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스탕은 큰 들판에서 뛰어다니는 조랑말을 뜻한다. 마구간에서 목줄을 찬 채 길러지다 경마를 위해 뛰어다니는 말과는 달리, 무스탕은 제한 없이 들판을 뛸 수 있다. 랄리와 그녀의 자매들 역시 그러한 무스탕의 삶을 꿈꾼다. 무엇에도 억압받지 않고 세상을 향해 뛸 수 있는 삶. 그러나 그녀들을 담기에 터키의 한 마을은 터무니없이 작다. 자유가 있는 이스탄불과 천 킬로미터가 차이 날 만큼.
   단순히 학창 시절 한 가지의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 방학식 이후의 바닷가 놀이가 마을에서 소문이 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여자의 순결이 성역화되고, 여성이 시집을 가기 전에 무조건 순결을 지켜야 하는 이곳에서는 단순히 여성과 남성이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비난받는다. 다섯 자매는 이를 핑계로 순결 검사를 받고, 좋은 신부가 되기 위해서 신부 수업을 받으며, 집의 가죽을 쓴 감옥 안에서 외출 금지를 받고 살아간다. 이 자매, 더 나아가 이 마을에 사는 여성들에게 이 마을은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었다. 여성들에게는 가족도 마을 공동체도 없었다.
   남자들은 그렇다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순결을 지키고 예의를 갖추어서 ‘잘 만들어진 여성’들을 결혼이라는 형식대로 사고판다. 여성을 산 남성은 순종적이고 자신의 집안일을 맡아줄 아내를 얻게 되고, 여성을 판 남성은 지참금을 얻는다. 또한, 남성이 여성에게 가스라이팅하는 수직적 위계질서 역시 상당하다. 스포츠는 남성의 것이기에 여성은 관심 없는 드라마나 봐야 하고, 삼촌이 성폭행하더라도 여성은 자신의 순결이 사라진 걸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기에 자기 잘못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상황은 이렇게도 암울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상황에서 비극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자매들에게 집중한다. 자신이 원래 가져야만 했던 자유를 찾기 위해서 반항하는 자매들에게. 이 영화는 여자들에게 폭력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비극을 묘사하고, 그 안에서도 빛나는 자매의 욕망에 포커스를 맞췄다. 비록 두 명은 결혼식장으로, 한 명은 먼 곳으로 떠났지만, 함께 손을 잡고 이스탄불로 향하는 랄리와 누르는 영화의 시작과 함께 나오던 바다의 윤슬처럼 빛났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억압도 자유를 꺾을 수는 없으니.

글쓴이 푸들

목요일 5시 

   19세기 영국, 수많은 소녀가 늙은 지주에게 팔려 갔다. 그들은 강요당했고 참았지만, 캐서린은 달랐다. 그는 길들지 않은 욕망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면사포와 흰 드레스에 싸인 날에도,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에도. 캐서린은 여전히 주위를 둘러보았고 할 말을 했으며 원하는 것을 말했다. 코르셋과 크리놀린도 상관없었다. 답답하고 불편하고 옥죌지라도 그의 푸른 영혼이 언제나 그 위를 덮었다.
   그런 캐서린의 욕망은 폭발하기 시작한다. 남편도 남편의 아버지도 없는 집에서 평화롭게 누워있던 그날이 시작이었다. 바깥의 소란에 급히 뛰어간 곳에서 하녀 안나를 장난감 취급하던 일꾼들을 마주한, 그때가 시작이었다. 캐서린은 잠깐 당황하다 곧 남편처럼 명령한다. 벽 보고 서, 웃지 말고. 그러나 그는 남편과 다르게 질문을 던진다. 순간의 호기심에 이끌린 질문은 일꾼 세바스찬의 선 넘는 행동으로 이어졌고 이상하게 캐서린은 그의 행동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캐서린의 자극제가 되어 욕망을 조금씩 이끌어낸다.
   시작은 그랬다. 흔한 사랑이었다. 너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어, 그 뻔한 사랑의 속삭임이 더 이상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게 되었을 때부터였을까. 캐서린의 욕망은 멈출 줄 모르고 달렸다. 이제 그의 욕망은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것에 머물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을 없애는 게 되었다. 그 욕망의 첫 번째 대상은 남편의 아버지였다. 남편보다도 직접적으로 캐서린을 억압하고 무시하던 그가 가장 먼저 제거 대상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거다. 심지어는 세바스찬과의 일을 들먹이며 캐서린에게 물리적으로 폭력을 가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캐서린은 독버섯을 이용해 교묘하고도 태연하게 그를 처리한다. 남편 아버지의 단말마는 방문을 넘지 못했고, 그렇게 그는 죽었다. 
   다음 목표는 자연스럽게 남편이 되었다. 부부의 침대에서 세바스찬과 자고 있던 어느 밤 갑자기 집에 돌아와 둘의 관계를 비아냥거렸기 때문이다. 대화 끝에 캐서린은 급히 몸을 숨겼던 세바스찬을 남편의 눈앞에 세우고 보란 듯이 그와 몸을 섞는다. 화가 난 남편이 세바스찬을 죽이려 하자 오히려 캐서린이 그를 죽인다. 그가 타고 온 말까지 총으로 죽이고는 완벽히 사고로 위장한다. 이후 세바스찬이 살인의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하자 캐서린은 어차피 남편은 약하고 악한 사람이었다며 담담히 위로하기에 이른다. 영화에 그려진 마지막 대상은 테디였다. 남편의 아버지와 남편까지 없애고 평화로워질 줄 알았던 일상에 불쑥 나타난 불청객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어느새 테디라는 어린아이의 후견인이 되어있었고 그 증거가 확실한 이상 캐서린은 더 이상 테디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죽였다. 엄마를 그리워하던, 캐서린을 따르던, 어린, 아이였던 테디까지 죽였다. 그의 사랑을 완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모두 치워버렸다.
   이제 정말 끝이라고 생각하던 그때 세바스찬이 반전을 가져온다. 캐서린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고, 캐서린이 점점 자신의 목을 조여온다고 고백한 것이다. 동시에 그간 캐서린이 저지른 모든 살인을 고발하며 자신은 더는 못 견디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캐서린의 욕망은 폭발한다. 이제 더 이상 사랑도 감정도 없고, 오직 자신의 욕망만이 남았다. 그는 잠깐 세바스찬의 눈을 바라보다 곧 아무렇지도 않게 이 모든 일이 세바스찬과 안나의 짓이었을 거라며, 테디는 자신에게 아들과 같은 존재였다며 결백을 담은 눈물을 흘린다.
 캐서린이 팔려 온 집은 완전히 비었다. 집의 원래 주인도, 남편도, 사랑도, 하녀도, 죽었다. 죽였다. 소파에서 긴장하던 푸른 영혼의 캐서린은 더 이상 없다. 검고 검은 욕망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전쟁의 역사는 아프다. 전쟁 중일 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상실이 쓸고 내려간 자국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그 후의 시간도 그러하다. 전쟁 이후의 삶 속에서 박남옥 감독이 주목한 것은 남편을 잃고 혼자서 혹은 아이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미망인들의 삶이었다. 참전으로 인한 일차적인 피해를 남성들이 겪으면서, 50년대의 여성들은 그들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경제적인 주체성을 갖추고 점차 발언권을 얻게 되었다. <미망인>(1955)의 주인공인 신 또한 자신의 욕망을 여과 없이 표현하고 주체적으로 살아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신은 딸인 주와 함께 산다. 바다에 놀러 갔다가 물에 빠진 주를 택이 구해주면서 신과 택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둘은 동거를 시작하는데, 택이 주를 불편해하자 신은 주를 옆집에 이사 보내 버리겠다며 관계를 이어 나가고자 한다. 신은 사별한 남편의 친우인 이 선생에게 받은 돈으로 양장점을 시작하면서 택과의 새 삶을 꿈꾸지만, 우연히 전 애인과 재회한 택은 신에게 이별을 고하고 만다. 현존하는 자료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만, 유실된 마지막 10분간의 필름에는 분개한 신이 과도로 택을 응징하고 딸 주와 함께 떠난다는 결말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미망인>은 어떻게 한국 여성영화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자리 잡았는가. 그것은 박남옥이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이고, 카메라를 들고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수많은 노고가 있었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미망인’이라는 존재에 어떻게 접근했는지가 관건이 된다. 당대의 미망인을 다룬 타 작품들 또한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결국 결혼은 깨려야 깰 수 없는 약속이고 가족을 남겨둔 채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인다. 그러나 <미망인>의 신은 본인의 사랑을 위해 딸을 이웃집에 맡겨버리는 것도, 또 그 사랑을 배신당했을 적에 마땅히 응징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전쟁 이후의 사회에서도 잔재하는 가부장적인 분위기에 신은 솔직한 욕망으로 대항한다.

   이번 기획, 잘 보고 계신가요? 글쓴이란을 유의깊게 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도 이번 세미나에 참여했었는데요. 다양한 여성 캐릭터의 욕망을 만나볼 수 있어서 아주 즐겁게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 여러분은 어떤 영화를 제일 마음에 들어하실지 궁금하네요.

   서울은 비가 쏟아지더니 기온이 뚝 떨어져 버렸답니다. 다들 따뜻하게 입고 다니시는지 모르겠어요. 문 밖을 나설 때마다 겨울이 오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데요. 매년 느끼지만 올해는 정말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시네마떼끄의 이번 학기 정기상영도 이제 3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답니다. 🥲 남은 영화들도 기대해 주실 거지요?

   월요일에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