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몸으로 태어나 옷을 입고 죽는다.
사람들에게 눈을 감고 10초를 세어 보라고 하면 제각기 조금씩 다른 순간에 손을 든다. 인간은 심리적 시간과 물리적 시간을 다르게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 차이로 인해 우리는 행복한 순간은 빠르게, 지루한 순간은 길게 인식한다. 한편 심리적 시간의 흐름은 시간을 얼마나 풍부하게 인식하는지에 달려 있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이 어른이 되어서 보낸 휴가보다 길게 느껴지는 이유다.
매일 자정마다 찾아오는 새로운 24시간은 각기 다른 주인을 만나 천차만별의 모습으로 둔갑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의 심리적 시간은 고유하기에 우리는 타인의 시간을 감각할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시간에 갇혀 사는 셈이다. 이때 영화는 우리가 타인의 시간을 엿볼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가 된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연출과 편집을 거쳐 영상화된 타인의 시간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여기 단 하루로 러닝타임을 채우는 영화들이 있다.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는 하루는 얼마나 바쁠까? 24시간, 때로는 그보다 짧은 시간 안에서 사랑을 찾고, 위기가 찾아오고,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긴다.
영화는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시간을 재구성한다. 일과 별로 하루를 쪼개기도 하고, 실시간에 가깝게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거나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주인공의 발걸음에 맞춰 시선을 옮기기도 한다. 각 영화가 시간을 다루는 방법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점이 될 것이다.
자, 이제 주인공들의 하루로 당신을 초대한다. 스크린 뒤 그들의 하루를 엿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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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라이즈
Before Sunrise
리처드 링클레이터 | 1995 | 101’ | 목요일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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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夜は短し歩けよ乙女
유아사 마사아키 | 2017 | 93’ | 목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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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오후
시드니 루멧 | 1975 | 124’ | 금요일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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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원들
Clerks
케빈 스미스 | 1994 | 92’ | 금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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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제시는 지난 몇 주 동안 유레일 패스를 타고 목적 없이 유럽을 여행했다. 그가 지금 가고 있는 마지막 정류장은 비엔나로, 내일 아침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것이다. 파리지엔느 셀린은 부다페스트에서 할머니를 방문했다. 그녀는 현재 소르본느에서 공부를 재개하기 위해 파리로 돌아가고 있다. 제시와 셀린은 부다페스트에서 출발하는 같은 서쪽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다. 그들이 기차에서 짧은 대화를 통해 느끼는 연결 고리는 제시가 마지막 순간에 비엔나에서 그와 함께 기차에서 내려 비엔나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제안하기에 충분한다. 그가 공항에 가기 전에 호텔에 돈이 없었기 때문에 원래 계획대로 도시를 돌아다니고, 파리로 가는 다음 기차에 탑승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편해지면 어느 순간에도 그를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셀린은 동의하고, 비엔나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그들은 삶과 사랑에 대한 철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또한 제시가 왜 유럽에 있었는지, 그들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것, 그들이 함께 미래를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미래가 그들의 현재 삶을 고려하는 것처럼 보일지와 같은 그들의 시간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드라마는 지루한 부분을 잘라낸 인생이라는 히치콕의 말처럼,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의 대화는 곡선을 그리며,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흥미를 더해간다. 대화를 거듭할수록 둘의 캐릭터는 점점 명확해진다. 남자는 스스로 나이를 먹어도 소년같다고 말한다. 죽음을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나 어떻게든 극복할 수 일이라고 생각하고 영적인 것에 회의적이다. 반면 여자는 스스로 노파같다고 말한다. 죽음이 항상 도처에 있음을 신경쓰고 있으며 영적인 것에 마음이 쏠린다. 둘이 헤어지고 나서 남자는 반년후에 만날 것을 마냥 확신하고 있을 것만 같고, 여자는 연극에 가지 못한 것처럼 반년 후에 만나지 못할 것을 짐작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두 남녀간의 만남은 영화 속에서 로맨틱하게 그려지는데, 만남이 ’하루‘에 이루어졌기에 그런지도 모른다.
대사가 아주 많은 로맨스 영화이며, 두 주인공이 비엔나 거리를 돌아다니는 일종의 로드 무비와도 같은 느낌이 난다. 그리고 그 장소 사이사이에는 그들에게 맞는 우연들이 나타난다.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과연 이 우연한 만남의 끝이 어떻게 될지 감이 오지 않는데, 우연이 연속되고 미래는 알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매력으로 작동하는 중추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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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사 마사아키 | 2017 | 93’
목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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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적이고 낙천적인 검은 머리의 신입생, 아가씨. 그녀는 학교 축제를 겸한 운명의 밤을 그냥 흘려보내지 못하고, 긴 밤을 걸어 모험을 떠나기로 한다. 칵테일 바에서 춘화를 파는 남성을 만나는가 하면, 밤 거리의 유명인인 이백을 만나 술 대결을 벌이기도, 헌책 축제에 들러 그녀가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을 찾으려다 헌책의 신을 도와 책들을 풀어주기도 하고. 학교 축제에서는 요상한 시나리오의 연극 무대에 오르기까지 하는…, 그 밤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아가씨.
그리고 그런 아가씨의 모험을 뒤에서 쫓는, 그녀를 짝사랑하는 어느 선배. 그녀와 운명을 가장한 만남을 늘 계획하던 그는, 그 운명의 밤에도 그녀와의 운명에 한발짝 다가가고자 그녀의 모험을 뒤쫓는다. 칵테일 바에 가려다 춘화 파는 남성에게 잡히는가 하면, 이백과 그녀의 술 대결을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헌책 축제에서는 그녀가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을 찾아 주려 매운 음식을 들이키기도 한다. 요상한 시나리오의 연극에 난입해서는 드디어 그녀와 마주보기에 성공하지만…, 또 다시 멀어지는 그녀를 다시금 떠나보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간 선배와 때마침 유행하기 시작한 한밤의 감기. 한밤의 감기 유행을 끝내기 위해 향한 이백의 집에서, 아가씨는 끝없이 걷는 그녀를 어디까지고 따라 오는 선배의 존재를 떠올리게 되고, 이 밤 여행의 종착역인 선배에게로 향하기로 결심하고….
길고 긴 밤을 끝없이 걸어간 아가씨는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는 무수한 우연을 지나, 끝내 선배와 이어지게 된다.
영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한 아가씨와, 그녀를 짝사랑하는 선배의 교토에서의 하룻밤 모험을 담고 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미묘하게 넘나들며 마치 꿈처럼, 혹은 술에 취한 것처럼 흘러가는 영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어느 순간 관객들도 아가씨의 모험에 동행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 독특한 스토리를 뒷받침하는 영화의 독특한 그림체와 색감은, 한층 더 관객들이 그들의 모험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러나, 이 영화가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은 영화를 단순히 흥미로운 이야기로만 치부하기 어렵게 만든다. 성추행에 가까운 상황에서도 웃으며 받아치고, 성희롱을 하는 상대를 오히려 동정하기까지 하는 아가씨의 태도는 시대적 배경, 영화의 판타지적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요소다. 이 영화를 가볍게 즐기기면서도, 이러한 부분을 염두에 두고 비판적으로 감상하면 좋겠다.
글쓴이 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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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루멧 | 1975 | 124’
금요일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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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강도를 결심한 서니와 샐, 스티브는 브루클린의 한 은행에 들어간다. 총으로 직원들을 위협하고 주머니에 돈을 담으라 협박하지만 은행 강도 작업은 계획대로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스티브는 두려움에 범죄를 그만두고, 뒤늦게 확인한 은행 창고는 텅 비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범죄는 발각되어 은행 앞은 경찰과 FBI, 시민들로 가득 차게 된다. 결국 서니는 은행의 직원들을 인질 삼아 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요구한다. <뜨거운 오후>는 그들의 은행 강도 범죄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 모든 순간을 담고 있다.
<뜨거운 오후>는 1972년 브루클린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범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추격전 하나 등장하지 않지만, 촘촘하게 짜여진 인물들의 관계와 그들의 대화는 관객을 더운 여름날 브루클린에서 발생한 은행 강도 사건에 점점 빠져들게 만든다.
<뜨거운 오후>의 서니는 독특한 캐릭터이다. 범죄자인 그는 아픈 인질들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고, 음식을 가져온 배달부에게 돈을 건넨다. 점점 위태로워지는 인질극과 땀을 줄줄 흘린 채 불안해하는 서니의 모습은 영화 속 흔한 ‘악당’과는 거리가 있다. 은행 안에서 강도극을 벌이고 있는 하루 동안 서니는 은행 밖의 경찰과, 자신의 가족과, 그리고 시민(사회)과 이야기한다. 과거로의 회상 하나 없이 대화를 통해 사건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느리지만 꾸준히 나아가는 영화의 전개는 관객들로 하여금 실제 현장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글쓴이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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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스미스 | 1994 | 92’
금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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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비번 날에 출근을 하게 된 불행한 편의점 직원이다. 그는 오전부터 온갖 종류의 요구를 하는 손님들과 마주치고, 여자친구와 말싸움을 벌인다. 옆 비디오 가게의 친구인 랜달과 편의점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단테는 곧 전 여자친구의 약혼 소식을 듣는다.
<점원들>은 계속해서 꼬이기만 하는 단테의 어느 하루를 그리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의 주 무대인 단테의 하루는 쉽지 않다. 비번 날 출근을 하는 것으로 모자라, 하나뿐인 하키 공은 12분만에 잃어버리고, 옛 여자친구의 약혼 소식을 들은 것과 동시에 억울한 벌금을 물게 된다. 그러나 단테의 ‘운수 좋은 날’은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 가게 주인은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고, 단테는 결국 편의점 카운터를 계속해서 지키게 된다. 단테가 편의점 문을 여는 순간부터 셔터를 내릴 때까지, <점원들>은 그 모든 순간을 영화로 그려내고 있다.
<점원들>은 하루 동안 단테가 겪은 다양한 사건 사고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건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챕터명은 <점원들>을 하나의 장편 영화가 아닌 짧은 단편 클립들의 연속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각 사건(챕터)들은 전혀 따로 놀지 않는다. 황당하지만 큰 맥락을 벗어나지 않는 사건의 연속은 관객을 자연스럽게 단테의 하루로 끌어들인다. <점원들>은 거창하거나 화려한 영화가 아니다. 주연 캐릭터들의 대화가 영화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편의점 카운터 뒤에서 나누는 시시콜콜한 이야기, 그러나 절대 지루하지 않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점원들>만의 매력을 느껴 보자.
글쓴이 토마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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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깜짝할 새 하루가 벌써... ⏱️
여러분, 안녕하세요. <휴대-영화>의 눙입니다.
이번 주 기획, <24시간이 모자라!>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영화는 무엇인가요? 저는 요번 기획안 세미나에 참여해서 모든 영화를 감상했는데요!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재미있는 영화들 뿐이었답니다. 술 마시는 정신 없는 하루들이 절대적으로 재미있는 것 같긴 했지만, 그럼에도 제일 마음에 들었던 영화는…, <점원들>입니다.
빈번한 장소 변화나 스펙타클한 사건 대신, 그저 나오는 인물들 간의 재치 있는 대화와 다양한 인간들이 나오는 것이 오히려 더 재미있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그다지 깜짝 놀랄 만한 하루는 아니지만, 적당히 있을 법한 하루가 재미있는 대본 덕에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여러분이 제일 관심 있게 본 영화는 무엇인가요? 부디 금요일까지 남은 영화들 편하게 감상하러 와 주시고, 맘에 깊이 박히는 영화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왔는데, 다들 우산 잘 챙기셨나요? 저는… 어제부터 비가 올 거라고 생각만 하고 우산을 안 챙겨서…, 노트북 담긴 가방을 품에 안고 뛰어다녔답니다. 😓 목숨보다 소중한 전자기기들이라니…. 여하튼,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담으로..., 여러분은 날씨에 맞는 영화를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지금까지는 딱히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문득 뉴스레터를 쓰다가 비오는 날 어울리는 영화가 뭐가 있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일단 오늘 떠오르는 영화는..., <이웃집 토토로>일까요? 비오는 날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생각나는 날인 것 같습니다. ☂️ 비오는 날 여러분이 떠올리는 영화는 무엇일지도 궁금해지네요!
남은 한 주 중에도 비 예보가 여러 번 있습니다. 🥲 여러분은 가방 한켠에 꼭 우산을 들고 다니시며 비 맞는 일 없으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떼와 함께하는 남은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
이화 시네마떼끄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343호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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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시네마떼끄
ewhacinemathequ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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