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몸으로 태어나 옷을 입고 죽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벌거벗고 살 수 없다. 옷을 입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일단 심하게 춥거나 심하게 더울 것이다. 날카로운 돌부리나 유리조각에 몸을 긁혀 다칠지도 모른다. 사람을 얼굴 대신 옷으로 기억하는 지인이 있다면 그는 당신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뭐, 아마 그러기 전에 당황한 공권력의 손에 붙잡혀 공연음란죄 위반으로 유치장에 끌려가는 게 먼저겠지만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은 옷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옷은 인간의 새로운 가죽이다. 동물이 제각기 다른 모피를 가지는 것처럼 우리도 옷을 입는다. 우리는 고통을 막기 위해 입고, 꾸미기 위해 입고, 때로는 그저 입기 위해 입는다. 옷은 살을 에는 추위와 발을 찌르는 가시로부터 우릴 보호해 주고,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나’를 만들어주고, 때로는 ‘우리’와 그 밖의 것을 구분하게 해주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패션은 우리를 숨기고, 드러내고, 다시 만든다.
시대와 패션은 분리할 수 없다. 패션은 시대를 반영한다. 어떨 때는 지배 권력의 무기가, 어떨 때는 반항아들의 횃불이 되어 패러다임에 충성하고 또 반항한다. 그것이 위로 흐르든, 아래로 흐르든 간에 패션에는 강한 열정이 녹아 있다. 따라서 고통을 수반한다. 패러다임을 거스르는 패션은 탄압과 편견과 거부를 마주하고, 패러다임에 충실한 패션은 혁명과 변혁과 익숙함과 싸워야 한다. 모든 패션은 가시덩굴로 가득 찬 고행길. Fashion은 곧 Passion이다.
Fashion, Passion, 패션.
열정과 고난과 유행을 전부 포괄하는 ‘패션’의 세계. 어디 한번 입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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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엘라
Cruella
크레이그 질레스피 | 2021 | 134’ | 화요일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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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The Devil Wears Prada
데이비드 프랭클 | 2006 | 109’ | 화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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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타키타니
トニー滝谷
이치카와 준 | 2004 | 76’ | 수요일 2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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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리마스터링
花樣年華
왕가위 | 2000 | 98’ | 수요일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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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그 질레스피 | 2021 | 134’
화요일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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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의 영화 <크루엘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의 악역 크루엘라 드 빌의 삶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영화는 패션을 통해 정체성을 분출하고, 자신을 받아들이며, 권위에 저항하는 크루엘라의 청년기를 조명한다.
에스텔라는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청년이다. 그는 소위 말하는 반골 또는 아웃사이더형 인물로, 어릴 적부터 특출난 재능을 타고 났지만 가진 기질 탓에 사회에 녹아들 수 없었다. 바로네스의 부띠끄에서 일하던 도중, 자신의 삶에 대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 에스텔라는 더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고 긍정할 것을 다짐하며 ‘크루엘라‘로서의 자신을 인정한다.
바로네스 (남작부인) 은 그와 대립쌍을 이루는 인물이다. 그는 기성 질서와 권력을 상징한다. 그의 옷은 열정과 자유를 전부 거세당한 권력과 통제의 도구다. 바로네스는 직원들을 지배하려 들고 그들을 자기 신화의 제물로 삼는다. 그의 패션은 주로 균형과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따른다. 각잡힌 형태의 드레스, 고급스럽고 정제된 색채의 옷은 남작부인의 성향과 기질은 물론 그가 상징하는 정상성과 지배를 표상하는 장치다.
그러나 크루엘라의 옷은 다르다. 그의 패션은 급진적이고, 도발적이며, 이른바 ‘펑크’다. 그는 남작부인과 같은 사람들이 주도하는 주류 패션 질서를 거부하며 규칙의 틀을 해체한다. 특히 쓰레기 운반차에서 쓰레기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퍼포먼스는 크루엘라의 펑크 록커적인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남작부인으로 대표되는 패션 업계를 향한 도전이자 일종의 반달리즘 행위다.
펑크 패션 문화는 크루엘라의 작중 배경과 같은 1970년대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펑크란 아직 미성숙한 풋내기 젊은이, 불량소년, 반골 기질을 가진 사람 등을 의미하는 은어다. 그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펑크 스타일이란 기존의 관습적/전통적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질서와 균형을 무시하는 일종의 반달리즘적 패션 문화라고 할 수 있겠다.
펑크 패션은 냉전은 일단락 되었지만 여전히 두 체제 간의 경쟁이 극심했던 1970년대의 산물이다. 당시 세계는 거대한 규모의 불황을 겪고 있었고, 영국 사람들에게도 실업과 실직은 더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이 패션의 향유자들은 주로 불황으로 인해 자본주의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물질만능주의적인 태도에 반감을 가졌으며, 바로 전 세대 유행의 선도자였던 히피들이 그랬던 것처럼 주류 질서를 따르길 거부했다. 바로네스라는 한 명의 압제자와 맞서는 크루엘라가 저항의 도구로써 펑크 룩을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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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The Devil Wears P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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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을 소재로 한 영화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메릴 스트립에게도, 앤 해서웨이에게도 작중에서 분한 캐릭터들은 대표 필모그래피에 속할 것이다. 2026년 후속작의 개봉을 앞둔 지금 다시 보아도 지루할 틈이 없는 이 영화는 패션 잡지 「런웨이」를 펴내는 잡지사를 배경으로 한다.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 여성 앤드리아 색스(이하 앤디)는 스펙을 위해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제출하지만 그녀를 불러 준 곳은 런웨이 편집장의 비서 자리와 자동차 회사 단 두 곳뿐. 그녀는 면접에서 스펙이 될 때까지 잠시만 머물겠다고 이야기하는 과도한 솔직함을 내비칠 만큼 업계는 물론 사회생활에서의 문외한이었다. 그러나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 아래에서 앤디는 진심어린 패션계 종사자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메릴 스트립은 앤디만큼이나 패션과 먼 관객까지 스토리 속으로 이끌 만큼의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그러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수많은 이들의 진심에 가닿을 수 있었던 것은 비단 영화 속에서 패션(Fashion)과 그 업계가 돋보이는 방식 떄문만은 아니다. 영화에는 누구나 한 번쯤 느끼거나 지켜보았을 법한 패션(Passion)이 도사리고 있다. 가끔 너무나도 냉혹하고, 때로 사람을 소위 ‘피 말리게’ 하는 상사인 미란다는 덮어 놓고 미워할 수 없는 인간미를 가졌다. 이는 영화 후반부의 ‘미란다식 극찬’이나, 쌍둥이 딸들을 향한 태도 등에서 드러난다. 감독은 ‘일’이라는 코드 하나가 영화를 이끌도록 두지 않았다.
일, 사람, 사랑. 일하는 사람, 일을 사랑하는 사람, 일과 사람에 대한 사랑……. 단어들을 어떻게 조합해도 우리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에서 그것을 찾아볼 수 있다. 당신의 삶에서 세 단어가 표현되는 방식은 무엇인가. 시네마떼끄가 이 작품을 통해 열고자 하는 문에는 바로 그러한 질문이 쓰여 있다.
글쓴이 몽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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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토니 타키타니>의 러닝 타임은 76분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영화의 평균 러닝 타임이 90분에서 120분 가량인 것을 생각하면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오래 참았다 내뱉는 찰나의 한숨처럼, 76분 안에는 결핍과 우울과 고독이 한껏 농축되어 있다.
영화는 제목과 같은 이름의 남자를 주인공으로 진행된다. 어릴 적부터 고립된 삶을 살아온 토니는 여전히 혼자인 일러스트레이터 어른이 되었다. 감정은 그저 미성숙한 자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해 왔던 그가, 어느 날 감정에 휩싸인다. 그 감정은 사랑이라는 낱말로, 다시 에이코라는 이름으로 대표된다. 토니의 눈에 에이코는 옷을 입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보인다. 패셔너블한 그녀는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옷을 산다고 말한다. 토니는 에이코를 옷에 대한 집착과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 시도하지만, 그것은 반쯤 성공하는 듯하다 이내 불가항력으로 저지된다.
결과는 다시금 고독이다. 에이코는 환불한 옷을 다시 찾으러 돌아가다 사고로 숨지고, 토니는 혼자 남는다. 아니, 165cm와 230mm, 사이즈 2의 신체에 맞는 옷가지들과 함께 남는다. 그것들은 에이코가 토니의 마음에 담겼듯, 에이코의 옷장과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토니는 그녀와 같은 치수로, 그녀의 옷을 입을 수 있는 비서를 모집해 출근시킨다.
이것이 오래도록 효과적일 수 있으리라 예상하는 관객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영화는 관객의 예상을 뒤집지 않고 전개된다. 그는 이내 옷을 죄다 팔아넘기고 만다.
이 작품은 ‘패션(Fashion), 패션(Passion), 패션’이라는 타이틀로 묶여 시네마떼끄의 스크린에 오른다. <토니 타키타니>에서 ‘패션’은 ‘패션(Fashion)’인가? 아니라면 ‘패션(Passion)’인가? 본작은 둘 중 하나가 되기보다 ‘패션(Fashion)’을 활용해 ‘패션(Passion)’의 결여를 비유하기를 택한다. 무기력하고, 외롭고, 공허한 감정선. 하루키의 소설에서 영화로 재탄생하였으나 영상의 에너지로 덩치를 불리지 않고 글의 형식을 붙잡는다. 나레이터의 존재, 페이지 넘어가듯 하는 약간의 단절감. 어떤 기대를 품었건, 이치가와 준은 당신이 생각해 보지 못한 깊이의 푸른 기억으로 당신을 끌고 내려갈 것이다.
글쓴이 몽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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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홍콩, 같은 날 같은 아파트의 바로 옆집으로 이사오게 된 첸부인과 차우. 둘의 배우자들은 일로 자주 집을 비운다. 그러던 중 첸부인은 남편의 넥타이가 차우의 것과 같은 것을 알게 되고, 차우는 아내의 가방이 첸부인의 것과 같은 것을 눈치챈다. 첸부인과 차우는 각자의 배우자들의 관계의 시작에 대해 궁금해하며 만남을 가진다. 함께 식사를 하고, 무협 소설을 쓰는 등 둘의 만남이 반복될수록 비밀스럽고 깊은 감정이 그 둘 사이에 피어나지만, 그들은 배우자들의 배신을 본인들은 따라서는 안된다며 마음을 다잡는다. 차우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전하지 않았다.
첸부인은 그를 기다렸지만 다가가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나란히 함께 걸어가면서도, 끝끝내 마주서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차우는 홍콩을 떠나 싱가포르로 향하고, 첸부인이 그를 만나러 싱가포르에 방문하지만 둘은 만나지 못한다. 몇 년 후, 차우는 앙코르와트의 벽에 대고 깊이 숨겨뒀던 사랑을 속삭이고 그 속에 묻는다. 아무도 듣지 못했을 그의 속삭임 속에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지나간 사랑의 흔적이 고요하게 담겨 있다.
인생의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절, ‘화양연화’는 고요한 사랑을 그린다. 차우와 첸부인의 사랑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는 시선으로, 걸음으로, 또 침묵으로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가장 찬란한 시절을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지나간다. 결국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영화는 슬로우모션과 반복되는 음악, 붉은 조명, 그리고 주인공들을 담아내는 구도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첸부인이 영화 전반에 입고 등장하는 치파오는 단순한 복식을 넘어, 인물의 감정과 관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암시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녀의 치파오는 그녀의 감정, 관계의 변화, 그리고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입고 우리에게 말보다 깊은 방식으로 그들의 화양연화를 전한다.
글쓴이 홍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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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SSION...
여러분, 안녕하세요. <휴대-영화>의 눙입니다. 주말 이틀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벌써 새로운 한 주가 찾아왔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지난 한 주는 다들 잘 보내셨는지요.
금주의 상영 기획으로는 <패션, 패션, 패션>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검정 옷, 편한 옷, 계절과 시기를 안 타는 옷을 입는 저에게는..., 패션의 세계란 어렵기만 한데요. '나'가 되기보다는 주류에 섞여 튀지 않는 인간이 되고 싶어서일까..., 평범함을 제일 중시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패션을 말하는 인물들을 보면, 무언가 컬러를 추가하고 싶어질까요?
이번 기획 대문글에서 마지막 문단이 맘에 와 박혔습니다. 패션이라는 주제에서 시대를 불러와 만들어진 이번 기획안이 참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나'를 부르짖다 보면 마주하는 고난길을 걸어가는 영화 속 인물들과..., 기획안과 같이 우리 한번 입어 보고 싶어집니다.
패션과, 나와, 시대와...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번 주 화요일부터 금요일, 2시와 5시에 시네마떼끄를 방문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소중히 여기는 영화 굿즈가 있으신가요? 예컨대 <중경삼림>의 파인애플 통조림이라든가, 모 영화사의 영화 티켓, 스페셜 포스터 같은 것들이 있을 수도 있고요.... 저는 좋아하는 영화의 티켓들은 모두 목숨을 걸어서라도(...) 모으고 싶어 하는데, 최근 좋아하는 영화들이 너무 많이 재개봉해서.... 목숨 걸 일이 많아졌습니다. 😓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감상한 영화를 또 다른 형태로 간직하는 것은 낭만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영화 종이 관람권을 명함 보관함에 고이 간직할 수도 있고요, 플레이리스트의 형태로 간직할 수도 있고요....
여러분이 간직하는 영화들은 무엇인가요? 어떠한 형태로 간직하는지도 조금은 궁금해집니다.
벌써 지칠 것만 같은 한 주의 시작이지만, 기획안 제목의 PASSION!이 눈을 사로 잡는 기분이죠. 이번 한 주도 시네마떼끄와 함께하는 한 주 되시길 바라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한 주도 잘 보내세요. 🎥
이화 시네마떼끄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343호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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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시네마떼끄
ewhacinemathequ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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