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몸으로 태어나 옷을 입고 죽는다.
사람들에게 눈을 감고 10초를 세어 보라고 하면 제각기 조금씩 다른 순간에 손을 든다. 인간은 심리적 시간과 물리적 시간을 다르게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 차이로 인해 우리는 행복한 순간은 빠르게, 지루한 순간은 길게 인식한다. 한편 심리적 시간의 흐름은 시간을 얼마나 풍부하게 인식하는지에 달려 있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이 어른이 되어서 보낸 휴가보다 길게 느껴지는 이유다.
매일 자정마다 찾아오는 새로운 24시간은 각기 다른 주인을 만나 천차만별의 모습으로 둔갑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의 심리적 시간은 고유하기에 우리는 타인의 시간을 감각할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시간에 갇혀 사는 셈이다. 이때 영화는 우리가 타인의 시간을 엿볼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가 된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연출과 편집을 거쳐 영상화된 타인의 시간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여기 단 하루로 러닝타임을 채우는 영화들이 있다.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는 하루는 얼마나 바쁠까? 24시간, 때로는 그보다 짧은 시간 안에서 사랑을 찾고, 위기가 찾아오고,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긴다.
영화는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시간을 재구성한다. 일과 별로 하루를 쪼개기도 하고, 실시간에 가깝게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거나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주인공의 발걸음에 맞춰 시선을 옮기기도 한다. 각 영화가 시간을 다루는 방법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점이 될 것이다.
자, 이제 주인공들의 하루로 당신을 초대한다. 스크린 뒤 그들의 하루를 엿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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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
Cléo de 5 à 7
아녜스 바르다 | 1962 | 90’ | 화요일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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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모터스
Holy Motors
레오 카락스 | 2012 | 115’ | 화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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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스의 해방
존 휴즈 | 1986 | 98’ | 수요일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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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밤
Night On Earth
짐 자무쉬 | 1991 | 129’ | 수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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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
Cléo de 5 à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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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는 젊은 가수인 클레오가 자신의 병원 검진 결과를 기다리는 2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주인공인 클레오가 자신이 큰 병에 걸릴 것이라는 타로카드 점괘를 받으며 시작된다. 그녀는 불운을 안겨주는 요소들을 피하고자 노력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간다. 밀려오는 압박에 클레오는 충동적인 외출을 결심하고, 이후 그녀는 우연히 복귀를 앞둔 한 군인을 만나게 된다.
영화 속 클레오의 2시간은 단조롭고 조용하다. 그러나 클레오 자신과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관객은 묘한 불안감 속에 갇히게 된다.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는 죽음에 관한 불안을 해소하는 이야기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 꺼지지 않는 불안을 우리는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익숙한 사람들은 클레오의 불안을 쉽게 해소해 주지 못한다. 언제나 바쁜 애인에게는 자신이 아프다는 이야기조차 쉽사리 꺼내지 못하고, 음악가들과 함께하는 노래 연습도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한다. 클레오는 결국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홀로 거리로 나오게 된다. 길거리의 행인들, 오랜만에 만난 친구, 우연히 만난 새로운 사람… 바쁘게 움직이는 일상의 그림자 속에 숨겨져 있던 요소들을 마주하며, 클레오는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무심코 지나치고 있었던 작은 순간들이 모여 클레오의 새로운 행복이 된 것이다.
클레오의 불안이 사라진 순간은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우연으로 시작된 만남은 최악에 가까웠던 클레오의 하루를 한순간에 행복으로 끌어 올린다. 클레오, 그리고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는 죽음과 불안에서 영원히 도망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더불어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을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선글라스를 썼기 때문에 세상이 온통 까맣게 보였다고 말하는 영화 속 등장인물처럼, 결국 행복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냐에 달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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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카락스 | 2012 | 115’
화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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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집을 나서는 오스카는 평범한 중년 남성처럼 보인다. 거대한 리무진에 올라탄 그는 그의 특별한 하루를 시작한다. 오스카는 얼굴에 살점을 붙이고 가발을 쓰는가 하면, 손톱을 덕지덕지 붙이며 온몸을 변형시킨 채, 그가 변장한 다른 인물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부랑자 노인이 되어 다리 밑에서 구걸하고 모션캡처 배우가 되어 액션 연기를 펼치며, 괴이한 몰골의 남성이 되어 난동을 부리고 모델을 납치하기도 한다. 때로는 살인을 저지르고,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어 딸과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죽어가는 남자의 마지막 순간을 연기하기도 한다.
“Who were we?” 그날 밤 그의 마지막 ‘역할’을 앞두고, 그는 우연히 옛 연인을 만나 과거의 감정을 나누며 서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다시 리무진에 올라타 하루의 끝으로 향하는 오스카는 집으로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렇게 향한 마지막 집조차 또 다른 무대일 뿐이다. 그의 하루가 끝나는 순간, ‘살고 싶다’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운전자 셀린은 차를 몰아 ‘Holy Motors’ 차고로 향한다. 모든 리무진이 주차되고 모두가 퇴근한 깊은 밤, 차고에 모인 리무진들의 대화와 함께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 <홀리 모터스>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을 비판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연기가 좋아 역할극을 시작했던 오스카가 정작 연기를 할수록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은, 영화가 현실의 본질을 드러내는 속성을 잃고 단순히 현상만 나열하는 매체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담고 있다. 하루가 끝난 뒤 배우들을 실어나르던 리무진들이 차고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이야기하는 장면 또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영화 산업 자체가 맞이할 존폐 위기를 은유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리무진을 타고 이동하며 수많은 ‘역할’을 수행하는 오스카의 모습은, 언뜻 보면 매번 완벽한 연기로 주어진 역할을 해내는 것 같지만, 정작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모습이다. 이러한 오스카의 모습은 곧,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 내지만, 정작 자신에 대한 숙고와 성찰은 부족한 현대인들에 대한 비판을 드러낸다고도 볼 수 있다.
글쓴이 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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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페리스의 해방(Ferris Bueller's Day Off, 1986)」은 고등학생 페리스 뷰엘러가 학교를 결석하고 친구들과 함께 짧지만 강렬한 하루를 보내며 벌어지는 사건을 유쾌하게 그린 청춘 코미디 영화다. 주인공 페리스는 영리하고 재치 있으며, 어른들의 눈을 피해 자유를 추구하는 인물이다. 영화는 그가 병든 척하며 부모를 속이고 하루 동안의 ‘해방’을 계획하면서 시작된다. 페리스는 단짝 친구인 카메론과 여자친구 슬로언까지 함께 끌어들여, 아침부터 시카고 시내로 향한다. 카메론의 아버지가 아끼는 고급 스포츠카를 몰고 도시 곳곳을 탐험하며, 이들은 박물관, 고급 레스토랑, 야구장 등을 누비고, 심지어 거리 퍼레이드에서는 페리스가 무대에 올라 관중과 함께 노래까지 부른다. 그 모든 장면은 자유로움과 젊음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한편, 이들의 일탈을 막으려는 학교 교장 루니는 페리스가 학교를 빠졌다는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집까지 찾아가지만, 번번이 실패하며 망가지며 웃음을 자아낸다. 또한 페리스의 누나 제니는 동생이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상황에 분노하며 그를 고발하려 하지만, 결국은 그에게 협력하게 된다.
이 하루 동안 가장 큰 내면의 변화를 겪는 인물은 카메론이다. 처음에는 신경질적이고 소극적이던 그는, 결국 아버지의 페라리를 스스로 망가뜨림으로써 그동안 쌓여온 억눌린 감정을 폭발시킨다. 이러한 카메론의 변화는 단순한 분노의 폭발이 아니라, 진정한 ‘성장’이다. 영화 속 진짜 주인공은 어쩌면 페리스가 아니라 카메론일지도 모른다. 그는 억눌린 내면을 직면하고, 두려움과 죄책감을 극복하며 한 걸음 성숙해진다. 이는 많은 청소년이 겪는 성장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페리스는 영화 내내 관객을 바라보며 직접 말을 건다. 이 ‘4벽 깨기(Breaking the 4th wall)’ 연출은 주인공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며, 관객을 마치 그의 친구처럼 느끼게 만든다. 페리스는 관객에게 “삶은 아주 빨리 지나가니까 가끔 멈춰서 돌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카메론은 그 말처럼 단지 멈춰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하는’ 인물이다. 그는 하루의 모험을 통해 타인의 통제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용기를 배운다. 이 영화는 단순한 청소년 코미디를 넘어, 억압된 제도에서 벗어나 진짜 자아를 찾아가는 청춘들의 성장을 그린다. 페리스는 자유로운 삶의 상징이며, 카메론은 변화의 고통을 감내하는 자아의 대표이다. 감춰진 고민을 끌어내고 해방시키는 방식이 유쾌하고 위트 있게 그려져, 무게감 없이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글쓴이 해그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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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쉬 | 1991 | 129’
수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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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쟁이 택시 기사에게 시달려 본 경험이 있다면 공감할 영화이다.
<지상의 밤>은 5개 도시의 택시를 배경으로 하는 옴니버스식 영화다. 로스앤젤레스, 뉴욕, 파리, 로마, 헬싱키에서 택시 기사들은 손님을 태우고 크고 작은 사건을 겪으며 어둠 속을 달린다. 5대의 택시는 선글라스와 담배라는 매개를 통해 은근한 연결을 맺는다.
로스앤젤레스의 밤. 한 여자가 택시에 올라탄다. 그녀는 캐스팅 매니저로, 영화에 출연할 배우를 찾는 중이었다. 껄렁한 매력을 가진 택시 기사를 지켜보던 그녀는 목적지에 도착하자 택시 기사에게 캐스팅 제안을 한다. 하지만 택시 기사는 현재 자기 일에 만족하고, 정비공이 되고 싶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뉴욕의 밤. 택시를 간절하게 찾는 한 남자 앞에 멈춰선 택시. 기사는 동독 출신의 광대로, 운전이 서툴렀다. 보다 못한 남자는 자신이 운전하겠다며 기사와 자리를 바꾼다. 맨해튼에서 브루클린까지, 둘은 쉴 새 없이 이야기한다. 파리의 밤. 손님들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기사는 손님들을 길바닥에 내리고, 맹인 여자를 태운다. 기사는 무례할 정도로 맹인의 삶에 대해 캐묻는다. 맹인 여자는 맹인들도 고유한 방법으로 세상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받아친다. 로마의 밤. 수다쟁이 기사가 주교를 태운다. 기사는 갑자기 고해성사를 하겠다며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지병이 있는 주교는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끼고 약을 먹으려 하지만 약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만다. 약을 먹지 못한 주교는 정신을 잃는다. 기절한 주교를 뒤늦게 발견한 기사는 주교를 몰래 공원 의자에 앉혀놓고 자리를 뜬다. 헬싱키의 밤. 술에 취한 세 남자가 택시에 탄다. 가장 심하게 취한 한 남자는 오늘 직장에서 해고당했다고 한다. 기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결혼부터 아이를 잃기까지. 어느덧 손님들은 기사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5개의 이야기는 하나의 영화로 묶기엔 너무 다른 듯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택시라는 특수한 공간에서만 가능한 예상치 못한 만남이 이 교통수단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10년 후에 다시 만나도 알아보지 못할 사람이기에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지루한 어느 날 밤에 생각해 보자. 지금 이 순간 어느 택시에서 어떤 만남과 대화가 벌어지고 있을지.
글쓴이 순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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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깜짝할 새 하루가 벌써... ⏱️
여러분, 안녕하세요. <휴대-영화>의 눙입니다.
비가 오고 찾아온 서늘한 날씨와 맑은 하늘. 이제 진짜, 진짜로 가을이 찾아온 게 실감이 납니다. 곧 단풍이 보이면, 이제 진짜 한 해가 가고 있구나를 느끼게 될까요?
여러분. 이 짧고 맑은 계절을 놓치지 말고 즐기시길 바랍니다. 🍂
이번 주의 기획은 <24시간이 모자라>입니다. 여러분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여러분의 24시간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자기 자신의 하루는 전부 기억할 수도, 바라볼 수도 없지만, 여기 영화 속 인물들의 하루는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획안은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영화들이 담긴 덕에, 시대와 장르를 뛰어넘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답니다! 낭만이 넘치는 하루도 있고, 나도 같이 취해 볼 수 있는 하루, 흔하디 흔한 하루와, 흥미진진한 하루까지…. 하루를 보내는 인물들과, 그 하루를 관찰하는 것은 역시, 재미있을 것 같죠.
다양한 사람들의 하루를 구경하거나 장르에 상관없이 다양한 영화를 접하고 싶은 한 주라면? 이번 주, 시떼에 방문해 영화 몇 편 감상하시는 것은 어떨까요?
여러분은 영화관 가는 것을 즐기시나요? 영화를 반드시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신가요? 저는 대체로 영화관 갈 시간이 없어서 OTT를 통해 영화를 보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서라도 영화관에서 봐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영화들이 있답니다. 최근 재개봉한 영화 중 하나를 너무 좋아해서..., 아이맥스로는 못 보았지만, 영화관에 가서 보았는데요! 사운드와, 공간감과, 무엇보다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본다는, 은연 중의 사회적 교류가 일어나는 공간에서 본다는 점들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영화관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영화관에서만 보아야겠다고 생각한 영화가 있으신가요?
여러분, 이번 한 주를 보내면, 드디어, 개강한 지 한 달이 됩니다! 시간이 너무 빠르네요…. 자신이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고 생각하시든, 나름대로 만족하는 한 달이었든..., 한 달을 버틴 자신에게 응원을 건네는 한 주를 보내는 건 어떨까요!
이번 한 주도 영화와 시떼와 함께하는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
이화 시네마떼끄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343호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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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시네마떼끄
ewhacinemathequ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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