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몸으로 태어나 옷을 입고 죽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벌거벗고 살 수 없다. 옷을 입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일단 심하게 춥거나 심하게 더울 것이다. 날카로운 돌부리나 유리조각에 몸을 긁혀 다칠지도 모른다. 사람을 얼굴 대신 옷으로 기억하는 지인이 있다면 그는 당신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뭐, 아마 그러기 전에 당황한 공권력의 손에 붙잡혀 공연음란죄 위반으로 유치장에 끌려가는 게 먼저겠지만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은 옷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옷은 인간의 새로운 가죽이다. 동물이 제각기 다른 모피를 가지는 것처럼 우리도 옷을 입는다. 우리는 고통을 막기 위해 입고, 꾸미기 위해 입고, 때로는 그저 입기 위해 입는다. 옷은 살을 에는 추위와 발을 찌르는 가시로부터 우릴 보호해 주고,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나’를 만들어주고, 때로는 ‘우리’와 그 밖의 것을 구분하게 해주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패션은 우리를 숨기고, 드러내고, 다시 만든다.
시대와 패션은 분리할 수 없다. 패션은 시대를 반영한다. 어떨 때는 지배 권력의 무기가, 어떨 때는 반항아들의 횃불이 되어 패러다임에 충성하고 또 반항한다. 그것이 위로 흐르든, 아래로 흐르든 간에 패션에는 강한 열정이 녹아 있다. 따라서 고통을 수반한다. 패러다임을 거스르는 패션은 탄압과 편견과 거부를 마주하고, 패러다임에 충실한 패션은 혁명과 변혁과 익숙함과 싸워야 한다. 모든 패션은 가시덩굴로 가득 찬 고행길. Fashion은 곧 Passion이다.
Fashion, Passion, 패션.
열정과 고난과 유행을 전부 포괄하는 ‘패션’의 세계. 어디 한번 입어 보자.
|
|
|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Mrs. Harris Goes to Paris
안소니 파비안 | 2022 | 115’ | 목요일 2시
|
|
|
은발의 패셔니스타
Advanced Style
리나 플리오플리테 | 2014 | 72’ | 목요일 5시
|
|
|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타케우치 히데키 | 2008 | 109’ | 금요일 2시
|
|
|
불량공주 모모코
下妻物語: Kamikaze Girls
나카시마 테츠야 | 2004 | 103’ | 금요일 5시
|
|
|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Mrs. Harris Goes to Paris
|
|
|
1957년 런던에 살고 있는 해리스 부인은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런던에서 청소부와 가정부로 살아간다. 그녀는 특유의 다정함과 꼼꼼함으로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는 따뜻한 청소부였고 그녀에게 다정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반면에 그녀의 다정함을 이용하여 무례한 사람들도 더러 있다. 평생을 남편을 기다리며 열심히 살아왔던 그녀는 남편의 비보를 듣고 더 이상 자신의 인생에 무엇이 남았는지 되돌아보게 되고 슬픔에 빠지는 대신 일생을 열심히 살아왔던 자신에게 꿈만 같던 디올 드레스를 선물하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는 바로 그 막연한 꿈에 관한 이야기이자, 삶과 역사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자, 로맨틱한 파리의 이야기이자, 경험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바로 우리가 배워야할 삶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해리스 부인의 평온한 일상 속에 찾아온 비보로 시작된다. 그렇지만 그녀는 비통함 속에 머물러 있지 않고, 가슴속에 품었던 막연한 꿈의 첫 장을 서술하려 한다. 그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변화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으며 자신의 에고(ego) 속으로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스며들게 한다.
또한 그녀의 행보는 이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귀한 영감으로 돌아간다. 사랑에 섣부른 젊은 연인.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기회를 놓치며 살아가는 여인. 방향성의 변화에 대해 고민하는 청년. 막연한 꿈을 드러내지고 않고 꼭꼭 숨겨왔던 수많은 사람들. 그녀의 꿈을 향한 한 걸음 한 걸음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용기를 갖고 스스로를 변화시키게 한다.
|
|
|
리나 플리오플리테 | 2014 | 72’
목요일 5시
|
|
|
리나 플리오플리테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은발의 패셔니스타> (원제 Advanced Style) 은 미국의 사진 작가이자 패션 블로거인 아리 세스 코헨의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영화는 패션의 성지, 뉴욕을 살아가는 여성 노인들의 패션과 그들의 삶에서 옷이 가지는 의미를 조명하며 나이에 영향받지 않고 퇴색하지 않는 스타일의 미학을 제시한다.
‘노화’와 ‘노인’은 자주 부정적인 이미지와 연결된다. 추함, 추레함, 촌스러움, 더러움… 사람들은 노화를 두려워하고 쉽게 노인을 미워한다. 많은 미디어에서 노년은 지워져야 할 것, 조명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정의되고 늙은 사람들을 향한 이미지는 부정적으로 굳어졌다. 사람들은 진짜 노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래, 우리는 노년의 삶도 열정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은발의 패셔니스타>는 멋쟁이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추하지도 추레하지도 않은 노년에 대한 이야기다. 미디어의 좁은 프레임에 맞서, 세상을 향해 당당한 자신을 내보이는 패셔니스타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나이에 굴하지 않고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그들의 인생과, 삶을 대하는 태도로서 기능하는 스타일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패션을 향한 그들의 열정과 거기서 우러나오는 강렬한 에너지는 지금껏 미디어가 보여준 노년에 대한 편견과 노인을 묘사하는 규범을 깨부순다. 다큐멘터리는 미디어의 프레임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비출 뿐만 아니라, 그걸 지켜보는 우리에게도 늙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세지를 남긴다.
You look gorgeous! 자신만의 삶과 거기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열정. 노화는 더이상 쇠퇴와 퇴색의 대명사가 아니다. 긴 삶과 노화를 겪어 보았기 때문에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진정한 나 자신이 있다. 어쩌면 열정을 잊지 않은 은발의 패션이야말로 진정한 Advanced Style이 아닐까.
글쓴이 동탁
|
|
|
타케우치 히데키 | 2008 | 109’
금요일 2시
|
|
|
영화에서 패션이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종합 예술에서의 시각적 부분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그 자체로 영화를 관통하는 소재가 되는 등 패션은 다양한 형태로 영화에 기여한다. 타케우치 히데키의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의 경우, 포스터에서부터 여자 주인공의 드레스가 시선을 강탈한다. 실제로 스물다섯 벌의 의상을 갈아입으며 촬영했다는 아야세 하루카가 맡은 배역은 바로 작중에서 상영되는 흑백 영화의 공주 ‘미유키’.
포스터 속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공주를 운명의 상대처럼 마주보는 남자는 ‘마키노 켄지(사카구치 켄타로 분)’이다. 미유키와 대비되게 평범한 양복 차림인 켄지는 실제로도 그녀보다는 다소 평범한(?) 청년이다. 아직은 허름한 집에서 사는 것도, 영화계에서 일하며 언젠가 꼭 자신의 작품을 찍겠다는 큰 꿈을 꾸는 것도.
그렇게 영화를 사랑하는 켄지의 낙은 관객이 모두 빠져나간 극장에 혼자 남아 영화를 보는 것이다. 어느 날 켄지는 <말괄량이 공주와 명랑쾌활 삼총사>라는 오래된 흑백 필름 영화를 통해 미유키를 만나게 된다.
그 방식은 우리가 아야세 하루카, 또 사카구치 켄타로를 만나는 모양과 사뭇 다르다. 매일 감상하던 필름이 다른 곳에 팔린다는 소식을 들은 켄지는, 폭우가 몰아치는 날 마지막으로 그 작품을 재생한다. 그런데 미유키 공주는 정말로 켄지의 눈앞에 나타나며, 둘은 감정을 싹틔우고 사랑을 키워나가며 한 편의 로맨스를 이룬다.
말 그대로 영화 같은 상황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 아름다운 화면, 그리고 애초에 이것이 ‘영화’라는 사실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타케우치 히데키는 물론, 그가 탄생시킨 또 다른 영화 감독 지망생이 영화에 대해 갖는 애정이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에는 아낌없이 묻어나고 있다. 이쯤에서 흑백과 총천연색을 오가며 세워진 두 시간짜리 꿈과 환상이 묻는다. 켄지에게, 당신에게, 또 세상에서 영화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글쓴이 몽유
|
|
|
나카시마 테츠야 | 2004 | 103’
금요일 5시
|
|
|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는 로리타 패션에 심취한 소녀와 폭주족 양키 소녀의 만남과 우정을 통해, ‘다름’과 ‘진정성’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모모코는 베르사유 궁전에 사는 로코코시대 귀족의 삶을 꿈꾸지만, 태어난 곳은 양아치들이 가득한 도쿄 외곽 동네. 그녀의 삶의 유일한 목적은 18세기 귀족 여성 복장을 재현한 ‘로리타 패션’을 완벽히 즐기는 것. 여타 세속적인 일들이나 친구, 연애, 학교생활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이 사랑하는 로코코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어느 날, 아버지가 팔던 짝퉁 바르사체 옷을 거래하던 모모코는 양키 소녀 이치코를 만나게 된다. 이치코는 폭주족 집단에서 활동하는 거칠고 직설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외모와 성격, 취향이 정반대인 두 소녀는 처음에는 불편한 관계였으나, 여러 계기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영화는 자신의 세계 속에서 ‘홀로‘ 지내던 소녀 모모코가 타인과 함께하며 그의 세계를 이해할 줄 아는 소녀로 성장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린다.
모모코는 로리타 패션을 순수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아간다. 그녀는 이상화 된 세계 속에 자신을 가두지만, 결국 이치코와의 만남을 통해 현실과 연결된다. 이치코는 폭주족 집단 속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사실은 진정한 인간관계를 원하고 있으며, 모모코와의 만남을 통해 꾸밈없는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
<불량공주 모모코> 속 로리타와 양키 패션의 화려한 의상, 감각적인 색감, 코믹한 연출, 만화적인 컷 분헐 등은 영화가 담고있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는 수단이다. 또한 일본의 하위문화를 영화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로리타 패션과 폭주족 문화라는 서로 극단적으로 다른 두 문화가 병치되며 관객들이 주류 사회가 아닌 경계 너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영화는 ‘나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것과, 타인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 사이의 균형을 묻기도 한다. 그렇기에 정반대의 두 소녀가 서로의 삶에 발을 들여놓으며 성장하는 모습은, 진정한 우정이란 서로 같아지는 것이라기보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영화는 현실을 외면하고 환상 속에서만 살려는 욕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누구나 자신만의 환상과 취향을 품고 살지만, 결국 그 환상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글쓴이 홍로 |
|
|
🎥 PASSION...
여러분, 안녕하세요. <휴대-영화>의 눙입니다.
이렇게까지 비가 오는 가을이라니…, 하며 작년 날씨를 검색해 보니, 이맘때 또 엄청난 비가 왔더라구요. 가을이란 이런 거였구나, 하고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하루네요. 😓 하수구에서 역류하는 물, 언덕 타고 내려오는 물, 신발은 축축…, 몸은 으스스하고…. 온갖 물을 다 맞아서 지금 제정신이 아닌데, 여러분은 부디 우산과, 레인부츠로 무장하고, 비를 피하고, 감기도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
여러분은 <패션, 패션, 패션> 기획에서 가장 관심 있게 본 영화가 무엇인가요? 저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인데요. 얼마 전부터 떠도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촬영 목격담과 사진들 덕분에, 또 다시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감을 줄 것만 같아서 설레었던 이유도 있고요! 실제 모델로 알려진 보그 편집장이 얼마 전 은퇴를 한 것도 생각나기도 하고요....
또 한편으로 자꾸만 뉴욕이 생각나는 영화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원래 낭만과 꿈의 도시... 같은 이미지였던 것 같기는 하지만, 영화 속 도시의 모습을 떨칠 수 없는 것이... 영화의 힘이 대단한 것일까요?
역시, 영화로 보는 장소들은 실제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을 드러내 주는 것 같아서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영화로 만난 장소 중, 마음에 깊이 박힌 곳이 있나요? 언젠가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예컨대 <중경삼림>의 에스컬레이터 장소라든가요. 여러분들의 영화에서 만난 꿈의 장소가 어디일지 궁금해지네요....
남은 패션 영화들도 모두 흥미로운 작품들뿐이랍니다. 목요일과 금요일 상영은 오늘 뉴스레터에 담긴 네 편의 작품들이 상영될 예정입니다! 패션과 삶을 외치는 영화를 보러, 시간 나신다면 방문해 주세요!
비가 왔으니, 이제 날이 갑자기 추워지려나요? 오늘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 다들 좋은 영화 많이 감상하고 오시고요! 감기 조심하시고, 남은 한 주도 즐겁게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한 주도 영화와 함께,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이화 시네마떼끄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343호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
|
|
이화 시네마떼끄
ewhacinematheque@gmail.com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