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돼 중동 국가 및 북아프리카로 확산된 반(反)정부 시위의 통칭. 이 아랍의 봄 여파로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에서는 오랜 기간 이어진 장기집권 체제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양탄자를 타고 아그라바 궁전 위를 나는 터번 쓴 무리와 신비롭고 오묘한 원색의 무늬 장식이 아랍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 전부라면, 아랍의 봄이 반드시 도달할 그곳으로의 여정이 쉽지는 않겠다.
  1년 전 히잡을 불태우며 거리로 나섰던 이란의 여성들과, 이들에게 지지의 목소리를 보태 목이 매달렸던 무수한 시민들을 기억하는가. 지금도 무자비한 진압을 이어가고 있는 정부와 이에 강경하게 맞서는 사람들의 행동은 머나먼 이국에 발 딛고 서 있는 우리에게도 일말의 죄의식, 혹은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좁게는 2010년 이후 아랍권의 반정부 시위를 통칭하는 말로 쓰이는 ‘아랍의 봄’은 사실 아랍 지역의 오랜 종교·여성인권·난민·역사·정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 다음 영화들을 통해 다방면의 탄압과 저항의 지난한 세월을 거쳐 온 아랍의 유구한 역사를 되짚어 보고, 아직 오지 않은 아랍의 봄을 바라본다.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아랍의 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120&cid=43667&categoryId=43667, 2023년 11월 12일 검색.

   사마와 가이스, 오마르에게. 그리고 시리아와 알레포에게. 영화 <사마에게>(2019)는 감독 와드 알-카팁이 딸 사마에게 남기는 일기이자 시리아와 알레포에게 보내는 연서이다. 2012년에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끝나지 않은 시리아 내전은 많은 것을 파괴하였다. 건물은 뼈대만 남았고 사람들의 일상은 포격 소리와 함께 지상과 지하를 반복하였다. 와드는 하잠, 사마와 함께 알레포에 남았고 카메라를 들어 모든 것을 기록했다.

   2011년,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낙서’ 시위에 강에 떠오르는 시민들의 시체로, 포격으로 답이 돌아왔을 때부터 와드는 카메라로 내전을 담아냈다. 화면은 피와 오열이 가득한 상황을 보여주면서도 여전히 시리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었다. 교실을 지하로 옮기면서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 병원이 폭격당하자 희망을 잃었어도 일상을 이어가고자 하는 사람들, 농담을 던지고 거리를 뛰어노는 아이들. 모든 것이 내려앉는 전쟁 속에서도 서로를 지탱하기 위해 어떻게든 일상을 유지하고 같이 웃으려 애쓰는 순간들을 기록했다. 이러한 기록은 전쟁의 참혹함과 저항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좇는 프로파간다 영상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전쟁의 잔혹함을 고발한다.

   와드는 영상을 통해 사마에게 묻는다. 시리아를 떠나지 않은 것과 떠난 것 중 어떤 것을 더 비난할지. 이 질문은 사마를 넘어 관객에게도 전해진다. 왜 이들은 떠나지 않았는가, 무엇을 위해 저항하였는가? 그리고 떠올리자, 이들이 일상과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고자 했음을, 자신들의 땅 시리아를 사랑했음을.

 

글쓴이 간장

화요일 5시 

나딘 라바키 | 2018 | 126’

   부모의 출생 신고가 아닌 의사의 소견으로 나이가 판별되는 아이, 열한 살에 월경을 시작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뻘의 남성에게 닭 한 마리와 교환되는 결혼, 끝없이 출산을 계속하는 어머니, 사슬에 묶인 채 자라는 아기, 설탕물을 먹고 자라는 집안의 아이들. 상상할 수 없는 일상이 지속되는 어딘가가 이 지구상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자인과 라힐, 요나스의 이름은 계속해서 다르게 불려진다. 이브라힘, 티케스트, 무함마드… ‘서류’가 없으니 가능한 일이다. 이들의 생존과 죽음, 존재를 증명할 그 어떤 공문서도 없으니 말이다. 열두 살이라고 짐작되는 아이에게서 좋은 사람이 되고 사랑받고 싶었으나 인생은 개똥 같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어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질책을 가하기엔 어른의 삶도, 아이의 삶도, 아기의 삶도, 모두 순탄치 않은 곳이다. 결국 요나스의 발목을 끈으로 동여매고 요나스를 버리는 자인의 모습에서 그의 부모의 모습이 겹쳐진다. 젖을 쥐어짜며 미안하다고 절규하는 라힐에게서, 요나스를 아스라프에게 넘기고 머리를 자르며 눈물이 쉴새없이 흐르는 자인에게서, 우리는 가난과 세상의 수많은 자인이 처한 현실의 냉혹함을 본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공문서에 들어갈 사진을 찍을 때 자인은 그 누구보다 환하게 웃는다. 요나스를 재회하는 라힐의 뺨엔 기쁨의 눈물이 흐른다. 영화는 끝없는 비극만을 암시하지는 않는 듯하다. 마침내 조금씩 풀려가는 듯한 결말. 그러나 우리는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과연 희망적인 결말이라고 볼 수 있을까. 사우드의 뱃속에 자리한 또 다른 아기는? 이 아기는 태어날 것이다. 신은 하나를 가져갈 때 또 다른 하나를 주신다는 심장을 찌르는 사우드의 말이 맴돈다. 주요 인물들의 처우가 조금씩 개선되는 결말에서도 무겁고 찝찝한 잔상은 계속된다. 자인과 요나스는 계속해서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성지 마슈하드에는 부정한 여자들이 넘쳐난다. 거리에 어둠이 깔리면 이 여자들은 짙은 화장과 화려한 스카프로 스스로를 드러낸 뒤 하룻밤치 지폐와 아편을 갈구하며 누구의 것인지 모를 오토바이와 자가용에 오른다. 날이 밝으면 부양해야 하는 가족에게, 생활 전선으로, 복귀하는 이들은 신의 숨결이 내린 성지의 수치라 할 수 있다.

고 생각하는 이가 비단 거미 살인마만은 아니었나 보다. 경찰 당국의 의뭉스러운 수사가 계속되는 가운데 기자 라히미의 활약으로 체포된 거미 살인마 사이드에 대한 지지는 마침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연쇄 살인의 충격에 도시와 시민들이 동요할 때는 쉬쉬했던 살인범에 대한 시선은 그의 정체가 드러난 뒤 보다 노골적으로 표출된다.

 

‘내 바로 옆에 영웅이 살고 있었다니!’

   아버지는 죽어 마땅한 여자들을 처리했을 뿐이라 아들에게 말하는 파티마를 보면, 사이드는 어쩌면 16명의 여자들 각각의 목을 조르고 시체를 유기하는 두 시간 남짓의 과정을 그리 용을 쓰며 가족들에게 감출 필요도 없었던 듯하다. 신의 부름을 받은 순교자의 책임과 의무가 너무나 신성해 홀로 받들어야 했던 건지, 미지의 영웅이 되고 싶었던 건지,

 

혹은 살인으로 인한 개인적 쾌락 충족의 은밀함과 위법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건지.

 

   순종적이고 자애로운 아내이자 어머니 파티마의 눈을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이드를 보면서 파티마가 남편의 범죄 행각을 알게 됐을 때의 반응에 대한 관객의 궁금증은 커져 간다. 그런 잠시의 기대에 헛웃음이 날 만치 파티마는 뻔하다. 뻔한 걸 넘어 파티마와 사이드의 신념은 그들의 자식에게 전파된다. 연쇄 살인은 사회 정화 소명을 실천한 것이라는 어머니의 말에 어리둥절하던 알리는 계속되는 주변인들의 칭송과 호의에 익숙해져 간다. 그렇게 어린 아이의 머릿속에서는 자신이 보고 듣는 것들이 정설로 자리잡아 간다. 희생자의 가족들은 딸이 매춘부였다는 사실을 광고하고 싶지 않을뿐더러, 범인이 죽는다고 딸들이 살아나진 않으니 보상을 받아 남은 가족들이라도 먹여 살릴 생각이다.

   신의 손길이 닿은 이곳 마슈하드에 여성들이 설 자리는 없다. 남자 상사의 구애와 성폭력을 거부하고 공론화할 시 직장에서 해고되는 사회의 체제는 여성을 밤 거리로 내몰았다. 여자가 아무 남자와 맞담배를 피우는 걸 보니 천성이 더럽고 천박하다는 인식은 여성을 아편 몇 그램과 지폐 몇 장에 소유할 수 있는 존재로 몰락시켰다. 그렇게 더러워진 사회는 신의 부름을 받은 남성이 정화해야 한다.

   신의 명을 수행한 것이니 한점 부끄러울 게 없다는 말이 무색해지도록 사이드는 살아나갈 수 있다는 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형장에서 미친 듯이 검은 차를 찾으며 소리치는 그에게서 우리는 그 어떤 순교자의 성스러움도 찾아볼 수 없다. 신은 마침내 사이드에게 답했다. 그는 절대 순교자로 죽을 수 없다는, 그에게는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말이다. 그의 목을 조르는 밧줄에 16장, 아니 17장의 스카프가 겹친다.

 

   아랍의 봄은 2010년 12월 이래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일어난 전례 없는 반정부 시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발발 10주년을 넘긴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광장에서 뜬눈으로 낮밤을 지새우고, 저항하고, 스스로의 육신과 마음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에서는 이들이 맞서고 있는 다방면의 인권 문제를 들여다봅니다. 여전히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여러분께도 이 작품들이 다시금 아랍의 역사와 투쟁을 되짚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 이제껏 못 보신 듯한 코너가 있으시지요? 바로 저번에 말씀드렸던 <MO:mentary with 이화시네마떼끄> 소개작 코너입니다. 🤭 앞으로 매달 아트하우스 모모와 시네마떼끄에서 소개드리는 이달의 한국 독립영화를 휴대-영화에서 만나보실 수 있게 되었답니다. 물론 인스타그램 계정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좋은 영화들을 소개드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 기쁜 마음뿐이랍니다. 여러분께 새로운 취향과 경험으로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수요일에 다시 찾아올게요! 🌸

* 허수경, "不醉不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