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빗소리와 함께하는 개관영화제

 안녕하세요, 이화 시네마떼끄입니다. 

 한낮을 뜨겁게 달구던 태양의 열기가 식어가는 이 계절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또 다른 시작을 마주합니다. 방학 동안 정비의 시간을 가졌던 이화 시네마떼끄도 다시 학교로 돌아온 여러분을 반기며 닫아두었던 문을 엽니다.

 계절이 서서히, 스며들듯이 찾아오는 것처럼 시작과 끝, 멈춤과 나아감의 경계는 늘 모호하고 그 사이의 방황은 불가피합니다. 어디가 시작이고 또 어디가 끝일까요? 만약 그 경계가 명확하다면 끝과 시작 사이 공백은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요? 

 이번 개관영화제는 시작도 끝도 아닌 지점에서 겪는 방황을 담은 영화 네 편과 함께합니다. 한 단계에서 다른 새로운 단계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끝에서 다시 시작으로 향하는 이 과도기적 상태는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성장의 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멀고 지난한 여정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아 기억이나 삶의 역사에서 지워지지만, 이 시간을 보내고 난 우리는 계절이 바뀌듯 어느새 변화해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힘겹게 나아간 자리에서 또다시 한걸음 발을 내딛는 용기 있는 마음이 여기 놓입니다. 

 네 편의 영화와 함께 마음껏 헤매고, 실패하고, 또다시 일어나 힘차게 나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정처 없는 표류 끝에 뜻밖의 새로운 땅에 가닿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곳에서 우리 함께 지난 여름을 떠올리며 잃어버린 성장의 시간을 반추해 봅시다. 여러분을 기다리며 이화 시네마떼끄는 문을 활짝 열어놓겠습니다. 

화요일 5시

  어느 날, 갑작스럽게 교황이 사망한다. 이후, 추기경단의 단장인 로렌스는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를 준비한다. 전 세계에서 모인 107명의 추기경들은 바티칸 성당의 문이 닫히는 순간부터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로 콘클라베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직전, 명단에 없던 새로운 추기경이 갑자기 합류하는 예상치 못한 변수와 함께 콘클라베가 시작한다.

  콘클라베의 투표 과정은 철처히 비밀리에 이루어진다. 또한 선거인 추기경단의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어야만 교황으로 선출될 수 있다. 그렇기에 내부에서는 표를 얻기 위한 여러 이해관계가 생기고, 추기경들의 경쟁과 갈등은 심화된다. 교황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중 하나이고, 누가 교황으로 선출되느냐에 따라 국제 사회 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지 못하면 교황이 선출되지 못하므로, 콘클라베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반복되는 투표 속에서 후보군 또한 점차 좁혀지고 있는 상황에, 로렌스는 어떠한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경건하고 청렴하게만 보이는 성직자들 사이에서 냉혹한 정치적 계산이 교차하는 현장을 통해, 교황 선출이라는 특수한 제도가 지닌 종교적 의미와 권력적 함의를 동시에 드러낸다.

글쓴이 도리

 

글쓴이 몽유

타셈 싱 | 2006 | 119'

  어느 날 알렉산드리아가 간호사 ‘에블린’에게 쓴 편지가 로이의 병실에 잘못 떨어지게 되면서 알렉산드리아와 로이의 만남이 시작된다. 로이는 호기심 많고 순수한 알렉산드리아를 위해 거대한 한편의 서사시를 지어내 들려주기 시작한다. 로이가 알렉산드리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악독한 스페인 총독 ‘오디어스’에게 복수하려는 6명의 무법자, ‘블랙 벤디트’, ‘인디언’, ‘루이지’. ‘오타 벵가’, ‘찰스 다윈’, ‘미스틱’의 모험담이다. 로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알렉산드리아의 상상 속에서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이미지가 되어 스크린에 나타난다. 관객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사람이라는 실제와 그들의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판타지의 양극을 모두 경험한다.

  그러나 사고로 인한 상처보다도 연인의 배신으로 인한 마음의 상심이 더 컸던 로이는 삶의 의욕을 잃고 하루빨리 죽기를 바라고 있다. 그에게 이야기는 소녀에게 모르핀을 가져와달라고 부탁할 매혹적인 수단이다. 「천일야화」의 세예라자드가 살기 위해 매일 밤 이야기를 지어냈다면, 로이는 죽기 위해 매일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지어내 들려주는 것이다. 영화가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로이의 이야기는 비극적으로 흘러가고, 로이와 같은 얼굴을 한 이야기의 주인공 ‘블랙 밴디트’마저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소녀는 외친다.
“죽이지 말아요! 이건 내 이야기이기도 해요.”
  알렉산드리아의 상상 속에서 이미지로 변환되어 관객들에게 전해진 이야기는 이제 소녀의 이야기가 되어 죽음을 앞둔 블랙 벤디트를 살려내고, 결국에는 로이마저 살려낸다.

  나무에서 떨어져도, 사다리에서 떨어져도 언제나 다시 일어나 웃던 알렉산드리아의 용기는 어느새 로이에게 옮겨 가 삶의 희망이 되고, 로이는 결국 그토록 두려워했던 자신의 사고 장면이 담긴 영화를 두 눈으로 마주한다. 죽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가 결국엔 그를 삶에 대한 희망으로 이끈다.

  극 중 알렉산드리아가 성당에서 훔쳐 온 성체를 로이의 입안에 넣어주는 장면에서 그는 묻는다. “내 영혼을 구원해 주려는 거야? (Are you tying to save my soul?)” 그러나 알렉산드리아는 제대로 답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 버린다. 5살 아이에게 로이의 말은 너무나 어려웠던 것이다. 소녀는 영혼의 뜻도, 구원의 뜻도 모른다. 모르핀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순수함이 결국에는 남자의 영혼을 구원한다.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은 무성영화 시대와 스턴트맨, 구전 문학, 그리고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찬가다. 촬영 기간만 약 4년, 총 28개국의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영화는 CG 없이도 극한의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오로지 카메라 렌즈와 배우, 장소만으로 완성된 영화의 놀라운 색과 소리는 지금의 영화가 존재할 수 있었던 토대인 흑백영화, 무성영화 시대와 스턴트맨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다. 영화사에 걸쳐 볼 때 지금의 영화가 빚지고 있는 모든 것들, 무정하고 거센 시대의 흐름에서 잊힌 모든 가치들에 대해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은 이야기하고 있다.

기츠 질발로디스 | 2025 | 85'

금요일 5시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의 <플로우>는 라트비아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영화다. 영화는 인간이 전부 사라진 세계에서, 홀로 살아가던 고양이의 시선을 따라 인생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순환과 생명 간의 연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숲속 집에서 혼자 살아가던 고양이는 갑작스럽게 닥친 해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다. 그는 카피바라가 타고 있던 보트 한 척을 거점으로 삼아 리트리버,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 등의 동료들과 함께 홍수가 끝나길 고대하며 물에 잠긴 세상을 모험한다.

  등장하는 모든 동물에겐 커다란 공통점이 없다. 그들은 종족도, 삶의 방식도, 원래 속해있던 무리도 전부 다른 동물들이다. 고양이는 경계심이 강하고, 리트리버는 선을 지키는 법을 잘 모르고, 원숭이는 수집욕이 강하며, 뱀잡이수리는 제멋대로다. (인간의 눈으로 바라볼 때 안정적인 심리를 가진 캐릭터는 카피바라 하나뿐이다.) 실제로 영화 내내 그들은 서로 맞지 않아 갈등하고, 경계하고, 실패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은 물길을 따라 산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거듭되는 역경에도 누구 하나 버리지 않고 서로 도우며 나아간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동료와 자신을 같은 선상에 놓으며 보폭 맞춰 나아가는 연대는 결국 그들을 홍수 이후의 세계로 인도한다.

  또한… 사족이지만 인간이 아닌 동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많은 영화들은 대체로 실재하는 동물이 아닌, 의인화 된 동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많은 영화에서 동물들은 사람처럼 말하고, 입고, 생각한다. 그러나 <플로우>는 등장하는 모든 동물들을 사실적이고 자연스럽게 묘사한다. 동물 내부에 불필요한 인간의 자아를 주입하지 않고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여준다. 그러한 탈 인간중심적인 태도가 영화의 가치를 더욱 드높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들 방학은 잘 보내셨나요? 시네마떼끄 부원들은 이번 학기를 위한 기획안들을 준비하며 영화도 보고, 세미나도 하고..., 짧은 엠티도 다녀왔답니다. 엠티의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남지만, 특히 다함께 늦은 밤까지 영화를 본 기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기억을 벗 삼아, 이번 한 학기도 열심히 살아 볼 수 있겠지요....

 새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시네마떼끄도 운영을 재개합니다. 이번 주 개관영화제를 기점으로 시네마떼끄는 항상 그랬듯,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 2시와 5시에 영화를 상영합니다. 방학 동안 준비한 새로운 기획안으로 여러분들과 만날 예정이니, 영화가 고플 때, 언제든 방문해 주세요. 

 하반기는 영화 행사가 많다고 느껴지는 시기인 것 같아요. 여러분 모두, 영화와 함께하는 즐거운 한 학기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