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 침 뱉으면 벌금 10만원💦
안녕하세요, 23년도 2학기 첫 기획상영인 <웃는 얼굴에 침 뱉기>의 기획을 맡은 견지입니다. 다들 9월은 어떻게 맞이하고 계신가요? 어떤 때보다도 활기가 필요한 가을의 초입인데, 마음의 무게를 더하는 이런 기획으로 찾아뵙게 되어 어쩐지 송구합니다.
여러분, 남들이 웃는데 혼자 못 웃었던 영문 모를 기억을 떠올려 봅시다. 나도 멋쩍게 웃어 보지만, 그건 어쩐지 울음이 날 것 같은 기억입니다. 그런 한편, 웃자고 하는 소린데 웃음이 안 나오는 때도 있습니다. 보통 내 일이거나, 내 일이거나-내 일일 때입니다.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 요즘 세상엔 차고 넘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웃어 보세요. 옆 좌석, 앞 줄, 스크린 너머의 인물들과 함께 웃다가 눈이 마주치는 순간처럼 함께 살아가는 순간이 또 있을까요. 영화 속 지구는 빵 터져버리기도 하고, 구멍이 송 뚫리기도 하며, 어쨌든 변함없이 계속 돌돌 굴러가기도 합니다. 우리네 세상처럼요. 글쎄요, 눈을 감고 귀를 막는 것보단 차라리 눈 마주치고 깔깔 웃는 게 낫지 않던가요. 풉 터져나오는 웃음, 혹은 한숨, 참지 않으셔도 되니 들러주세요. 물론 집에서 이 영화들을 마주할 때도 이 기획을 떠올려 주신다면 그것만큼 감사한 일이 없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죄송해요, 얼굴에 침 뱉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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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끝맛이 유쾌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서도 우리는 왜 불량식품처럼 자꾸 블랙코미디를 찾게 되는가. 그것은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이 스스로의 현실과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고전적으로 빛과 어둠이라는 이분법을 사용하자면, 안타깝게도, 우리는 대부분의 하루를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떤 날은 제때 끼니를 챙기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지고, 사소한 일에도 견딜 수 없을 만큼 화가 나기도 하고, 나만 같은 사건에 이렇게나 괴로워하는 걸까 싶은 날에는 잠을 설치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 따위를 신경쓰는 건 쿨하지 못하다고 말은 하지만 우리는 늘 어느 정도는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통의 사람처럼 포장되어 살아가기를 원하니까.
김씨표류기들의 두 등장인물도 그렇다. 회사의 부도로 직장을 잃은 승근은 재취업을 준비하지만, 나이도 많은 데다 토익 점수도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여자 친구에게는 무능하다는 이유로 실연당하고 빚은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 불어나 타개할 방법이 없다. 또 다른 인물인 정연은 방 안에서만 하루를 보낸다. 가지고 싶은 건 전부 가질 수 있다. 인터넷에서 사진을 퍼다 내 삶인 것처럼 적당히 꾸며내기만 하면 되니까. 자기 전에는 만보기를 흔들어 숫자를 채우고 오늘 하루도 남들만큼 그럭저럭 열심히 살아냈다는 최면을 건다. 승근과 정연 두 사람 모두 사회에서 규명하는 ‘좋은 삶‘으로부터는 거리가 먼 낙오자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이 영화에 동하게 되는 지점은 어떤 바닥에서도 희망을 가질 만한 구석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달 사진을 찍는 취미를 가진 정연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밤섬에 표류된 승근을 발견하고, 집 밖으로 나가 ‘HELLO’라는 메시지를 전할 용기를 가지게 된다. 낮에도 창밖을 바라보고 식물을 기르는 취미도 생겼다. 승근 또한 최소한의 의식주만 챙기던 삶에 생기가 불어넣어진 듯한 모습을 보인다. 답장이 담긴 유리병을 모아두고 이따금씩 꺼내보며 정연에 대해 궁금해하고, 답장이 오지 않는 날에는 숲속을 한참 헤매거나 ‘지난번까지는 괜찮았잖아!’라며 본인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그토록 어두운 삶에서 필요했던 것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공명할 수 있는 사람과의 소통, 그 안에서 나오는 희망과 내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지점이었다.
희망이 꼭 거창할 필요가 있을까. 모서리가 깨진 책상을 이사할 때도 버리지 않고 가지고 가는 일*, 끝이 또 다른 시작이라고 믿는 일, 하다못해 짜장면을 만들어 먹는 일이라도. 그런 사소한 희망이 모여 빛이 내리는 곳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면. 그러니까 일단 이 유머에 새카맣게 웃고 보자. 일련의 나쁜 일에 짓눌리더라도 오늘의 삶은 잠시 죽었다 깨어나면 그뿐. 살아있는 한 짜장면 같은 희망은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내일의 화면과 음향이 점차 살아나기를 기대하면서, 레드 썬.
*안미옥, 「가장 마지막 수업」.
글쓴이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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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타인을 보며 나와 비교할 때가 있다. 왠지 모르게 내가 남보다 못나 보이고 남보다 모자른 구석이 있다 느껴지기도 한다. 주인공 미숙은 그런 감정을 강하게 느끼며 살아간다.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안면홍조증을 가진 그녀는 자신을 꾸미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서툰 어린아이 같은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녀는 동료교사인 유리에게 강한 질투심을 느낀다. 자신과 다르게 인기가 많고 예쁜 그녀, 미숙의 러시아어 선생님 자리까지 뺏어간 유리는 미숙에게 있어 질투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남자까지 뺏길 위기에 처한 그녀는 그 남자의 딸과 발칙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미숙이 자신의 질투심만을 내세우는 못된 인간이라고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게 되면 미숙의 캐릭터는 절대 밉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게 미숙한 미숙에게서 우리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다른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자신의 콤플렉스로 인해 남의 시선이 두려워진 미숙의 모습은 모두가 한번쯤은 겪어봤던 억울함을 대변해 준다. “그래 나도 알아 내가 별로라는 거, 내가 아니었으면 다들 이렇게 나한테 안 했을 거면서 내가 나니까 다들 일부러 나만 무시하고!“
우리는 모두 미숙의 모습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 서툴고 결핍이 있으며 수줍은 그녀는 가끔 골때리는 행동을 하지만 우린 그녀의 솔직함에 실소를 터뜨리게 된다. 그런 미숙은 그가 짝사랑하는 종철의 딸과 일종의 동맹을 맺게 된다. 선생과 학생의 관계라고 보기는 힘든 그 둘의 관계는 서로를 이용하는 듯하지만 결국은 서로를 위로해 준다. 각자의 결핍이 있던 둘은 황당한 계획을 함께하며 서로의 비슷한 점을 인지하고 감싸주며 둘도 없는 파트너가 된다.
이 영화는 언뜻 보면 막장 드라마 같은 전개에 웃음이 나올지 모르지만 계속 보다 보면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얼굴이 빨개지는 미숙의 이야기는 자신감 없는 누군가에게 무언의 위로를 건낼 것이고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나를 보여주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알 수 없는 안도감을 전해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며 어딘가에 숨어있을 수많은 미숙들에게 응원을 전달하고 싶다.
글쓴이 융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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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잘 안 풀린다면 그것은 노오력이 부족해서, 열정이 부족해서라고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수남은 공장에서 사고를 겪고 PTSD로 괴로워하는 남편을 위해 집을 살 것을 다짐하고, 몸이 부서져라 돈을 모은다. 밥을 먹으면서도 신문 배달 스킬을 연습하고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일했지만 애석하게도 부동산 시세가 오르는 속도를 시급이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결국 대출을 받아 그토록 원하던 집을 샀지만 수남의 남편은 우울을 극복하지 못해 자살을 시도하고,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 입원하게 된다. 생활비에 대출 빚, 거기에 병원비까지 얹혀버린 것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에 따르면 못해도 이것보다는 풍족한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은데, 책임져야 할 것들만 눈덩이처럼 커져갈 뿐이다. 아니면 이것마저도 부족했던 걸까? 수남은 얼마나 더 간절해야 했던 것일까?
미래에 대한 불신은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기인한다. 우리 모두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지만, 실은 조금씩은 배신당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함을 알고, 결코 닿을 수 없는 지위와 삶의 수준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평생 발버둥쳐도 일정치 이상에는 다다를 수 없다는 현실은 얼마나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그들만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을 보며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고, 이런 사회에 대한 염증도 느껴 보았을 것이다.
수남도, 수남의 남편도, 재개발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도.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의 고증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감히 누구를 절대적인 악역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에요.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사건들의 연속에 우리는 웃게 되지만, 그 속에 투영된 우리의 희망에 이내 씁쓸해지고는 한다.
글쓴이 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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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를 다룬 영화는 많다. 그런 영화들을 볼 때면 복수가 완전히 통쾌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되는지, 아니면 반대로 후련함이 가시지 않아 후회와 함께 찝찝하게 마무리되는지를 눈여겨보게 된다. <친절한 금자씨>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목적을 위해 주인공과 함께 달리게 되는 작품일 경우에는 더 그렇다. 화면 너머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고 있지만, 그 사실을 자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인공의 복수를 바로 옆에서 돕고, 간절히 원하는 이의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 복수가 성공적일지. 그리고 복수가 성공적이라는 것은 과연 뭘 의미하는 것인지. 그건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참의 복수가 막을 내리고, 하얀 눈을 맞으며 눈물을 흘리는 그 표정에서 어떤 감정을 읽어내야 할지 우리는 오랫동안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이금자는 어려서 큰 실수를 했고, 자기 목적을 위해 남의 마음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그토록 원하던 영혼의 구원을 끝내 얻지 못하였다.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금자씨를 좋아했다”는 대사로 귀결되는 이야기라면, 그런 고민은 불필요할 수 있겠다. 결국에는 그게 허탈, 허무, 후회면 어떻고 드디어 맞이하게 되는 기쁨이면 어때, 하고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친절한 금자씨>는 13년 동안을 누명을 써 복역한 금자가 백선생을 향한 복수를 계획하는 이야기다. 백선생은 어린아이들을 납치해 잔인하게 죽이며 그 과정을 영상으로 남기는 살인자다. 금자씨는 그런 백선생에게 원모를 유괴하고 살해한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 사실 금자씨가 백선생의 범행을 도운 것은 맞다. 그래서인지 백선생을 향한 분노와 함께, 나지막이 딸려 오는 죄책감이 공존한다. 어렸던 원모가 다 큰 성인이 되어 금자씨에게 재갈을 물리는 장면에서 그 잠시 숨겨뒀던 감정들이 드러난다. 그랬던 금자씨는 피해자들의 유가족들에게 복수의 기회를 넘긴다.
경찰에게 이 사건을 맡길지, 아니면 금자씨가 바로 처리하게 할지, 한 명씩 들어갈지, 여럿이 함께 들어갈지 고민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딸과 아들을 잔인하게 죽인 살인마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칼로 찌를 때의 마음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그 과정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사람마다 다르다. 백선생을 칼로 찌르고 난 뒤 뒤처리를 하는 씬도 강렬하게 다가온다. 복수를 마친 뒤 금자씨의 마음을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그만큼이나 백선생을 처리하고 난 뒤의 유가족들의 마음을 상상하는 것도 쉽지 않다.
금자씨는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꽤나 길게 느껴졌던 복수를 끝마치고, 그는 두부를 먹지 않는다. 그리고는 두부에 얼굴을 묻는다. 이미 너무나도 검게 물들어버린 인생이라 이제 와서 깨끗해질 수는 없겠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렇지만, 아마도 금자씨는 제니가 흰 두부를 내밀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확히 알 수 없는 금자씨의 표정과, 그 뒤가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는 눈이 내리는 골목 장면에서 마무리된 이야기 덕분에 금자씨와 제니가 살아갈 앞으로의 날들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흑백의 마지막 장면이, 이 치열하고 끈질긴 복수극을 두부의 맛처럼 희고 담백하게 끝내주었다고 생각한다.
글쓴이 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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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 속에서 얻는 위로
안녕하세요! 나나입니다. 이번 학기는 한국의 블랙코미디라는 주제로 첫 상영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다들 블랙코미디 좋아하시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편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도통 자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건에 휘말려 괴로워하는 등장인물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나 또한 한번쯤 경험해 보았기에 묘하게 위로되는 지점이 있지요.
결국 가장 좋은 위로는 경험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비슷한 정도의 슬픔을 겪어본 사람들끼리의 공명이 제겐 가장 위로다운 위로라고 느껴져요. '이런 타이밍에 나 웃어도 되나?' 싶을 때, '이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 라는 감상이 드는 것. 그런 확신과 유대감이 자꾸 블랙코미디를 찾게 만드는 매력 아닐까요. 그러니 영화를 보는 동안만큼은 마음이 새까매질 정도로 웃고 털어냅시다. 수요일에 두 번째 이야기를 들고 다시 찾아올게요! 😎
이화 시네마떼끄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343호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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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시네마떼끄
ewhacinemathequ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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