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난 날이야.

해변에 있는 네가 멀리서 희미하게 보였지.

그때부터 너한테 끌렸어.

여자 등을 보고 반하다니 참 신기하다 싶었지.

넌 툭하면 입는 그 오렌지 후드티를 입었어.

나중엔 싫어졌지만

그래도 그땐 그랬어.'

’멋지네, 오렌지색 후드티.‘

‘이제 때가 왔어 조엘. 어떻게 하지?

'그냥 이 순간을 즐겨야지.’

높은 채도의 자유분방한 클레멘타인과 무채색의 지루한 조엘.

완전히 다른 색깔의 두 사람은 N극과 S극이 끌리듯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뜨거웠던 사랑은 이내 사그라들고, 둘 사이엔 권태와 갈등의 구름이 드리운다.

조용하고 착해서 좋았던 조엘이 클레멘타인은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지게 되었고, 지루한 일상에서 끄집어내줄 것 같았던 클레멘타인은 조엘에게 교양없는 창피한 사람이 된다. 만날 때마다 환하게 웃던 미소는 오해와 비난으로 얼룩져버려, 결국 두 사람은 이별하게 된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사람이 가장 혐오스러운 존재로 변해버린다는 건 견디기 힘든 일이다. 

괴로움을 참지 못한 클레멘타인은 아픈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하워드 박사를 찾아가 조엘과의 기억을 지워낸다. 그와 나누던 시시콜콜한 농담부터 둘을 닮은 포테이토 헤드, 꽁꽁 언 강에 누워 별을 바라보던 추억까지 전부. 조엘의 기억은 말끔히 사라졌지만,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공허하고 자신이 사라져가는 느낌이 들어 클레멘타인은 조엘과 비슷한 분위기의 새 남자친구를 사귄다.

한편, 클레멘타인이 자신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엘도 분개하며 하워드 박사를 찾아간다. 하워드 박사는 하룻밤 동안 그녀와 관련된 괴로운 기억을 모두 없애주겠다며, 조엘이 자는 동안 전문적인 라쿠나사(하워드 박사의 회사)의 직원들이 기억 삭제 작업을 할 것이라고 전해준다. 그리고 시작되는 작업. 기억은 최근에서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로를 향한 날선 비난, 미움과 오해, 분노. 지긋지긋했던 그녀가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조엘의 기억을 지우는 작업이 자동모드에 들어서자 작업을 하러 왔던 메리와 스탠은 조엘의 집에서 술과 마약으로 광란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는 동안 조엘은 클레멘타인과 행복했던 추억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걸 느끼며 충동적인 결정을 후회했다. 과거 자신이 그녀를 사랑했던 순간들을 더듬어가며,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아냈다. 조엘은 소중한 추억이 지워지지 않도록 기억 속을 헤집으며 클레멘타인과 도망친다.

그러나 하워드 박사까지 나서자 조엘은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고, 결국 처음 만났던 '몬탁해변에서 만나자' 는 약속을 남기고 클레멘타인은 조엘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이유도 모르겠지만 끔찍한 기분으로 시작된 조엘의 아침.

조엘은 충동적으로 몬탁해변으로 달려나간다.

그곳엔 새파란 머리에 오렌지색 후드티를 입은 클레멘타인이 있었다.

거리낌없이 조엘에게 다가오는 클레멘타인, 그는 지루한 일상에서 그녀가 자신을 꺼내줄 수 있을 것만 같이 느껴졌다.

운명의 장난처럼 두 사람은 다시 사랑에 빠지고,

잊고 또 잊어도 사랑의 햇살은 영원히 이어진다.

2005년 개봉한 미셸 공드리 감독의 대표작 <이터널선샤인>은 변화하는 사랑의 모습을 꿈속을 헤매듯 몽환적으로 그려냈다. 독특한 미장셴과 반전이 담긴 스토리, 무엇보다 재치있던 모습을 벗어나 진중하고 조용한 이미지로 변신한 짐캐리의 명연기는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아, 수많은 아카데미에서 수상을 기록했다. ‘이터널 선샤인’이란 영화의 제목은 천재적인 문학가 알렉산더 포프의 시에서 비롯되었다. 영화 속, 하워드 박사에게 사랑에 빠졌던 메리가 말했던 “티끌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살이여!” 라는 대목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잊혀짐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러나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하더라도, 우리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클레멘타인과 기억에서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조엘의 말처럼

감독이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그저 이 순간을 즐기자는 게 아니었을까.

글쓴이 모리

   주인공 스테판은 엄마의 권유로 파리에 와 한 회사에 취직한다. 달력을 만드는 이곳에서 자신의 창의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스테판은 실망하고 만다. 추락하는 비행기나 세상을 뒤흔든 재난, 모두가 특정 날짜를 떠올리게 할 비극을 다달이 그려 넣을 줄 알았건만! 그는 평범한 편집 업무를 맡게 된다. 꿈과 현실을 동시에 살아가는 주인공은 꿈에 통달한 인물이라기에는 무리가 있다. 말했듯이, 그는 꿈과 현실이 모호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일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루한 나날은 그가 공상에 더 골몰하게 만든다. 그러던 그의 일상은 한 이웃과의 만남으로 흔들린다. 맞은편에 사는 스테파니는 수공예를 잘하고 다정한, 실로 매력적인 사람이다. 스테판은 점점 스테파니에게 끌리고, 스테판의 상상력은 스테파니에게도 매력으로 다가간다. 깨어있을 때도 꿈을 꾸는 스테판, 그리고 그의 미성숙함은 둘의 관계를 어디로 이끌게 될까.

   <수면의 과학>은 수면의 본질이나 꿈을 꾸는 과학적 원리를 탐구해 내고 있지 않다. 대신 이 영화는 상상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스테판은 발명가다. 그는 세상을 3차원으로 보이게 하는 3D 안경-세상은 원래 3차원 아닌가요? 그래요, 그치만!-, 1초 단위 타임머신을 만들었다. 제대로 작동하냐고? 그건 중요치 않다. 본래에서 크게 변한 게 없다 한들 어떤가? 스테판은 상상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줄 안다. 그에게 꿈과 현실이 그러하듯. 그는 꿈과 현실을 잘 구별하지 못하지만, 그건 ‘잘 구별하지 못한다’라는 한 문장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꿈과 현실을 구별짓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억지스러운 상상을 물 흐르듯 내 세계로 포섭할 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감독인 미셸 공드리는 말했다. 왜? 라고 질문하지 않으면서 나의 아이디어, 이미지, 컨셉들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우리는 스테판이 어느 부분에서 꿈과 현실을 혼동하고 있는지 찾아낼 수 있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꿈은 현실을 부드럽게 넘나든다. 폭신한 펠트 전화기, 파장에 반응해 둥실 떠오르는 솜 구름, 잠들어도 끊어지지 않는 전화처럼. 조악한 분장과 스톱모션 기법은 실제와 유리된 모양새로 스테판의 현실에 스며든다. 영화는 어색한 꿈속 소품들을 현실과 자연스레 뒤섞는데, 이를 통해 현실과 꿈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런 시도는 현실을 조금 더 자유롭게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수도꼭지를 열자 흐르는 셀로판지나 골판지로 만든 TV쇼 세트장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감독의 전작이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것은 어쩐지 충격적이다. <수면의 과학>은, 그의 전작보다도 투박하고 덜 다듬어져 있으니까. 그러나 마지막 장면, 꿈속에서 스테파니와 함께 펠트 말을 타고 달리는 스테판을 우리는 보았다. 흔히 사람들은 꿈을 해석하거나 이해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스테판이 했듯이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이 영화를 이해할 것인가? 잠들었을 때 본 꿈처럼, 꿈속의 내가 그러했듯이 이 광경을 받아들일 것인가? 유치하고 산만하더라도, 도무지 의도나 메타포를 읽어낼 수 없다고 해도(미성숙함에 지쳐 떨어져나간 관객들을 비난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게 잘못됐다고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글쓴이 견지

글쓴이 초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