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노인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또 미디어는 이들을 어떻게 재현하나? 노인은 흔히 굼뜬, 냄새나는, 게으른, 말이 안 통하는, 타인에게 짐이 되는 - 심지어 욕망 없는 - 존재로 생각되고 그려진다. 남의 말을 전혀 수용하지 않는 고지식한 할아버지와 애정이란 이름 아래 무례를 범하는 할머니는 가장 뻔한 상상이다. 하지만 이게 노인의 전부는 아니다. 이들은 숫자로 규정될 때 유달리 특별하게 여겨질 뿐 여전히 세상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노인은 언제나 타자화되어 늘 자신보다 어린 이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이 역시 지루한 편견이다.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삶 속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노인을 객체로 전락시키고 무시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이들을 지겹게 따라다니는 숫자는, 그저 삶을 충실히 살아냈다는 증표일 뿐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이상한’ 노인이 등장하는 영화들을 모았다. 이 영화들 속 노인은 우리의 편견과 달리 삶의 완전한 주체가 되어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하기도, 어릴 적 공상을 실현하기도, 일상을 벗어던지기도, 사랑하는 누군가의 꿈을 대신 이뤄내기도, 직접 사랑을 쟁취하기도, 배움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 모두의 현재이자 미래인 노인이라는 존재를 투명하게 그려낸 영화들을 통해 이들 역시 당연하게 욕망하고 사랑하며, 저마다의 미래를 그리고 계획하는 존재임을 상기하고자 한다. 괄호 안에 들어갈 수식이 무궁무진함을 느끼며, 각자의 미래를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려보자.

   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은 83세의 어머니와 48세의 아들이 장장 20000km의 순례길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그들의 순례는 우리를 광활한 몽골 대초원에서부터 시작해 티베트의 장엄한 카일라스 산까지 데려간다. 삶의 우여곡절과 희로애락을 반영한 듯 여정의 모습은 험난하고 고되지만 카일라스 산으로 가기 위해 지나왔던 바이칼 호수와 고비사막, 파미르 고원의 풍경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경이롭다. 그러나 이 긴 여정 속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여행 내내 지친 기색을 내보이지 않는 83세 여성의 결연한 걸음일 것이다. 험난한 길을 가로지르면서도 ‘행복’과 ‘기적’이라는 말을 무수히 반복해서 내뱉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도록 자극한다. 
   영화는 1934년에 태어나 대학을 다닌 신여성이자 경남 진양군에서 농촌계몽운동에 힘썼던 주인공 이춘숙 할머니를 중심으로 한다. 37세에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고 자신의 꿈을 접은 채 가족을 위해 헌신한 이 여성의 꿋꿋함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이후, 그녀는 경상북도 봉화의 평화로운 산골 마을에 거주하며 고요한 삶의 황혼기를 보내던 중, 죽은 영혼들에 대한 기도를 위해 아들과 함께 카일라스 산으로 험난한 여정을 떠난다. 그녀는 얼어붙은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바이칼 호수에서 세월호 아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길에서 만난 자전거를 타고 홀로 여행하는 여행자의 안전을 걱정하기도 한다. 또한, 파미르 고원에서 마주한 가족들의 가난에 눈물을 흘리며 이 세상에 아무도 굶주리는 사람이 없길 바라며 기도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을 그때그때 기록하며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통해 보고 느낀 관찰과 감정의 문장들을 진솔하게 써 내려간다. 
   할머니는 여행 중에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따스하게 반기며 주변 세상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을 보여준다. 배움의 기회를 놓지 않으며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모습은 우리뿐 아니라 그녀를 직접 마주한 많은 여행객들에게 영감을 선사한다. 그들은 그녀를 ‘슈퍼마마‘라고 부르며 사진을 찍거나 선물을 주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들의 이러한 반응은 단순히 순례를 떠나는 한 노인의 모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가 세상을 향해 뿜어내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도전 정신, 무한한 사랑을 목격한 데서 비롯된 것 아닐까? 
   이렇듯, 영화 속에 담긴 80대 여행자의 여정을 그저 ‘노년의 도전‘이라는 단선적인 말로 치부하기엔 그녀의 모습은 노인을 넘어서서 한 인간에 대한 존경심을 느끼게끔 만든다. 텅 빈 들판에 서 있는 석상과 척박한 사막에 피어난 고독한 들꽃도 그녀의 세계에선 경이로움이다. 그녀에게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 자연을 경외하는 태도,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할 줄 아는 용기가 모두 나타난다. 이러한 모습은 하루하루 주어진 일과를 채우기에만 급급한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인간의 조건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나에게 할머니란 존재는 어떤 모습이었나? 인생의 뒤안길에서 조용히 생을 마무리하거나 혹은 가족들과 편안하게 말년을 보내는 모습인가? 이 영화 속엔 우리가 늘 생각해온 ‘할머니’는 존재하지 않는다. 꿈을 포기하고 살아왔지만 그 과정에서도 자아를 잃지 않고 생을 둘러싼 그 모든 것에 감사함과 행복을 느낄 줄 아는 한 명의 ‘인간’이 있을 뿐이다.

 

글쓴이 초코

   상처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무기력, 우울증, 소심한 성격과 파탄 난 가정, 눈앞에 아른거리는 파산까지 이 모든 게 아름다운 작품이 될 수 있을까. 딱 봐도 안 될 것 같은데 가끔 되기도 하나 보다. 한곳에 모여 서로 뒤섞이면 빛이 나는 것도 같다. 
   별 목적 없이 수영장에 간 베르트랑은 심각한 우울증을 앓으며 2년간 백수로 지내고 있는 중년 남성이다. 수십 개의 알약을 시리얼과 함께 말아먹어도 가족에게 무시당하고 뒷담을 듣는 것도 이제 익숙하다. 그렇게 딱히 의욕이랄 것도 없이 매일을 살던 그는 우연히 남성 수중 발레단 모집 공고를 마주하고, 덜컥 가입해버린다. 어차피 더 잃을 것도 없는 삶이었다.
   그 수중 발레단에서 베르트랑은 자신처럼 사회의 부서진 조각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여럿 만난다. 먼저 로랑은 가족이 엉켜버린 사람이었다.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는 로랑을 보면 잠깐 반가워하다가도 이내 폭언을 퍼부었고, 그의 하나뿐인 아들은 장애가 있었다. 사이가 좋지 않던 아내는 어느 날 그를 훌쩍 떠나버렸다. 시몽은 꿈이 멀리 있는 사람이었다. 수많은 관객 앞에서 열정적인 공연을 펼칠 날을 기다리는 로커였지만 실제로 그에게 주어지는 건 조그마한 동네 모임의 조그마한 무대였다. 이런 곳에서 그는 꿈을 펼치기는커녕 너무 시끄럽다는 평을 듣는다. 낮에는 고등학생인 딸의 학교 식당에서 일하는데 잠깐 마주치는 딸조차도 그를 썩 반기지 않는다. 마퀴스는 돈 앞에 좌절하는 사람이었다. 동네에서 수영장을 판매하는 그의 가게에는 늘 파리가 날렸다. 직원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한 지가 벌써 몇 달이 됐고 돈은 여전히 없으니 해결되는 문제가 아무것도 없었다. 티에리는 소심하고 착한 성격 때문에 이리저리 치이는 사람이었다. 수영장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용객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게 티에리는 재미난 놀림거리였다. 존과 바질도 마찬가지였다. 어딘가 이상하고 유별난 남자들이 수영장에서 만났다. 투명한 물속에서 그들의 몸과 마음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각자의 상처를 일부러 건드리다가도 다시금 서로 이해하기를 반복하던 그들의 노력은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이라는 목표가 생기며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제, 진짜 팀이 될 때가 온 것이다. 첫 대회 출전을 앞둔 그들의 노력은 비장하기보다는 차라리 웃음이 나오는 것들이다. 수영복을 맞추기 위해 중년 남성들이 단체로 도둑질을 계획한다던가 긴장된다는 팀원을 마구 때리며 정신 차리라고 따끔하게 소리를 지른다던가 하는 노력들은 어딘가 어설프고 우습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엔 깎이고 깎인 진심이 담겨 이내 물속에서 꽃을 피운다.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도 새로운 도전에 임했던 마음들이 모여 배불뚝이 아저씨들을 금메달리스트로 만들었다.
   영화는 각 등장인물을 호의적인 시선으로만 담아내지 않는다. 때때로 튀어나오는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실수들까지도 차분하게 담아낸다. 그래서 관객에게 주인공들을 응원하지 말라는 건가 싶다가도 곧 영화는 ‘그래서 뭐?’의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상처받았고, 실패했고, 그래서 뭐. 새롭게 도전하려는데 그래서 뭐, 엉뚱하고 엉성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면 그 메시지를 더욱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한 방식으로 주인공들의 다양한 면모를 솔직하게 담아내는 방법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분명 코치부터 팀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의 상처받아 불안정한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그러나 마침내 스크린에는 제각각의 상처로 완성된 완벽한 콜라주 작품이 담긴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외모가 바뀌는 것, 과거에는 수월했던 일들이 이제는 수월해지지 않는 것.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옆을 채우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한순간 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자신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순간, 생각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 영화는 그렇게 자신의 평생의 동반자, 리즈를 잃은 할아버지의 추모 과정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한순간 떠나버린 리즈를 추모하며 상실을 극복한다. 자식들은, 옆집 이웃은 리즈가 떠나 혼자가 된 제르맹을 돌보는 과정에서 리즈의 상실을 극복하려고 한다. 리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엿보인다. 스케줄표를 짜고, 매일 식사와 약을 챙기며 병원 진료까지 멋대로 잡는다. 보는 관객들과 제르맹은 모두 답답하지만, 이것은 그들이 상실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과 같다. 허나 상실은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다.
   제르맹은 리즈를 퍽 다른 방식으로 추모한다. 생전, 상대가 죽었을 때 상대가 하고 싶다고 한 일을 대신 이뤄주기로 한 부부의 약속을 제르맹은 지키기로 한다. 그 약속은 바로 춤. 현대무용을 연습해 무대에 오르고 싶단 리즈의 소망을 대신 이루어주기로 결심한 제르맹은 처음으로 춤을 추게 된다. ‘춤을 추면 당신이 함께 있다는 기분이 들어.’ 라는 제르맹의 편지 속 문구는 제르맹이 자식들과 다른 자신의 방식대로 리즈를 추모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동시에 ‘이 춤이 끝나면 당신은 어디에 있을까?’ 라는 문구에서는 결국 무대는 리즈의 상실을 극복하겠다 일컫는 제르맹의 독백과도 같다.
   과거에 이루어진, 언어를 이용한 편지와 미래로 나아가는, 비언어적 표현을 이용한 무용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리즈를 추모하며 상실을 겪은 제르맹을 위로한다. 겹겹이 쌓인 서로를 향한 우려와 위로는 결국 다시 한번 사랑으로 귀결된다. 이것이 사랑하는 당신에게 바치는 제르맹의 라스트 댄스가 비록 불완전하지만, 박수갈채를 받은 이유일 것이다.

   10년 후 자신의 모습은 어떨 것 같나요? 20년 후, 30년 후, 더 먼 훗날에는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언젠가 나 또한 노년을 겪겠지만, 사람들은 노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뉴스에 등장하는 통계적인 수치나, 낡은 편견으로 점철된 어떤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노인 말입니다. 그 각각의 개인은 나의 이웃이거나, 나의 가족이거나, 어쩌면 나의 미래일지도 모르지요.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이번 기획의 괄호 속에 들어갈 단어를 정의내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 각자의 답안이 궁금해지는군요. 시네마떼끄는 늘 답장을 환영한답니다. 🤭

   수요일에 두 번째 이야기를 들고 다시 찾아올게요. 모두들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