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4주차 상영 <SIX FEET UNDER>를 기획했던 견지입니다. 🤓 늘 뉴스레터를 발송하고 인사를 건네다가 기획으로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이 기획은 '죽음' 자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마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죽은 다음 우리는 이 땅에 얼마나 오래 남아있는 걸까요? 유령으로, 혹은 시체로 머물다가, 다음 세계가 있다면 그곳으로 이동하게 되는 걸까요?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걸까요? 영화 속 인물들은 죽어 없어지지 못하고, 의도치 않게 사후세계에 다녀오고, 사랑했던 이의 유령과 맞닥뜨리거나,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자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죽음이란 언제나 피상적인 이야기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숨어있는 경험이지요. 아는 사람이며 모르는 사람이며 나까지도 언제고 죽는다는 사실은 당연하면서도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니 다락방의 유령을 마주했을 때, 혹은 다채로운 색으로 빛나는 죽음의 세계에서 깨어난 어느 날 놀라지 않으려면 우리는 마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기획과 마주치신 여러분들께 조심스레 바라봅니다. 아주 잠시나마, 되도록 구체적인 죽음을 상상하셨기를. 그리고 또 살아가기를요. 

  삶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이 그 끝을 상정하기 때문에 비로소 의미를 갖지만, 실제로 그것이 어떤 경험인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끝 이후에 우리는 어디로 갈까?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죽음은 언제나 삶 곳곳에 도사리지만 사람들은 태평스레 잊고는 한다. 결국 우리가 죽음의 존재를 깨닫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그것을 마주하는 순간뿐이다. 
  죽어있는 것들, 새 삶을 얻은 사람들, 죽은 자를 맞이하는 순간들. 이들은 때로 이들만의 세계를 이룬다. 산 자와 함께한다. 그들을 쫓아낸다. 삶을 반문한다. 여기 당신이 상상했던 죽음이 있다. 그다지 근사하고 평화롭지 못할지라도. 때로 쓸쓸하고 아예 우스꽝스러울지라도!
  육신이 6피트 아래에 묻히고 나서야 시작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살점이 썩어가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이 영화들은 죽은 자의 시선에서 이들이 어떻게 사라지고 잊히는가, 혹은 기억되는가, 그리고 마침내 어떻게 죽어가는가를 질문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그럴지도 모르지. 허나 죽음은 말을 할 줄 안다. 그것이 말을 걸어온다. 죽음이 있어서 삶이 존재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면, 오로지 죽음을 공부하는 때만이 우리가 살아있는 순간이야, 하고.

  

화요일 2시

  평화롭던 일상에 불청객이 침입하며 불쾌해진 유령들의 심정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행복한 부부인 아담과 바바라는 사고로 인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여 유령이 되고, 저택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된다. 이들은 제 죽음조차 자각하지 못했던 ‘초보 유령’이고, 사후세계는 낯선 것투성이다. 부부의 저택에는 한 가족이 이사 오게 되고, 아담과 바바라는 이들에게 겁을 줘서 내쫓고 본래의 일상을 지키려고 하지만 이는 쉽지 않다. 자칭 살아있는 것 퇴치하기의 전문가라는 비틀쥬스는 시종일관 불쾌한 장난을 치고 산만하며 믿음직하지 못하다.
  부부가 가족들에게 겁을 주기 위하여 행하는 각종 장난들에서는 팀 버튼 감독의 개성이 잘 돋보인다. 그로테스크한 분장은 공포영화의 기괴한 장면들을 연상시키지만 유쾌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어 불쾌하지 않다. 죽음, 신체 훼손 등 보편적으로 공포스럽고 무거운 소재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유령이라는 대상을 통해 과감하게 일상 속으로 끌고 들어온다. 또한 저택과 사후세계를 넘나들며 나오는 일그러진 세트장에서는 감독 특유의 미장센이 드러난다. 
  그리고 저택으로 이사 온 가족 중 딸인 리디아는 팀 버튼 감독의 영화들에서 흔히 등장하는 별종 캐릭터다. 어둡고 칙칙한 성격에 사람들 사이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소위 말하는 비정상, 혹은 아웃사이더. 하지만 리디아의 이런 면은 공교롭게도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유령들을 볼 수 있도록 한다. 리디아는 아담과 바바라의 친구가 되고, 자신들의 존재를 들켜 살아있는 인간에 의해 소환당해 혼령으로 변할 위기에 빠진 부부를 구한다. 부부 또한 비틀쥬스와 결혼할 뻔한 리디아를 우여곡절 끝에 구해낸다. 이처럼 주류에 속하지 않은 변두리 인간의 삶이란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가능성을 찾기 위한 한 갈래의 길일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희미한 빛을 내는 유령을, 자기만의 다락방에서 발견할지도 모를 테니.

글쓴이 팥죽이    

화요일 5시

   무인도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던 주인공 ‘행크’는 해변에 떠밀려온 사람을 보고 달려간다. 그는 시체 ‘매니‘. 매니는 움직이질 못한다. 그저 몸속에 남은 가스를 배출할 뿐. 시체인데 이름이 ‘매니’인지 어떻게 아냐고? 그건 어느날 시체가 말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행크는 매니를 타고 무인도 탈출을 시도한다. 매니의 몸은 선체요 그의 가스(그러니까, 방귀라는 말이다.)는 연료니, 정신을 잃었다 깬 둘은 또 다른 땅에 당도한다. 여전히 인적은 보이지 않고, 행크와 매니는 둘만의 생활을 꾸려가기에 이른다. 
  행크는 시체 매니를 이고 나른다. 그러면서 매니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 쓰레기, 죽음, 사랑. 이것들은 왜 버려진 거지? 필요 없으니까. 필요 없다니? 망가지고, 비었고, 쓸모없고, 냄새나고, 낡았으니까. 그렇다면 죽은 사람이란 쓰레기랑 비슷하구나. 그렇게 말하지 마!  상상해 봐, 버스에서 너는 한 여자를 마주친 거야. 그리고 말을 걸어, 자. 행크, 이게 무슨 느낌이지? 심장이 뛰어! 둘은 가끔 싸우고, 자주 웃고, 줄곧 상상한다. 
  마지막 순간에 행크는 사람들을 찾아낸다. 놀랍게도 그는 짝사랑하던 사라의 뒷마당에 있다. 그 순간부터 매니는 입을 다문다. 사라와, 경찰과, 뒷마당에 무인도 생존자가 쳐들어온 이 놀라운 사건을 취재하러 온 기자가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에. 모든 일이 그저 행크의 상상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행크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행크는 매니에게 모든 이야길 해주었다. 속으로만 하던 상상부터, 내밀하고 추한 비밀까지. 그가 매니와 나누지 않은 것 하나는, 여전히 지저분하게도, 방귀였다. 그런데 그는 사람들 앞에서 방귀를 뀐다. 매니는 말했다. 지저분하고 추하고, 속에 품고만 있던 죽은 것을 꺼낸대도 아무렇지 않을 사람 한 명만 있다면 세상이 덜 외로울 거라고. 이때 이후로 행크는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손목에 수갑을 차는 것도. 그는 매니에게 말 걸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 영화는 지저분하다. 시체는 방귀를 뀌고, 조난된 인간은 시체가 뱉는 물을 마시고, 똥을 밟고, 그 위에 넘어지고, 시체와 입을 맞춘다. (인공호흡에 가깝긴 했다지만.) 그리고 산 자도 방귀를 뀐다. 마지막에, 매니는 다시 가스를 내뿜으며 바다 저편으로 떠나간다. 그래, 마지막까지 더럽고 우스꽝스럽다. 적어도 행크는 이제 괜찮다. 내 가장 추하고 숨기고 싶고, 부끄러운 부분을 내보일 줄 알게 됐으니까. 더는 내가 부끄럽지 않고, 그래서 외롭지 않으니까. 

어느새 6월의 첫 편지로 찾아뵙게 되었네요. 일 년의 반이 가깝게 흘렀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빠르게 흐르는 나날입니다...⏳ 주말은 잘 보내셨는지요? 날이 본격적으로 더워져서 많이 지치실 것 같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휴식과 일상의 균형을 잘 맞춰 보아요. 

시네마떼끄 정기 상영이 끝났기에, 이번 주부터 한 달간은 이전 기획과 뉴스레터 특집편으로 구성됩니다. 학기 초에 상영해서 편지로 발송되지 못했던 기획 두 개 중 첫번째를 들고 왔어요. 이미 상영은 끝났지만, 전하는 것만으로 의미있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 봅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칠까 합니다. 내일은 현충일이네요. 사이렌이 울리면 다함께 묵념을 하고 또 하루를 보내게 되겠지요? 남은 하루 잘 보내시고, 공휴일인 내일도 무탈히 지나가기를 바랄게요. 

그럼 수요일에 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