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구련보등🌸

   열흘 붉은 꽃 없다. 매난국죽도 한 철 못 버티고 오라스에 다 죽는다. 뼈가 빠지도록 일해도 입에 풀칠하는 것이 고작인 현실. 가만히 누워 다음의 일과가 찾아올 때까지 시간만 죽이다가는 빛도 보지 못한 채 한줌의 재로 흩어질지도 모른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이 무료해서 반전을 꾀하거나, 절약만 반복하는 생계에 지치거나. 각자의 다양한 이유로 뛰어든 판은 점점 초심을 잃고 난잡해진다. 발목을 잡아끄는 가능성의 수렁에서, 그들은 현실을 돌아보는 것보다 아주 미약한 확률로나마 솟아날 구석을 제공하는 도박판이 더 희망적이라는 착각에 시달린다. 열흘이 지나기 전, 아직 행운의 신이 변덕을 부리기 전,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그것이 하드 판타지 장르의 소설이더라도, 사기적인 능력의 캐릭터에게는 형평성의 문제가 따라붙는 법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공식이 있다. 두뇌 담당과 행동반장. 한 명이 작은 변수까지 전부 고려해 판을 짜면, 다른 한 명이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이젠 클리셰라고 불릴 만큼 뻔하디 뻔한 공식이지만, 몇 년이고 변형되는 ‘공식’의 자리를 차지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여기, <컬러 오브 머니>에도 그런 조합이 있다. 에디와 빈센트, 그리고 카르멘이다.

   위스키 장사를 하며 살아가던 에디. 그의 여유로운 태도와 언변은 당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그러던 그는 당구장에서 빈센트를 마주하고, 단번에 당구계를 이끌 재능을 가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래 전 당구를 접었던 그의 마음에 다시 불씨가 지펴졌다. 에디는 빈센트에게 함께 나인 볼 클래식 대회를 준비하며 돈을 쓸어담을 계획을 제안한다. 그의 계획은 대회 시작 전, 연습장에서 적당히 초보 행세를 하며 내기 당구로 자금을 모으고 대회에서까지 승리를 거두는 것. 그러나 애석하게도 계획의 진행은 순탄치 않다. 마치 망아지처럼 큐대만 잡았다 하면 날뛰는 빈센트 때문이다. 왜 일부러 져 주어야 하냐며 상대를 보기 좋게 참패시킬 때는 언제고, 노인의 돈을 따기에는 양심이 찔린다며 시키지도 않은 경기에는 몇 번씩이고 연달아 돈을 내어준다. 과연 에디의 계획대로, 이 셋은 대회까지 일확천금을 쓸어담을 수 있을까?

   <컬러 오브 머니>의 진정한 주인공은 빈센트가 아니다. 스포트라이트는 오래 전 원치 않게 당구를 접고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었던 에디가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면서 비로소 자리를 찾는다. 비록 빈센트의 인생을 바꾸는 값으로 대회의 상금을 취하려던 계획은 좌절되었으나, 돌아온 에디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무래도 좋다는 듯 미소가 피어오른다. 때로는 멀리 여행을 떠나 무계획으로 방문한 장소가 둘도 없이 완벽한 곳일 때가 있는 것처럼, 이 이야기의 모두는 틀어진 계획에서 소중한 경험을 얻어갈 것이다.

   영화 <도성>은 쉴 틈 없이 웃기다. 이미 충분히 자극적이고 흥미를 돋우는 소재인 도박에 초능력까지 섞였다. 이야기는 주인공 아성이 셋째 삼촌을 만나기 위해 홍콩으로 오면서 시작된다. 아성은 투시, 최면 능력에다 염력까지 쓸 수 있는 인물이다. 도박을 즐겨 하는 삼촌은 아성에게 도박을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그가 도박판에서 패할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보는 내내 엉뚱하고 바보 같은 행동에 푸하하 웃다가,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패를 두는 장면에서는 인상을 팍 쓴 채로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게 된다. 돈에 눈이 멀어 누구보다 아성의 승리를 바라는 그의 삼촌이나 비슷한 부류의 도박 중독자들 같은, 도박 영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어쩌면 당연하고 뻔한 캐릭터들 사이에서 쉽게 갈피를 잡기 어려운 아성이라는 인물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다. 

 

   도박을 완전히 그만두고 홍콩을 떠나 다시 돌아가겠다는 편지를 쓰고 집으로 향했던 그는 결국 결승전에 모두의 이목을 끌며 등장한다. 인간적인 고뇌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결국 엔딩은 이 영화답다. 엉뚱하고 유치하며 가볍지만, 임팩트 있는 그 위치에서 명쾌하게 끝난다. 너무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대놓고 아성을 이용해먹으려고 난리를 치던 삼촌이나 돈과 명예에 눈이 먼 도박꾼들을 미워하는데 열중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텐션으로 유쾌하다는 것. 도박이 빚어낸 갈등의 다음 장면이 또다시 도박인 것을 봐도 그렇다. 

   괜히 내게도 이런 초능력이 있었다면, 하는 현실성 없는 상상을 하며 억만장자가 된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고,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더 편하고 유리할 일상들을 떠올려보기도 하며 가벼운 웃음과 함께 영화를 즐겨보자.

   안녕하세요! <휴대-영화>입니다. 새로운 기획 <순정구련보등>과 함께 다시 찾아왔는데요, 이번 기획은 도박을 주제로 하고 있답니다. 도박이라는 소재는 화려하고 자극적이며, 위험합니다. 하지만 이번 기획의 영화들은 조금 더 자세히, 그 안을 살펴보며 다양한 인간 관계와 욕망, 선택,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들을 담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갈등하고, 무엇을 선택하는지, 그 결과는 어떻고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지에 집중하며 영화를 보신다면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수요일에 남은 이야기들을 들고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