. 
   먼저, 우리는 이 영화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여태까지 동양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전 영화들의 모습이 어떠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 초반부, 송은 르네에게 말한다. “당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환상 아닌가요? 순종적인 동양 여성과 잔인한 백인 남성. 서양 남자 때문에 동양 여자가 자살하면 그것은 아름답다고 보는군요.” 서양에서 동양 여성을 어떻게 소비해 왔는가를 직관적으로 꼬집는 송의 대사는 우리의 간지러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동시에 그의 말이 사실인 현실을 마주할 땐 뒤늦은 씁쓸함이 밀려온다. 정말 송의 말처럼, 그녀들의 비극적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게 아닌 서양 남성과의 사랑에 있어서 아름다움과 신비성을 부여하는 요소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영화 <M. 버터플라이>는 그런 전형적인 모습으로부터의 탈피를 시도한다. 
   사실 르네는 다른 영화에서 다뤄지는 서양 남성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들이 수동적으로 조작한 순종적이고 신비로운 동양 여성의 모습을 송에게 제멋대로 투영시키며 이러한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서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하고 판타지를 충족시키려 든다. 그러나 송은 이러한 서양인들의 환상을 동양의 보복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달라진다. 송이 갖는 이 역할은, 서양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만 동양은 비이성적이라는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 비롯한 공식을 처참히 무너뜨려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에서 송이 자신을 연약하고 아름다운 나비로 이미지화시키며, 르네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려는 모습이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의 해체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결국, 르네는 실상 자신이 나비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불명예스러운 삶보단 명예로운 죽음이 낫다며 자결을 택하지만, 이것이 진정 명예로운 죽음인가에 대해 의문을 남긴다. 이 죽음은 그저 현실을 거부하려는 일종의 회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르네가 오리엔탈리즘의 벽을 넘지 못하고 그 속에 갇힌 채 파멸하는 모습은 세상을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지금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영화는 이제까지 서구 중심의 오리엔탈리즘에 의해서 부당하게 평가되어 온 동양에 대한 편견을 해체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해체의 모습만 담고 있지, 그 이후의 구체적인 대안에 대해선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오리엔탈리즘의 해체 이후, 동양과 서양을 어떻게 재인식해야 하는가? 필자도 이 물음에 대해선 명확한 답변을 제시하기 어렵다. 왜곡되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지만, 우리는 이미 삶에서 무수한 것들을 접하며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가치관, 그리고 자신도 자각할 수 없는 그 안에 내재한 왜곡된 시선이 깔려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무의식적 편견을 경계하며 재인식의 방안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찾아내는 것이 이 영화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과제이자 시사점 아닐까.

*강상중,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근대 문화 비판), 이산, 1997, p.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