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그저 기억에 의해 개인이 되는 거다. 설령 기억이 환상의 동의어였다 해도 사람은 기억으로 살아가는 법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인간임을 증명하라고 한다면 당신은 지금 당장 타당한 이유를 내놓을 수 있는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기던 인간다움은 ‘증명’과는 거리가 먼 주제일 수도 있다. 세상이 발전하고 인공지능이 세상에 도래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찰을 해야만 한다. 어디까지가 인간이라는 생명체이고 어디까지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 육체의 한계에서 벗어나 진화된 상태로 흔히 얘기하는 포스트 휴먼은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기술이 발전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며 점점 인간과 유사하지만 인간이라고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존재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먼 미래 사회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그 경계가 불분명해질 수 있는지 얘기해 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프로젝트 2501은 이런 말을 던진다. 자신은 번식을 하지 못하며 복제는 복제에서 그칠 뿐 개성과 다양성을 지니지 못한다라며 쿠사나기와의 융합을 얘기한다. 어쩌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치 중 하나는 각자 삶의 개성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다른 기억과 생각을 가지고 자신만의 고유한 색으로 수많은 경험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간이 지닌 인간다움 중 하나일 수 있다. 단순히 프로그래밍을 통해 생성된 특징이 아닌 삶을 통해 쌓아간 개성은 인간이 지닌 고유한 가치일 것이다. 

   당신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가. 이 작품 속 인간의 기억은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로 사용된다. 자신만의 고유한 기억, 거대한 세상 속 자신으로 살아가게 해주는 그 유일함은 인간과 기계 그 사이의 경계에 선 자들에게 희망이 된다. 이 영화는 단순히 매력적인 작화로 그려낸 우리의 미래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우리에게 우리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고찰의 기회를 던져준다.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기회를 잊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진 이 사회속 다시 한번 생명에 대한 고민을 하며 영화를 즐겨보길 바란다.

글쓴이 융털

쿠사나기 소령이 ‘인형사’와 함께 행색을 감춘지도 3년이 지난 2032년, 도시 곳곳에서 무참히 살인을 저지른 뒤 자폭하는 기괴한 소녀 로봇이 등장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2032년은 기술의 발달로 인간과 사이보그, 인간형 로봇이 공존하고 있다. 테러를 막는 정부 직속 기관 공안 9과의 형사 버트는 새롭게 배정된 파트너 토그사와 함께 해당 사건의 수사를 맡게 된다. 

주인을 살해하던 소녀 로봇의 정체는 '로커스솔루스'사의 모델 2052 히다리 인형. 테스트용으로 생산된 인형으로, 계약을 맺은 고객에게만 무료 대여하던 기종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고장냄으로 인간을 공격할 권한을 만들어내고 윤리 코드 제 3항에서 해방되는 선택을 하고 있었다. 

감식반의 해러웨이는 단지 히다리 인형만의 문제가 아니라 최근 들어 필요 없어지면 버려지는 애완용 로봇 사이에서도 비슷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로봇들은 버려지는 걸 막고 싶은 것뿐이야.”

그녀는 인간들이 수시로 새로운 모델을 구입하며 폐기된 로봇들이 떠돌이가 되어 정비도 못 받은 채 변질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자신의 모습과 감정을 닮은 존재를 만드려고 하는가, 해러웨이는 버트와 토그사에게, 그리고 스크린 너머의 관객들에게 질문한다.

이어, 바트와 토구사는 로커스솔루스의 본사가 있는 북단으로 가는 길에 해커 ‘김’을 만난다. 김은 로커스솔루스 본사의 경비 주임 전뇌와 연결되어있고, 헛된 허영심으로 육체를 버리고 네트워크와 융합해 자신이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고 믿는 남자다. 자신에게 찾아온 바트와 토구사에게 전뇌 해킹을 걸며 스스로가 로봇인지 인간인지 믿을 수 없는 루프에 가두려했지만, 버트의 수호천사, 소령의 징표 덕분에 이들은 간신히 미로에서 빠져나온다. 

수많은 장애물들을 거쳐 드디어 로커스 솔루스 사에 진입하게 된 9과의 수사 담당자들. 문제의 발원지는 국적 없는 망망대해를 떠다니며 불법 로봇을 생산하고 있는 공장이었다. 버트가 공장에 들어오자, 이를 막으려 수많은 소녀 가이노이드가 무더기로 쏟아져내린다. 폭주한 가이노이드들이 무차별적으로 달려들자 노련한 수사관 버트마저 열세에 몰리게 된다. 그러자, 어떤 가이노이드 하나가 버트와 함께 다른 가이노이드들을 총으로 쏴 죽이기 시작한다.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가 행적을 감췄던 소령이 가이노이드에 접속한 것. 

비록 소령의 몸은 발가벗은 소녀 인형의 모습을 하게 되었지만, 버트와 쿠사나기는 오랜만의 협공을 펼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둘은 로봇 제조 시설까지 들어가게 된다. 그곳은 기계로 둘러싸여 곳곳에서 도와달라는 소녀의 목소리가 맴돌고 있었다. 이는 주인을 살해한 가이노이드가 속삭이던 목소리와 같았다. 알고 보니 로커스 사는 ‘고스트 더빙’이라는 불법 기술을 사용해 로봇의 몸체에 납치된 아이들의 영혼을 복사하고 있었다.

인형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소리지르는 아이. 

"인형들에게도 목소리가 있었다면,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소리질렀겠지"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버트는 사법권 행사가 가능한 근처 국가로 배를 옮겨 나온다. 

전편 공각기동대에 이어, 감독은 차기작 이노센스에서 더욱 다양한 인간군상을 제시하며 인간과 로봇의 경계에 대해 질문한다. 몸의 대부분이 기계로 바뀌어버린 인간, 완전히 몸을 버리고 네트워크에 결합한 인간, 인간의 영혼이 복사되어 들어간 로봇까지.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로봇인가, 과연 나 자신은 로봇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인간에게 로봇은 무엇인가. 

상하이와 도쿄를 기반으로, 유럽풍의 느낌이 모던하게 섞여 있는 이 영화의 배경 도시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살아가게 될 도시를 예언하듯 그려낸다. 하늘 높이 고딕양식 풍으로 지어진 건물들은 오만한 과학기술의 외면같이 보이기도 한다. 거대한 가면극과 함께 카와이 켄지가 작곡한 영화 배경음악이 흐를 때면, 압도적인 영상미와 귀기 서린 카와이 켄지의 영화 음악이 완벽한 대응을 이루며, 화면에 펼쳐진다.

다소 전작의 명성에 편승하는 듯한 연출과 궤변들이 이어져 루즈한 부분도 있었지만, 가까워지는 AI의 발전과 로봇의 상용화 시대에 한 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할 중요한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본 작의 제목을 본래 ‘공각기동대 2’로 설정하려다, 제작을 맡은 이시카와 미츠히사에 의해 ‘이노센스’로 지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영화를 통해 제작진은 두려움의 대상이자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존재, 로봇들의 결백을 주장하려는 게 아니었을까. 

   때때로 SF는 반항적인 장르 같기도 합니다.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모든 상상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보편적 질서를 부수는 힘, 기존 체제에 대한 반골 정신, 인간 실존과 윤리에 대한 날카로운 물음. 그런 반항적인 움직임은 장르 안에서 상상력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얻고 관객을 매료시킵니다. 한편 작품 내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 또한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가 되는데요. 전뇌 인간과 구식 다이얼 전화가 공존하는 시대라니 참 아이러니하죠. 👽

   또 하나 전해드릴 반가운 소식이 있습니다. 다음 주부터 아트하우스 모모와 이화 시네마떼끄의 협업 프로그램인 <MO:mentary with 이화시네마떼끄>가 새롭게 시작합니다. 곧 모모와 시떼가 함께 추천드리는 이달의 한국 독립영화에 대한 부원들의 글을 인스타에서 만나보실 수 있을 거예요. 새로운 프로그램도 많이 사랑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이만, 월요일에 새로운 기획과 함께 다시 찾아뵐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